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6
텔레비전이 등장한 이후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한 포토저널리즘은 디지털 사진과 멀티미디어라는 환경과 접목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포토저널리즘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더욱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글 | 김성민 경주대 조형예술학부 사진영상학과 교수
상업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심층 리포트보다는 짧은 기간에 급조되는 현대의 포토저널리즘 성향과 저널리즘의 순수성을 잃은 조작되고 연출된 사진들은 포토저널리즘 발전의 큰 걸림돌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을 좇는 현대의 문화적 추세나 폭력적 내용의 추구 자체가 포토저널리즘에 더욱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결국 지난 20년간 수없이 거론되어 왔던 포토저널리즘의 피폐는 양질의 사진작업에 할애될 수 있는 지면의 부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사진가들에게 많은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안겨주었다.
특히 최근에 나타나는 디지털 사진 조작의 유연성은 주류 저널리즘의 상업적, 정치적 성향에 도덕 불감증마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게 만든다. 심층 저널리즘의 위기 이외에도 35mm 사진과 맞먹는 선명한 고화질 텔레비전의 출현은 뉴스 사진의 대체라는 위기의식으로 이어진다. 고해상도 감시 카메라의 등장 또한 기존 포토저널리즘에서의 풀 시스템(pull-system)과 같은 기계적인 원리가 사진가를 대체하는 작업을 더 빠르게 진행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많은 사진 전문가들은 본질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포토저널리즘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뉴미디어의 적극적인 활용을 들고 있다.
뉴미디어의 의미 : 매체 헤게모니의 회귀
대중매체의 산파라고 할 수 있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은 여러 권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수정, 보완할 수 있고 그리고 손쉽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같은 대량생산 체제에서의 편집의 힘은 바로 영향력을 의미하며, 결국 대중매체를 소유했다는 것은 곧 힘의 상징이 되었고, 미약한 힘을 가진 사진가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디지털 시스템의 첫 번째 의미를 글과 사진, 동영상, 사운드, 그래픽 등을 총체적으로 퍼스널 컴퓨터에서 편집,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그리고 수정, 보완될 수 있다는 구텐베르크 발명의 장점은 그 어느 때보다 손쉽게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페이지 레이아웃 및 이미지 처리 프로그램의 등장은 영향력과 변화의 상징인 출판의 힘을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네트워크상에 연결된 멀티미디어 환경과의 원활한 접속은 정보의 바다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체 메커니즘의 모색 : 개인사진집, 시디롬
기존 매체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던 사진가들은 대안으로 개인 사진집 출판을 선택했다. 유진 스미스(W. Eugene Smith)가 라이프 지를 위해 촬영했던 ‘자비의 인간(Man of Mercy)’에서 보여주었던 양면 스프레드 사진(Photo-Spread)은 당시의 출판 시스템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전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더 아이러니컬한 것은 라이프 지가 선택한 20여장의 사진의 부족하다고 유진 스미스는 오히려 분노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개인 작품집으로 출간한 포토 에세이는 250여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결국 한 사진가가 작업의 총체적 결실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개인 작품집 제작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제임스 나트웨이(James Natchwey), 매리 엘렌 마크(Mary Ellen Mark), 수잔 마이젤러스(Susan Meiselas), 유진 리차드(Eugene Richards), 래리 타웰(Larry Towell)과 같은 기성 저널리스트들은 잇달아 사진집 출판을 선택했다. 사진집이라는 대체 포토저널리즘이 갖는 깊이와 작품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전자출판 시스템이 제공하는 환경에서 사진가는 아트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메커니즘의 핵으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규모 출판은 텔레비전이 가지고 있는 다수의 대중을 확보하기 어렵고, 매력적인 사운드와 움직임도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전통적인 작품집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시디롬 타이틀이었다. 시디롬 타이틀이 갖는 장점은 많은 작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점과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물론 전통적인 작품집이 보여주는 질적인 면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사진뿐만 아니라 문자, 음성, 그래픽과 같은 디지털 화상을 전자적으로 결합할 수 있어서 창조적인 면에서 기존의 매체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온라인 포토저널리즘 : 미래의 이야기일 뿐인가?
많은 전문가들은 포토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으로 네트워크상의 인터액티브 멀티미디어 환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터액티브 멀티미디어는 이미 저널리즘의 전반적인 부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멀티미디어는 오락, 교육 혹은 정보를 목적으로 사진, 문장, 오디오, 비디오, 애니메이션까지도 합성처리할 수 있다. 또한 인터액티브 멀티미디어는 시청자가 화상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나 리모콘을 사용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다. 몇몇 멀티미디어 프로그램들은 ‘재생’ 시퀀스가 있어서 사용자가 사진, 텍스트, 오디오 등이 들어 있는 미리 결정된 통로로 가도록 만들어지기도 한다. 뉴스위크-인터액티브의 시디롬 사업에 가담했던 수석기자 마이클 로저스는 네트워크상의 멀티미디어가 세 가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1. 미래의 미디어 감성세대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텔레비전 문화보다 인터액티브 방식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멀티미디어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창조자들은 관심을 끌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 사고 위주의 세계로 끌어들일 것이다.
2. 멀티미디어 혁명은 저널리즘적인 판단의 본질을 확장시킬 수 있다. 전자세계에서 공간은 그다지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한 스토리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발전시켜 각각의 스토리를 다양한 매체 형태로 재현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 인쇄매체의 저널리즘에서 문제가 되었던 심층 리포트에 대한 지면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다. 일례로 뉴욕 타임즈의 인터넷 사이트(www.nytimes.com)는 1997년 세바스찬 살가도(Sebastiao Salgado)의 ‘랜드리스 워크즈 무브먼트(Landless Workers Movement)’라는 42장의 포토에세이를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포토저널리즘 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살가도의 육성과 함께, 뉴스기사와 지도 등의 자료도 함께 제공한다. 그리고 후속으로 게재된 질 페레스(Gilles Peress)의 ‘보스니아: 평화로 가는 불확실한 길(Bosnia: Uncertain Path to Peace)’은 온라인 저널리즘의 이상적인 형태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는 질 페레스가 사라예보 점령 말기와 서브족 대량 탈출을 촬영했던 150여장의 사진을 게재하고 있으며, 독자들이 작가에게 직접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구축했다. 특히 작가와의 인터뷰 등이 끊임없이 올라와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있다. 타임 온라인(www.time.com)과 워싱턴 포스트(www.washingtonpost.com) 등은 기존 잡지에서보다 확장된 형태의 포토저널리즘 섹션들을 운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텔레비전 방송국인 NBC가 합작으로 만든 온라인 저널리즘 사이트의 MSNBC 네트워크는 고정적으로 사진가들이 - 이들 중 일부는 네트워크와 독점으로 계약을 한 사진가들도 있다 - 전세계에서 취재한 심층 사진 리포트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 방송국이 웹진을 통해 이러한 포토 에세이 형식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은 지면 매체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온라인 저널리즘이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을 모두 취합할 수 있는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가들이 공동으로 구축한 웹진인 무사리움(www.musarium.com)는 기존 매체에서 보지 못했던 많은 장수의 포토 에세이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이한 사항은 이들이 쇽웨이브(Shockwave) 등을 이용해 상당히 진보된 형태의 멀티미디어 환경을 구현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점과 여러 웹 사이트들을 상호 연결해 구축했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는 기존에 별개로 존재하던 홈페이지 형태보다는 결속된 단체로서 일종의 사이버 공동체(Cyber Community)를 형성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도 포컬 포인트 8(f-8, www.f8.com), 아이리스 갤러리(www.chris-iris.com), 노백로드 다큐멘터리 사이트(www.nobackroads.com) 등 많은 다큐멘터리 언더그라운드 웹진들이 다수 등장해 온라인 포토저널리즘의 미래를 한층 밝게 하고 있다.
3. 이러한 무한대의 공간은 독자들이 모든 상황을 장악하기 때문에 왜곡된 보도가 나올 가능성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만약 기자가 부정확한 보도를 할 경우 게시판 등에서 나타나는 독자들의 의견이 왜곡 보도한 기자를 단두대에 올려놓게 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7년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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