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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자생력 키우며 변방과 운영비 이중고에 시달려

2012-05-22


“3년을 버티나 보자.” 사진가 조인상이 2002년 대전에 사진전문 갤러리 ‘포토클래스’를 차린다고 했을 때 말리다 못한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역에는 사진시장이란 게 형성되어 있지 않아 재능 있는 작가라면 모두 서울로 몰려드는 상황이다. 게다가 작품을 처음 선보이는 장소로 지역갤러리는 우선 고려대상에 들어있지 않다. 노출빈도나 관심도가 떨어지니 당연한 일이다. 대관이나 작품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지역의 전시공간은 이같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글│이종화 기자
기사제공│월간사진

그럼에도 지역갤러리의 존재이유는 분명하다. 2012년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는 포토클래스의 조인상 대표는 “공모전 식의 사진의 절대적인 미학만을 추구하는 지역사회의 사진풍토에서 사진의 본질적인 모습이나 표현방법의 다양성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지역갤러리가 필요한 이유”라며 현대사진의 운동개념에서 포토클래스의 역할을 설명했다. 같은 대전의 사진전문 갤러리인 ‘갤러리 누다’의 김태정 큐레이터는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가 야기한 사진인구의 증가는 단순히 찍는 차원을 넘어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고 있고, 대전도 예외는 아니”라며 “현대미술의 강력한 표현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사진이 펼쳐내는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선보이고, 더불어 변방으로 내몰린 지역의 문화예술이 지역 내에서 자생력을 지닐 수 있도록 힘을 보태려 한다”고 말했다.

태생적인 한계와 운영의 어려움은 겪고 있지만 지역의 사진전문 갤러리들은 전시공간과 대안공간으로서의 역할까지 모색하는 중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소박하지만 사진아카데미와 지역사진인들의 사랑방, 사진책 도서관, 지역공동체의 중심 등 전방위적인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중이다. 그러나 팔방미인의 역할에도 지역갤러리들은 지역 내에서나 사진계 안에서조차 연대와 고려의 대상이기보다는 변방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조명의 기회나 관심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한해 지역의 사진전문 갤러리들의 활동과 새해 계획을 들어보았다.

태갤러리, 대구사진의 거점, 문화공간으로 성장 중

1940년에 지어져 70년이 넘은 대구의 한 양조장 건물이 지난해 갤러리로 재탄생했다. 그동안 10여회 개인전을 갖고 흑백사진을 고집해온 사진가 류태열(54)은 전시와 워크숍 공간을 찾던 중에 안성맞춤인 건물을 발견했다. 150평의 2층 목조건물을 뼈대와 골격은 그대로 살리고, 내부에 전시장과 강의실, 암실, 작업실, 정원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류태열 디렉터는 “사진인구가 늘었다지만 사진의 수도라 불렸던 대구는 한때 6개였던 대학 사진학과가 3개로 줄었고, 사진전문 갤러리는 한곳도 없는 등 침체된 분위기여서 전시와 워크숍 등 교류의 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갤러리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2011년 4월에 문을 연 ‘태갤러리’는 사진가이자 부산 고은사진미술관의 디렉터인 이상일의 ‘오온’ 시리즈로 개관전을 가졌다. 이어서 일본 내의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흔적을 기록한 이재갑의 <상처 위로 핀 풀꽃> 전과 경일대학교 강위원 교수의 초대전, 대구지역 사진가들의 단체전 등 지난해 모두 8차례의 사진전을 열었다. 태갤러리가 없었다면 모두 대구에서 보기 어려웠던 전시들이면서, 지역사진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갤러리는 짧은 시간에 대구사진의 거점공간으로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특히 이재갑의 전시는 일본에서도 관람객이 찾아왔고, 이상일의 오온은 불교의 시간에서 찍은 온통 검은색의 사진으로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또한 태갤러리는 근대건축물의 정취와 운치 있는 정원 등 온고지신의 향취가 느껴지도록 꾸며져 인접한 약전골목과 대구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도 인기를 얻으면서 단골 관람객이 늘고 있다. 태갤러리 : 대구시 중구 남성로5번지 / http://blog.naver.com/rty0102 / 053-252-2517

포토클래스, 10년간 90회 사진전 열어, 원칙적인 전시공간

“전시를 생각조차 못했다면 지금은 발표의 장으로서 개인전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대전의 포토클래스의 조인상(54) 대표는 올해로 개관 10년째가 되는 포토클래스가 전시에 대한 지역 사진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포토클래스는 지난 10년간 모두 90여회의 사진전을 통해 지역 사진가와 대학의 학생들에게 발표의 장을 제공하고 사진활동의 동기를 유발시켜왔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전시공간이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대관 전문이 아닌 포토클래스는 엄격한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 전시 가능여부를 결정한다.

매년 몇 차례 열리는 자체 기획전을 통해서는 육명심, 최광호, 이갑철, 정창기, 임경환 등 국내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지역 사진인들에게 폭넓은 시각을 제공했다. 조인상 대표는 “사진의 본질을 일깨우고 현대사진의 개념을 전파하는 전시 위주로 기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인상 대표가 강의하는 사진사 수업, 육명심이 지도하는 포토클리닉 반 등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지난해 포토클래스에서는 히말라야 사람을 통해 인류의 정신문명을 담아온 육명심의 전시와 사진 발명 초창기의 인화법인 검프린트를 컬러로 재현한 임양환의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또 <그곳에 서서> , <벚꽃 지다> 등 조인상의 전시는 한국적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 다른 방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세계 유명 사진가의 사진집을 비롯해 4백여권에 달하는 사진책 서가는 포토클래스를 대전과 인근 지역 사진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었다. 포토클래스 : 대전시 동구 성남1동 44-24 / www.photoclass.co.kr / 042-632-0990

계남정미소, 나비효과처럼 번지는 하찮은 기록물의 경이로움

우리 몸 속에서 흡수되고 남은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하는 ‘누다’, 라틴어로 ‘nuda’는 감춰진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낸다는 의미의 형용사다. 대전의 ‘갤러리 누다’는 작가의 응집된 사상과 철학을 작품으로 누는 해우소 같은 공간을 표방한다. 지난 2009년 사진비평상의 평론 부문을 수상한 김태정이 고향인 대전에서 2010년 4월에 문을 연 누다는 기존에 발표된 사진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재구성하는 전시를 선보여오고 있다. 김태정 큐레이터는 “작가들의 신작을 전시하기 어려운 지역갤러리의 한계상 어쩔 수 없이 기존 발표작을 전시해야 한다면 같은 전시의 반복보다는 더욱 신선하고 가치 있는 방향을 모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알려진 작가의 작업이나 젊은 작가들의 최신작업들이 누다를 거쳐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매번 제목과 글, 구성까지 새로 해석하고 창조하는 수고스러운 과정이 따르지만 관객들은 늘 기대감을 갖고 누다 전시를 기다린다.

지난해 누다는 구본창의 ‘비누’ 작업을 전시했다. 전시제목 ‘The Baptist’는 세례자 요한에서 가져왔다. 일상적인 사물인 비누를 아름답게 표현한 사진에서 고되고 버거운 삶의 질곡에서 잠시 벗어나는 세례자 요한의 따뜻한 위로를 발견한 것이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연출한 박새롬의 작업에는 ‘It’s A Monkey Business’란 재미있는 제목을 붙였다. 원숭이처럼 나무에 오르는 작가의 행위를 통해 피비린내 나는 인간 세상을 반증했고, 언제고 다시 내려와 정글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은 작가 또래의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과 등치시켰다. 김태정 큐레이터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작품만 보내주면 나머지는 갤러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다소 당혹스러운 제안에 응해준 관대하고 용감한 작가들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누다는 2012년 첫 전시로 치마 속을 촬영한 사진으로 2011년 갤러리룩스 신진작가에 선정된 장유진의 전시를 준비하는 중이다. 갤러리 누다 : 대전시 서구 월평동 597번지 / http://cafe.daum.net/NUDA / 070-8682-6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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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비에 허덕이고 얇은 작가층에 발목 잡혀

지역갤러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다. 대부분 고정수입 없이 자체 사진아카데미의 수강료와 외부 강의료 등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포토클래스의 조인상 대표는 “솔직히 대안이 없다”며 “기획전시에 한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예기금을 신청한 적이 있는데 기획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전시는 지원 않는다고 통보해와 그뒤로는 아예 신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누다의 김태정 큐레이터 역시 “좋은 전시를 계속 기획하면 점차 나아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태갤러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류태열 디렉터는 요즘 각종 지원제도에 관해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지역에서 꼭 필요한 공간이지만 계속 개인 돈으로 운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갤러리가 있는 대구시 중구청이 시행하는 ‘도시 골목 투어’의 코스에 갤러리가 포함되거나 대안공간으로 지정받는 등 가능한 모든 지원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나마 계남정미소는 도 문화예술기금과 지역 일자리 창출사업의 도움으로 전시를 열고 상근자를 두고 있지만 한시적인 지원이라 장기적인 대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사진인구가 늘었다지만 전시를 열만한 포트폴리오가 준비된 전문 사진가층이 부족한 현실도 지역갤러리의 발목을 잡는다. 전시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1년 내내 다양한 전시를 유치하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류태열 디렉터는 “오랫동안 침체된 지역의 분위기 탓에 사진가들의 활동이 소극적인 면이 있다”며 “사진 자체를 즐기는 아마추어 사진인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모전과 워크숍 등 공간과 기회를 만들어 갤러리의 자생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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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사진갤러리 운영자 4인, 새해에 바란다!

해가 바뀐다 해서 딱히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좋은 전시를 꾸준히 마련해 나가는 것이 바람이자 도전입니다. 사진계, 특히나 불특정 다수의 작가들께 부탁드립니다. 갤러리 누다의 열악한 제안이 언제 불쑥 들어갈지 모릅니다. 행여나 그날이 오면 너무 깊게 생각마시고 도와주세요!

최근 사진계는 미술관에서 셋방을 살기 위해 미술관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눈에 맞춰 만든 사진이 너무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사진의 본질인 기록성과 사진이 가지는 가장 커다란 힘인 정직성에 충실한 작업을 많이 보고 싶습니다. 2012년 포토클래스는 좀더 다양한 본질적인 사진작업을 보여주는 갤러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가다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갤러리, 직접 찾아가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는 디렉터가 되려 합니다. 새해는 서울의 갤러리와 교류를 했으면 합니다. 서울은 많은 사진정보의 홍수 속에 살지만 이곳 대구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교류전시가 있으면 합니다. 서울과 지방이 차이가 없는 새로운 평정의 모습으로 출발하는 기상을 원합니다.

현대사진은 이미 예술에서 소외 받는 장르가 아닙니다. 최근에는 여기저기서 해외 유명작가들의 사진을 들여와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등 양적으로 매우 활발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소위 명품 사진들만이 조명을 받는 한국사진계는 우리의 정체성에 더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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