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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예술가는 배고프다, 왜? 돈이 안 되니까

2011-12-20


영화속 주인공 펙커와 달리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창작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예술을 둘러싼 모든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술은 문화의 산실이고, 한 작가의 창조적 세계이며, 감상할 만한 충분한 가치와 자산가치까지 가지는 고부가가치 상품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부동산처럼 예술작품을 담보로 받아 준다면…. 젊은 작가들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기업형태의 투자자와 펀드가 생긴다면….

글 | 인효진 객원기자
기사제공 | <월간사진> 2004년 10월호


내가 ‘Pecker’라는 영화에서 흥미롭게 본 부분은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뉴욕의 예술계 시스템이다. 예술행위에 대한 특별한 의지 없이 얼떨결에 성공한 예술가가 되어버린 펙커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는, 물론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과장된 우연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곳이 뉴욕이라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기에 그다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 찍는 행위에 대해 특별한 해석이나 예술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즉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을 갖추지 않았으며, 단지 평범한 사람의 부류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예술활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사진 찍는 재미있고 좋으니까, 일종의 취미생활처럼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하나의 놀이에 몰두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붙여놓았던 사진들이 어느날 운좋게 영향력 있는 큐레이터의 눈에 띄게 되었고, 잘 짜여진 마케팅에 의해 단 한번의 뉴욕전시로 사회적 명성을 지닌 아트 스타로 둔갑하게 되었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예술계의 스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술계’라는 거대한 테두리 속에 들어와 있었고, 정식으로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예술가로, 작가로 부르기에는 조금 마음이 껄끄럽다. 그는 예술가일까, 아니면 작가일까.


기본적으로 그의 작품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면 아무리 마케팅이 좋았다고 한들, 애초에 스타 탄생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나 작가의 기준이야 보는 이에 따라 어떤 기준을 적용시키느냐에 따라 다 다를테니 명확하게 말하기도 힘들 것이고, 달리 생각해보면 사실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의 메카라는 뉴욕 무대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의 행로와 성공은 확실히 실력보다는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만약에 그가 현실 속에 존재하는 작가였다면 그 운을 어디까지 끌고 나갈 수 있을지가 참으로 궁금해진다. 펙커의 경우, 마치 배우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않다가 우연하게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첫 출연한 영화가 엄청난 흥행에 성공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연예인의 경우와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둘 다 가볍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처음 들어선 길이야 어쨌건 그 길로 계속 자기 신념과 주관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나간다면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보다 재미난 것은 우리나라 예술계 같으면 꿈도 못 꿀 그런 신데렐라 같은 스타 탄생이 뉴욕에서는 연예계가 아닌 예술계쪽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뉴욕은 예술, 예술작품, 예술가를 보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그 기초부터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시가 총대를 멘 이후 더욱 공격적인 자본주의의 대표주자가 된 미국은 예술작품을 심미적 가치와 더불어 하나의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생각한지 오래다. 그리고 실제로 예술작품은 무한한 경쟁력을 지닌 최고의 상품이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는 그 자체로서 얼마든지 최고급 물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훌륭한 공장 라인을 갖춘 셈인데, 왜 우리나라는 이걸 인식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걸까.

예술이라는 기본 가치를 떠나서 단순히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의거해서만 봤을 때도 예술가란 사회에 상당한 이익이 되는 존재다. 따라서 정말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갖춘 국가 경영자나 미술계 인사, 사업가라면 예술가들을 잘 활용해서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일단은 예술계쪽에도 충분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며, 예술작품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잘 발달된 시장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는 기초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고, 많은 재능있는 젊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품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사회속에서 검증받을 때까지, 경제적 여건 때문에 중도에 자신의 재능을 버리지 않도록 후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 예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예술작품이 가진 문화적, 정신적, 경제적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배부른 자들이나 팔자 좋게 즐기는 한가한 것이라는 일부 계층의 편향된 사고가 있다. ‘예술가’란 직함을 가진 인간들은 늘 사람들에게 한심하고 불안정하게 비춰지기 일쑤이다. 그들이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가치체계 아래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독자적인 논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정력적으로 일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시기에, 돈과는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화판에 그림이나 그리고, 사진이나 찍고, 돌이나 주무르고, 퍼포먼스란 이름으로 길거리나 헤매고 다니니 어찌 정신나간 짓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서로의 생각과 감성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소통은 언제나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잣대로만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에 그 간격 또한 결코 좁혀질 수 없다.

뿌리가 깊은 것은 한번에 변화시킬 수 없다. 뿌리부터 서서히 물을 들이거나 아니면 굉장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한번에 뿌리를 뽑아버리고 새로운 것을 깊이 주입시키는 수밖에 없다. 소수의 산발적인 게릴라적인 움직임으로는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그나마 깨어있는 자들의 인식만 조금씩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뿌리부터 변화시키지 않으면 언제나 임기응변식의 땜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뿌리를 변화시키려면 사람들의 인식 자체를 바꾸어 하나의 패러다임을 다시 형성해야 한다. 이럴 때는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강한 매스컴이나 언론매체, 정부 차원의 정책의 거대한 메커니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다수의 군중들은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으면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무리 난리를 쳐도 꿈적도 하지 않는다. 인간들이란 늘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 일단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예술을 둘러싼 모든 시스템에 대해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람들에게 예술은 문화의 산실이고, 한 작가의 창조적 세계이며, 감상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산의 가치도 가진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지금은 예술작품의 경제적 가치를 실질적으로 인식하기에는 작품 값이 너무 추상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천문학적인 숫자인 유명한 작품의 값만을 알고 있고, 그 숫자들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쇼킹함을 제공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제공하진 않는다. 그건 그냥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리벽 안에 갖힌 모나리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와는 별개인 것, 그냥 바라보는 것, 소유할 수 없는 것, 사람들은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동경은 하지만, 완벽하게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곧 체념하게 마련이다. 체념은 결코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걸로 끝이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면 스스로 소유한 예술작품에 자산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실생활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은행에서 대출을 할 때 부동산처럼 예술작품을 담보로 받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은 자칫 작품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환산하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지만, 사람이건 정책이건 무슨 일이든 부정적인 측면은 있게 마련 아닌가.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면 문제가 되는 것들은 나중에 수정, 보완을 거쳐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정책이 시행되기만 한다면 사람들은 예술작품이 실질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인식하게 될 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을 구매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가 생길 것이다. 또한 댓가를 치루고 작품을 구매하는 것인 만큼, 가격 대비 좀 더 질 좋은 작품을 찾기 위해 유명작가의 작품 뿐만이 아니라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는 신진작가들의 작품구매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은 재산가치를 인정하게 됨으로서 좋은 작품을 싸게 매입하고자 옥션같은 예술 경매 부분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고, 수요가 생기니 정체된 공급물량도 제대로 풀리면서 적정가격을 갖는 시장시스템이 활성화될 것이다. 거래소에 상장되기 전에 좋은 주식을 싸게 매입해서 그 회사에 투자를 하는 것처럼, 예술쪽에서도 재능이 있고, 싹이 보이는 젊은 작가들에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기업형태의 투자자, 혹은 펀드 같은 투자형식이 생길지도 모른다.


물론 예술행위 자체는 숭고한 것이다. 그런 예술가들의 창조적 행위를 너무 시장 원리에만 입각해서 상품으로만 재단해서도 안되겠지만, 워낙에 예술계가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고, 그 예술계를 지탱하는 예술가들의 삶이 도저히 창작 활동만을 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질의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는 기초토양, 즉 예술가들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끔 사회환경이 조성되야 한다는 점에서 제반적인 예술계를 위한 시스템을 어떤 형식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담보대출이든 무엇이건 일단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는 정책이 있다면 정부차원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일관성 있게 추진해 한번 시행해 본 다음, 거기에서 발생하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들을 수정해나간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일이란 부딪쳐서 해나가다 보면 어떻게든 돌파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예술계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클지도 모르는데, 미리 서구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역할 모델이 있다면 시행착오를 훨씬 줄일 수 있다. 벤치마킹도 수정해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역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역사들을 통해 자신의 행로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Pecker
볼티모어의 한 샌드위치 가게에 근무하는 펙커(에드워드 펄롱 분)는 사진광이다. 버스안의 여인, 못 생기고 뚱뚱한 불평 투성이의 길거리 여인, 술집의 남성 스트리퍼, 창녀, 가게의 손님 심지어 도둑까지 그의 카메라 렌즈를 벗어날 수 없다. 연출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장면을 사진의 소재로 삼으며 자신이 찍은 사진을 가게에 전시해 놓고 팔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가게에 온 한 여자 큐레이터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뉴욕으로 초대한다. 그녀가 마련한 뉴욕의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은 호평을 받으며 성공리에 전시를 마치게 된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그의 여자친구 쉘리(크리스티나 리치 분)는 펙커가 유명해지면 자신들의 관계가 멀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펙커는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한다. 펙커는 잡지표지의 모델로 등장하는 등 인기를 날로 더해가고, 마을에서는 펙커의 모델이 되고자 안달이 나기도 하고, 그를 모방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펙커는 인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유혹을 물리친 채 아버지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새 가게를 열고 생활한다.



원 제 /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
감 독/ 존 워터스
주 연 /에드워드 펄롱, 크리스티나 리치
런닝타임 /87분
국내배급사/씨넥서스
자 막 /영어,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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