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10
사진을 두고 흔히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 칭하지만 반대로 사진은 ‘세상을 비추는 빛’ 그 자체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인식하기 위해 빛이 필수인 것처럼 ‘오늘’을 바라보는 눈을 뜨기 위해 우리는 사진이라는 빛이 필요하다.
글 | 현정아 기자
기사제공 | 월간사진
10월1일부터 내년 6월2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연속기획전시
‘세계 속의 한국’ 앞서 ‘한국 속의 한국’ 찾기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수백번은 더 들어 봤을 이 진부한 문장에 제대로 된 의문을 가져본 이는 몇 명이나 될까. 너무도 뻔해서 당연한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당연하다는 것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 세계화의 흐름이 거센 만큼 그 흐름에 섞이지 못한 채 소외된 것은 없는지, 정체성을 상실한 채 맹목적으로 추종하진 않았는지, 지금이야말로 진중한 의문을 가져보아야 할 때이다. 과연 한국의 사진은 세계화의 조류를 타고 순항 중일까.
한미사진미술관은 올 여름 호주에서 한국-호주 수교 50주년을 맞아 국제교류전시를 연 바 있다. 호주의 여러 국공립 미술관과 접촉하며 세계 속 한국 사진의 위상과 현주소를 점검해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그들이 목격한 실상은 참담했다. 비교적 해외에 널리 알려진 중국과 일본 사진과 달리 한국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량부터 비교불가였다. 호주 국공립 미술관이 그나마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나 한국작가 리스트 역시 신진 작가가 대부분이었다. 현지에서 활동하지 않는 한, 웬만한 중견 작가도 그곳에선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현재 그들의 시선이 점차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점에서 절실한 과제는 ‘세계 속의 한국’이 아닌 ‘한국 속의 한국’을 찾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을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 색을 잃어버린 한국이 아닌, 현대적인 동시에 가장 전통적인 우리의 얼굴을 담고 있어야 한다.
프리즘을 통과한 일곱 빛깔 빛의 향연
한국사회의 솔직한 얼굴과 그 얼굴을 가장 진솔하게 담아내는 이는 누구일까. 해외에 소개할 한국 사진가를 찾는다는 명목에서 기획된 한미사진미술관의 연속기획전은 현대적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작가에 주목했다. 그리고 선정된 작가는 해외가 아닌 국내에서 전시를 선보인다. 타인을 마주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거울 앞에 선 셈이다. 국내 전시에 이어 해외에는 도록 등의 형식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SPECTRUM’이란, 빛을 파장에 따라 분해하여 배열해놓은 것이다. 고유한 파장을 가지고 서로 다른 빛을 내는 7명의 작가들은 한국 사회의 면면을 골고루 담아낸다. 이들은 모두 디지털작업을 하고 있는 컨템포러리 작가들이다. 한미사진미술관측은 “디지털사진이 대중화돼있는 외국 환경을 고려했을 때, 너무 낯설거나 이질적인 방식의 작품보다는 디지털매체를 이용한 작품을 먼저 선보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해외에 친숙한 작품을 우선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무엇보다 주제를 다루는 감각이나 작업스타일이 젊고 동시에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공통된 정서를 사진 속에 녹여내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했다. 해외에 소개하기 전에 국내 관람객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시의 첫 시작을 알린 임택은 10월1일부터 10월29일까지 ‘옮겨진 산수 유람기’라는 주제로 동양화의 관념적 세계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사진을 선보였다. 작가는 전통적 동양화에서 벗어나 조각으로 산수를 설치한 후 디지털 합성으로 최종 결과물을 얻어낸다. 작가만의 재기발랄한 작업으로 재탄생한 현대판 ‘몽유도원도’인 셈이다.
11월 전시의 주인공 김재경은 11월5일부터 12월3일까지 ‘Mute 2’ 연작을 소개한다. 지난 2000년에 첫 선을 보인 ‘Mute’는 일시 정지되어 적막해진 순간을 의미한다. 후미진 달동네에서 작업을 시작한 작가는 재개발 사업으로 무참히 짓밟히고 있는 현장을 사진으로나마 정지시키고 하찮게 여겼던 존재에게 묵상할 시간과 묵언의 위로를 건넨다. 무차별적인 도시계획과 재개발 문제로 소음과 소란이 멈추지 않는 한국사회에 잠시나마 고요를 선사한다.
김재경의 뒤를 이어 그동안 여성의 몸, 국제결혼, 국내 거주 외국인 등 동시대 이슈를 다뤄오며 주류에서 비켜난 한국의 이방인들을 사진의 전면에 등장시킨 김옥선의 사진이 12월10일부터 2012년 1월7일까지 전시된다. 이어서 1월14일부터 2월11일까지는 시간의 추이에 따라 도시에 생겨나는 새로운 무늬와 사라지는 무늬를 쫓으며 한국의 실존적 상황에 주목하는 화덕헌의 전시가, 2월18일부터 3월17일까지는 자연을 소재로 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현대인의 정신을 풍경으로 묘사하는 이정록의 작품이 전시된다. 3월31일부터 4월28일까지는 그동안 현대사회의 복제성을 문제 삼으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여온 난다의 전시가, 마지막으로 5월4일부터 6월2일까지는 현대문명에 밀려 주변으로 밀려난 삶을 담담히 그려내는 최중원의 작품이 선보인다.
7명 작가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한국의 ‘오늘’을 생생히 담고 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외면 받으며 치유되지 못한 아픔도 건드린다. 상처와 흉터를 온전히 드러냈을 때 웃음도 비로소 진정성을 얻는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며 우리의 진솔한 표정을 찾아가는 것이다.
전시의 스펙트럼 넓힌 한미사진미술관
그동안 기획전 형식으로 젊은 작가를 소개한 전시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가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한미사진미술관이 그 무대라는데 있다. 주로 중견 작가 위주의 전시를 기획해왔던 한미사진미술관의 젊은 시도는 미술관 자체에도 신선한 동력이 되지만 무엇보다 젊고 실력 있는 작가들에게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미술관 20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