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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향한 위로

2012-12-05


섭씨3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더위 속, 미국 뉴욕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리네케 딕스트라(Rineke Dijkstra)의 회고전을 기획하였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인 리케네 딕스트라는 푸른빛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한 수영복 차림의 사춘기 소년, 소녀들을 찍은 시리즈로 이미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글 | 김아미
사진 제공 | 구겐하임미술관
기사 제공 | 월간 사진

17세기의 네덜란드인 화가 요하네스 베르미르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섬세한 디테일과 정적인 분위기를 함께 간직한 이 초상들은 절제된 구성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집중하게 하는 묘한 힘을 내뿜고 있다.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제니퍼 블레싱(Jennifer Blessing)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큐레이터 샌드라 필립스(Sandra S. Phillips)의 공동기획으로 성사된 이번 회고전에서는 중견작가 딕스트라의 커리어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 75점을 접할 수 있다.

초상사진 속 미묘한 흔들림과 감정들
리네케 딕스트라는 정체성과 통일성 사이의 모순, 개인의 정체성이 변해나가는 현상 그리고 이런 변화에 따른 내적인 혼란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이다. “엉덩이 뼈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상업사진을 그만두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던 시절, 수영장을 30번 왕복하고 난 후 피로의 극치에 다다랐을 때 찍은 사진에서 무의식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의 나를 발견했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을 때 짓는 꾸며진 표정과 몸짓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무방비 상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시작한 것이 바로 해변을 배경으로 소년, 소녀들의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아동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 질풍노도와 같은 내적, 외적 변화를 겪어내고 있는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주 찾는 바다를 배경으로 본인의 수영복을 입고 보는 이와 물끄러미 눈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모두 침묵한 채 고요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지만 대충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 가득 신경 쓴 듯한 화장법, 아직은 미숙해 헐렁하게 맞지 않는 수영복을 입은 모습 그리고 차분한 듯 보이는 눈동자 속 미묘한 흔들림에서 보는 이는 상당히 복잡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세상에 내팽개쳐진 인생을 향한 인간애
삶은 우리가 의도한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드물고 결코 녹록치 않은 법이다. 그런 삶의 통로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변화에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을 닫아 보고, 겉모습을 꾸며 보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으로도 외부세계에서 받는 상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이렇듯 자가보호의 수단을 잃은 우리는 하이데거의 말대로 ‘세상에 내팽개쳐진’ 채 끝내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스스로 변화하는 모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한 프랑스인 군인이 인생을 통해 변해가는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다. 직접 만났을 때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그의 눈동자와 표정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고 작가는 전했다. 토마스 스트루스(Thomas Struth), 안드레아스 구르스키(Andreas Gursky), 토마스 루프(Thomas Ruff) 등 대표적인 독일 사진가들의 풍을 따르고 있지만 딕스트라가 그들과 차별되는 점이 바로 이 지극히 인간애적인 접근법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미완성 십대들의 솔직한 비디오작업도 전시
구겐하임의 이번 회고전에서는 딕스트라의 비디오 작업도 눈에 띄인다. ‘버즈클럽’(The Buzz Club)과 ‘크레이지하우스(메건, 사이몬, 닉키, 필립, 디)’(The Krazyhouse(Megan, Simon, Nicky, Philip, Dee))라는 멀티채널 설치작품에서는 영국 리버풀에 위치한 댄스클럽의 단골인 젊은이들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12년이라는 세월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두 작품이지만 작가와 피사체 사이에 편안한 공기가 감도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미지의 구축과 개성의 표현에 온 관심이 쏠려있을 법한 십대 후반의 그들이 전날 밤 고심 끝에 골랐을 의상과 장신구에서, 또는 목에 새긴 문신과 한껏 부풀려 올린 머리모양의 풋풋한 감수성에서 보는 이는 치기어린 젊은날의 자신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열정적으로 만들어내는 몸짓에 때로는 촌스러움과 어색함, 과장됨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미완성의 모습 자체가 가장 솔직한 그들의 모습임을 작가는 일찍이 눈치 채고 카메라에 담았을 터이다.

같이 전시되고 있는 비디오 작품 ‘I See A Woman Crying(Weeping Woman)’(2009)과 ‘Ruth Drawing Picasso’(2009)는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작품과 관객의 공감대 형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피카소의 ‘우는 여자’ 앞에 올망졸망 모인 리버풀의 초등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앞다투어 의견을 내놓는다. “저 여자는 지금 결혼식에 갔는데 혼자여서 외로워서 우는 걸껄?”, “어쩌면 너무 행복해서 우는 걸지도 몰라, 가령 남편이 전쟁에서 살아 돌아왔다든지!”, “아니면 누가 스포츠카를 사줬다든지.”, “피카소는 다른 사람들이랑 다르게 그림을 그렸어.”, “맞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긴가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그린 거야.” 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한 소년의 모습도, 친구의 어깨에 멋지게 손을 척 올리고 인상을 쓰면서 심각한 어조로 말하는 키 작은 소년의 모습도, 여느 비평가 못지않은 그들의 깜찍한 상상력도 모두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일상의 변화와 삶의 순리에 눈을 뜨다
그녀의 또 다른 사진 시리즈는 육체적, 감정적으로 극한의 상태를 겪어낸 직후의 인간을 관찰하고 있다. 투우를 막 마치고 피범벅이 되어 퇴장한 포르투갈인 투우사나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벌거벗은 산모의 전신사진에서는 미처 추스르지 못한 생생한 감정이 그들의 눈동자를 통해 여실히 전달되고 있다. 이렇듯 인간 고유의 감정을 넘치지 않게 차분한 톤으로 거짓 없이 말하고 있는 딕스트라의 사진이기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상처받기 쉬운 다른 영혼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것이다. 보스니아에서 망명한 한 어린 소녀의 성장과정을 14년에 걸쳐 기록한 ‘알메리사’(Almerisa) 시리즈를 보면,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거친 듯한 알메리사가 성인으로 온전히 성장해 마침내 출산을 한 후 찍은 마지막 사진에서 제일 첫 사진 속의 어린 소녀의 표정으로 되돌아온 것을 느낄 수 있다. 일상에 치여 눈치 채지 못하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을 평범한 변화와 삶의 순리를 다시 한번 찬찬히, 따뜻한 눈길로 살펴주라고 작가는 우리에게 이 사진전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 김아미는 뉴욕대학교 Visual Culture 박사과정 수료 후 현재 뉴욕과 일본을 오가며 일본 현대미술을 주제로 논문을 진행중이며 전시리뷰와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아르코 웹진에 게재된 원고를 필자가 내용을 추가, 수정해 다시 싣는다.

All Images Courtesy the artist and Marian Goodman Gallery, New York and Paris ⓒ Rineke Dijk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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