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4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그건 다른 세계를 슬쩍 엿본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데, 그 모습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아름답다. 단지 바라보고 그렇게 받아들인다.”
기사제공 | 월간사진
온통 텅빈 거리와 주인공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멀고 등을 돌리거나 표정을 알 수 없는 사람들. 낮은 콘트라스트의 흑백사진은 붓으로 그린 산수화를 닮았다. 인간은 그 안에서 불안하고 때로는 어정쩡하거나 우스꽝스럽다. 의자와 갈라진 도로의 틈새, 풀 한 포기와 자동차들도 저마다 표정을 갖고, 상념의 세계로 이끌고 결국은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든다.
서영기(47)의 사진은 멀리 떨어져서 다른 세계를 엿보는 듯하다. 길고 긴 상념이 실체가 불분명해져 흐릿한 윤곽으로만 남은 듯한 낯선 순간을 포착한다. 서영기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목수로 일하며 사진을 찍는다. 서강대 사진동아리인 서광회에서 활동할 때는 서강대 사진학과에 다닌다고 할 정도로 사진에 푹 빠져 살았다. 졸업 후에는 미국으로 사진 유학을 떠났고,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사진강의 노트’의 저자로 알려진 필립 퍼키스에게서 사진을 배웠다. 98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잠시 포트폴리오를 들고 갤러리 몇 곳을 찾아갔지만 곧 포기하고 목수 일을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한다는 사실이 내키지 않았다. 목수는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일이었고 대학원 학비를 버느라 아르바이트로 해봐서 낯선 일은 아니었다.
숙련된 목수는 몸의 예민한 감각에 의지한다. 오차 없이 모서리가 맞아떨어지고 정확한 위치와 크기에 나무가 들어선다. 일이 없는 날에도 숫돌에 끌과 대패의 날을 갈면서 감각을 유지한다. 숫돌과 끌의 경사면이 맞닿도록 자세를 잡고 갈아나가면서 몸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다. 끌과 숫돌처럼 서영기와 세상이 조우하는 사이에도 일정한 감각이 계속 작용한다. 10년이 넘는 시차를 가진 작품이지만 놀랍도록 일관성을 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숫돌에 갈아 날 세운 몸과 사고의 반응
엉성하고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장면이나 대상들이다. 어떤 활기나 구체성이 증발해버린 사진에서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보는 사진가의 감성이 슬픔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사진은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배회하는 것’이라고 인용한다. 이에 관해 필립 퍼키스는 “서영기의 사진은 가장 평범한 대상들을 명확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행위는 가장 평범한 장면이 의미를 지니게 되고 심지어 인간조건을 드러낸다는 것을 가혹할 정도의 정밀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전시와 사진책 출간을 위해 한국을 찾은 뉴욕의 목수 사진가 서영기를 만났다.
목수와 사진가가 서로 통하는 지점은? ▷ 목수는 몸의 반응이 중요하다. 나무를 만지고 몸이 반응하며 정신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사진은 세계에 대한 내 사고의 반응이다. 대상은 달라도 반응이 반복되고 집중되면서 동일한 지점에서 둘은 경계가 없어진다. 뭔가에 대해 일체되는 일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
점심 후 30분이 유일한 작업시간
사진작업은 언제부터 다시 시작했고, 계기는? ▷ 대학원을 다니던 중간인 96년부터의 작업이다. 2년?정도?작업을?했고, 졸업하고는 10년 동안 사진작업을 할 수 없었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고, 그다지 아쉽지는 않았다. 목수로?살아갈?수?있었고,?그?일이?주는?재미도?대단한?것이었다. 사진을 다시 시작한 계기는 6년 전쯤에 못을 안 쓰고 전통방식으로 가구를 만드는 한 일본 가구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다. 자투리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러면서 생각을 조금은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매번 이동하고 점심시간도 특별히 주어지지 않는 현장목수 때와는 달리 가구목수는 일정한 장소와 시간 동안 일하니 사진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렇게 4년 동안 점심을 먹고 나서 남는 시간 동안 카메라를 메고 상념 속에 공장 주변을 매일 돌아다녔다. 출퇴근 시간에도 찍었지만 중요한 작업은 점심 후 30분의 시간 동안 이뤄졌고 특별하게 어떤 장소를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작업시간의 공백에도 사진의 일관성이 있다. ▷ 대학원 때 2년 동안 찍은 곳은 맨하튼의 벼룩시장이었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 안에는 기이한 형상들이 많았고 그것과 공간, 빛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특별한 이야기가 없고 마냥 반응을 기다리는 것에 지칠 즈음에 필립 퍼키스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랄프 깁슨을 예로 들며 자기 안에 갇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뒤 우연히 들은 동양화 수업에서 중국 원나라 말기 4대가 중 한명인 황공망의 그림을 보았다. 그의 무심한듯 의도적인 선은 시간의 무상함과 허무 사이에서 걷고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지적인 선이었다. 어려서 산 그림을 자주 그려 처음 보는 순간부터 익숙했고, 사물을 보는 태도나 거리감이 나와 맞았다. 그리고 그런 기분으로 사진을 해보고 싶었다. 뭔가를 낚아채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물이나 형태가 내게로 와서 내 생각이 사물의 톤과 동일한 느낌으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자연스럽고 편한 방식이었다. 서투르고 엉성하지만 부족한대로 이어지는 작업이 좋다. 그사이 상념하며 그러한 감각을 유지하려 해왔다.
동요하는 지적인 인간이 섰던 그 자리에서
장소에 관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가? ▷ 브룩클린, 퀸스, 뉴저지의 저지 등 다양하나 장소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편벽된 내 기질에 맞는 무엇인가가 이들 지역, 어느 곳엔가에 있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지나려 하는 길이 있는데, 그곳에는 오래되어서 색이 바랜 조그만 철문이 있다. 조잡하다고 할 그 문에서 항상 감동을 받고 설레고 자극을 받는다. 딱히 이유랄 건 없지만 시간이 색깔, 모양, 구조 등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면서 지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상상을 한다. 공장 주변의 길가에도 좋아하는 엉성한 얼굴들이 많이 있다.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버려진 것들,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 어설프게 마무리된 것들, 대강대강 지어진 것처럼 보이고 대충대충 기워낸 것처럼 보이는 그런 표정을 가진 것들이다.
좋아하는 사진가는? ▷ 으젠느 앗제와 로버트 프랭크다. 그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동요하고 있는 지적인 한 인간’을 만나고 있다는 기분이다. 사진은 이미지에 의한, 이미지로 하는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재현된 것이 무엇인가보다는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의 존재가 견디고 서있던 그곳과 그 시간이 사진 이미지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바라본다. 그들이 서있던 자리에서 지녔을 생각과 감각을 그리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한 순간에 대한 그들의 강렬한 인식을, 입을 꽉 다물고 서있었을 것만 같은 그들의 부드러운 절망을 같은 호흡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