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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죽음 넘어 희망 찍는 의사 사진가 최영환

2011-08-16


사진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소아과 전문의인 최영환은 사진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삶 곳곳에 스며든 죽음의 단상을 표현하며, 의료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희망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는 2010 동강사진워크숍에서 삶과 죽음을 주제로 작업한 흑백사진 연작으로 공동수상자인 정윤호와 함께 베스트 포트폴리오 리뷰상을 수상했다.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다룰 수밖에 없는 의사라는 직업에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을 다룬 작업 ‘레퀴엠’은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를 풀어낸다. 정주하, 이창수, 이재구, 박영미 등의 리뷰어가 참여한 리뷰에서는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와 뛰어난 시각적 구성력 등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한국코피온 및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등의 의뢰를 받아 어려운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이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 중이다.

글 | 월간사진 김보령 기자


의사가 찍은 죽음의 공포 극복하는 사진

수상을 축하한다. 의료일로 바쁠 텐데 언제 사진을 찍었는가?
틈날 때마다 혹은 주말에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속에 그려졌던 이미지가 보이면 바로 찍는다. 또한 방학으로 소아과가 비교적 덜 바쁜 여름과 겨울, 일년에 3~4차례 참여하는 NGO 활동에서도 찍었다.

포트폴리오 리뷰가 도움이 되었는가?
2009년에 처음 동강사진워크숍 포트폴리오 리뷰에 참여했다. 지원자들이 대부분 사진학과 출신이어서 잔뜩 긴장했지만 리뷰어 분들이 의외로 좋은 말씀을 해줘 용기를 얻었다. 그래서 1년 동안 작업을 보충해 2010년에 다시 참가했다. 리뷰어 세 분에게 20분씩 리뷰 받았다. 기획자와 교육자 등 사진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로 구성된데다 아마추어에게도 기회가 열려 있어 크게 도움을 받았다. 게다가 상까지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아버지가 영화촬영감독이셨는데 퇴직 후 사기업 홍보실에서 사진 관련 일을 하셨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 돌아다니던 망가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곤 했다. 대학 학보사에서 본격적으로 사진기자 일을 했지만 바빠서 그만 두었다가 약 10년 전쯤 다시 기초를 배웠다. 개원 후 다시 바빠져 공백기를 가진 후 몇 년 전부터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요즘은 아마추어 대상으로 하는 사진강의가 많아 배우려는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배울 수 있어 좋다.

‘레퀴엠’ 작업은 언제 처음 구상했는가?
처음부터 콘셉트가 확실했다기보다는 찍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작업이다. 어릴 때부터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 4살 때 거의 죽기 직전까지 심하게 아파 오랫동안 입원한 적이 있다. 아마 어린 마음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나보다. 그래서 소아과 의사가 되어 병에 관해 잘 알면 죽음이 안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했다.(웃음)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서는 내과로 장래희망이 변했다가 인턴 때 중환자실을 경험하면서 다시 소아과의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죽고, 만성적으로 병에 시달리다 죽어나가는 상황을 매일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 내겐 너무 힘들었다. 병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누구나 죽는다라는 사실이 굉장히 견디기 힘들었다. 의사가 되면서 누구보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 반면 아이들은 아직 죽음에서 멀리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다양한 죽음을 목격했을 것 같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들은 대부분 절망하고 불안해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그중 소수의 사람들은 종교적 의지와 자기 신념으로 평안히 견디어 내지만 대부분은 혼란스러워한다. 갑자기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평소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나머지 하나는 아예 그 사실을 거부해버리는 것이다. 건강염려증 환자처럼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자신과 상관없다고 외면하는 것도 문제다. 죽음이 자신과 관계없다는 생각 때문에 생명경시풍조가 생겨나고 범죄와 자살이 늘어난다. 일상생활에서는 죽음에 대해 거의 무관하게 생활하던 사람이 막상 죽음이 닥치면 가장 불안해한다. 그래서 평상시에도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어차피 사람이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모두가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유한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평생을 의지할만한 신념이나 진리를 찾아야 한다. 평소 죽음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에 대해 검증하다보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삶의 태도 역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레퀴엠’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노래’라는 의미다. 원래는 죽음에 대한 강박에서 풀려난다는 의미에서 ‘정박한 배가 출항을 위해 밧줄을 풀다’라는 뜻의 ‘Cast off’라는 제목을 먼저 생각했는데 어려워서 관두었다.(웃음) 내게는 기독교 신앙이 있어 절대적인 존재에 의지하며 평화를 찾았지만, 각자 의지할만한 진리의 대상을 찾아 죽음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자는 내용의 작업이다. 일상에서 죽음에 대한 감정을 느꼈을 때 셔터를 눌러 얻은 사진으로, 작업의 초반은 죽음에 대한 이미지, 후반은 진리를 찾아 죽음을 넘어서 자유를 찾게 되는 이미지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이미지는 주변 일상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소재로,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극복의 과정을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로우키 톤으로, 극복의 이미지는 정상톤으로 마무리했다.


의료현장 아이들의 트라우마와 희망 기록


향후 작업계획은?
지금까지는 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사진을 찍었지만, 앞으로는 인생의 철학적인 문제들을 주제로 삼고 싶다. 가령 인생의 선택과 우선순위, 타인에 대한 관심과 긍휼, 진리와 정의수호의 용기 등 다소 추상적인 주제들이다. 또한 1년에 3~4번 참여하는 의료봉사를 하면서 마주치게 된 아이들의 생활상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교육지원을 통해 새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 매우 드라마틱했다. 의료는 일시적이지만 교육은 아이의 평생을 바꾼다. 아이들이 변하는 과정을 보면서 교육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다.

NGO 사진은 어떻게 찍어왔는가?
의료봉사를 하면서 사진도 같이 찍고 있다. 작년엔 아이티를, 얼마 전에는 방글라데시를 다녀왔다. 재작년엔 한국코피온에서 의뢰를 받고 여러 작가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가서 폭력으로부터 희망을 찾는 아이들을 찍었다. 작년에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의뢰 받아 어려운 과정에 놓인 아이들이 치료를 받으며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취재했다.

요즘 한창 예술교육이 유행이다. 다큐멘터리 ‘꿈꾸는 카메라’를 보면 스웨덴의 한 여류사진가가 사진교육으로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는 내용이 나온다. 그녀는 인도 켈커타의 사창가에 사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사진교육을 하며 그중 재능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유럽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고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한다. 그런 과정을 보면서 사진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고,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만드는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기회가 되면 안쓰는 구형 카메라를 모아 아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싶다.

‘a PinWheel’이라는 사진작업도 아이들을 찍은 작업인가?
2009년 8월 한국코피온의 의뢰로 캄보디아의 HCC(Health Care for Children)라는 NGO 단체를 5일간 취재하며 그곳 아이들의 생활상을 촬영했다. 캄보디아 최대의 NGO 단체인 HCC는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희생된 7살에서 18살 미만의 여자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교육과 보살핌을 받으며 과거의 상처를 잊어가는 과정을 취재했다. 바람개비라는 상징물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작업이다.

자신에게 직업적, 사회적 사진의 의미는?
사진은 표현과 기록, 치유의 도구로서 의미가 있다. 의사로서 느끼는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인식을 사진으로 표현하면서, 베품의 과정에서 보게 되는 현실을 기록하기도 한다. 또한 죽음에 대한 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공포를 위로하는 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나와 연결된 주제가 아니면 작업하기가 쉽지 않더라. 앞으로도 내가 하는 일, 내가 관심 갖는 주제로 계속 작업하고 싶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1년 3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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