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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욕망을 잠재우는 땅의 소리를 들어라

2012-05-11


사진가 정주하(53)를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역 대합실이었다. 그는 며칠 새 여러 곳으로 떠나고 돌아와야 하는 처지였다. 길 위에서 그는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다. 행선지를 향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여행객들 사이를 헤쳐 나가다 보니 문득 한 예술가의 초상이 떠올랐다. 그는 어느 곳으로 거처를 옮기든 꼭 역 주변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가끔 입 속에서 읊조려지곤 했다. “떠나고 싶을 때 바로 떠나기 위해서.

기사제공│월간사진

” 물론 지금처럼 자동차가 일상화되지 않았던 20세기 초 유럽의 한 화가 이야기다. 사진가 정주하가 늘 메고 다니는 큼직한 배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제 멋대로 물결치는 머리와 수염 스타일이 인상지우는 원시성 탓일까. 그는 절대 어딘가에 닻을 내리지 않을 사람, 고착되어 매이지 않을 사람으로 다가온다. 사방이 막힌 작업실은 그에게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는 안전한 안쪽에 정주하는 인간보다는 위험한 바깥에 부유하는 인간에 가깝다. 큼지막한 어깨를 살짝 구부정하게 기울인 채 뚜벅뚜벅 걸어오는 그에게선 영락없이 유목민의 체취가 풍겨온다.

“어느 겨울날, 거닐던 논둑에서 발 아래로 바라다 보이는 목 베인 벼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리는 먼 역사의 조상으로부터 지금의 내게 이르는 따스한 포옹 같기도 하고, 그동안 방황의 끝에서 잊고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확인의 각인 같기도 했다. 잠시나마 그 겨울 논 위에서 춤추며 행복해 했던 나는 그 후 두 해가 넘도록 땅이 전하는 소리에 취해있었다.”

‘땅의 소리’ 연작에 붙인 작가의 이 작업노트는 그가 움켜쥐고 사는 말씀 하나를 들려준다. ‘내가 서 있는 장소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정주하는 어디에 카메라를 놓아야 하는지 꿰뚫고 있다.

인천, 쾰른 그리고 세상 모든 곳

정주하는 인천에서 태어나 선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유학하기까지 소년기와 청년기를 그 항구도시에서 보냈다. 고교 동창인 사진가 최광호는 동년배에 비해 기럭지가 긴 정주하를 보고 “씨가 다른가봐”라며 놀렸다고 한다. 인천은 한국 근대화가 낳은 일종의 불구인 도시였다고 그는 돌아봤다. 서울공화국이 서쪽으로 밀어내는 온갖 폐기물이 인천으로 쓸려왔다. 급팽창하는 서울이 털어내는 나쁜 것들, 예컨대 공해산업공단이라든가 발전소 등이 인천에 터를 잡았다. 한국전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은 자신의 관내에서 생산하는 전력량의 36.9%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인천의 전력은 거의 모두가 다른 지역을 위해 생산되는 것이다.

“예민한 시기였는데 난 껄렁한 역할밖에 못한다는 마음에 속이 썩었죠. 인천은 노동운동이 강했어요. 세상을 밝게 못 봤어요. 회색빛이랄까.”

1982년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하기까지 그는 군대생활 33개월을 포함해 7년을 떠돌았다. ‘고졸자의 설움’을 안고 갈급했던 그가 그토록 어렵게 선택한 대학을 3학년 1학기 때 자퇴한 건 “생계 수단이 아니고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스며들지 못하고 ‘딱딱 부러지는’ 자신이 영 마음에 차지 않아 그는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 대해서는 ‘전혜린’이란 독문학자 겸 수필가가 그곳에 유학했었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었어요. 쾰른 자유예술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사진보다 철학에 더 빠져들었죠. 강의실보다 당시 한국 유학생들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말할 수 있죠. ‘사진계 돌아가는 건 몰라도 된다, 인문학으로 사진을 들여다보자’ 했던 시기였습니다.”

‘인문학자로서의 사진가’ 정주하는 귀국한 뒤 수많은 논쟁에 뛰어들어 독일 유학시절이 그에게 심어준 ‘본질에 대한 성깔’을 발휘했다. ‘사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사진은 무얼 바라보는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너무 오래 써서 닳아버린 용어인 ‘담론’을 되찾아 진지하게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끊임없이 물었다. “우리에게 ‘사진계’란 게 있다면 끊임없이 요청되는 것, 필요한 것은 ‘철학적 정초’가 아닌가”라고 우직하게 물었다.

“한동안은 매체에 노출이 많이 되면서 칼을 많이 맞았던 시절이었죠.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게 되고 뒤로 물러나 앉았어요. 그랬더니 ‘요새 왜 그렇게 잠잠하세요?’ 묻는 사람들이 생기더군요. ‘그럼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라고 묻고 싶지만….”


‘위험사회’의 모서리를 사진으로 내리쳐라

2008년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연 개인전 ‘불안, 불-안’은 그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줬다. 철학자 김영민은 전시 도록 서문에 이렇게 썼다. “정주하의 사진을 접하는 수많은 관객들은 ‘이걸 왜 찍었어?’라며 그냥 스치듯이 지나가 버려야하는데, 바로 그 같은 반응이야말로 (…) 일상의 변함없는 풍경이다.” 전북 영광, 경북 울진 등 바닷가와 해수욕장에 등장한 인물들은 무심한 바닷가의 나날을 보여준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뭐가 없을까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사진이다. 저 멀리 일부러 시치미를 떼고 슬쩍 프레임 안에 걸쳐있는 듯한 원자력 발전소의 이미지를 알아차리기 전까지 관람객은 이렇듯 무심하고 심심한 사진에 작가는 왜 ‘은폐된 불안’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정말 불안해지는 심사를 어쩔 수 없다. 인식 자체가 바로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정주하는 물었다.

그런데 사진계의 제자, 후배, 동료, 선생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이구동성으로 답한 건 ‘돈 많이 들었겠네’ 였다. ‘많이 팔았느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7월 29일 ‘촛불 정국’의 발화점에 개막해 3개월 여, 광화문은 이 땅의 지배 권력에 분노한 시민들로 넘쳐났는데 정작 이웃한 그의 전시장을 찾은 사진가들은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의 사진은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고 말을 걸어오고 있었는데도. 정주하에게 사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직접 부딪치기 싫어하는 것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정주하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근본 원소라 할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생각한다. 아울러 사진이 갖추고 있는 문법인 앵글, 톤, 각도, 거리감, 콘트라스트, 사진의 공업성을 매 작품마다 드러내려 애쓴다. 사회에서 경제적 쓰임이 많은 사진을 했으면 힘들었을 작업들이다. 느긋하게, 배짱 있게 살 수 있게 해준 백제예술대학 사진학과 교수직 덕이다.

“‘위험사회’라는 화두가 지금 저를 붙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서쪽 들판에서 시작해 일본, 프랑스, 미국 서부해안을 차근차근 발로 훑어가고 있어요.”

그는 말을 아꼈다. 어깨와 무릎에 직접 떴다는 뜸 자국이 그 노고가 얼마나 몸 깊이 새겨졌는지 대신 말하고 있다.

- 사진가 변순철은 우리에게 ‘짝-패’ 사진작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 현대사진가의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자의식이 드러난 작가의 모습을 세밀한 작업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 정재숙은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암실의 매혹에 빠졌던 전직 사진기자다. 지금은 중앙일보 문화스포츠 부문 에디터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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