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7-08
사진 스토리의 주제를 정하는 데에는 더 많은 방법들이 존재할 수 있지만, 실제로 기존 작가들이나 사진기자들이 주제를 어떻게 선택해 작업을 했고, 그 결과물은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제 선택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지난호에서 필자는 주제 선택의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주제는 결코 멀리서 찾지 말라’고 강조한 바 있다. 주제를 가까이서 찾으라는 말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글 | 김성민 경주대 미디어아트학부 교수
도나 페라토, 조셉 로드리게스, 매트 헤론, 최순호의 사례
자신의 주위에서 찾아라
이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것, 혹은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사진 작업을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필자가 뉴욕의 ICP(국제사진센터,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에서 수학할 때 배움을 받았던 매그넘의 전 회장인 찰스 하버트(Charles Harbutt)선생이 내준 첫 과제는 다른 것이 아닌 자신의 방을 찍어 오는 것이었다. 포토저널리즘 전공 학생들은 처음에 모두 이 과제에 대해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차츰 수업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선생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하버트선생의 교육적 의도는 결국 ‘다큐멘터리나 포토저널리즘 작업을 할 때는 항상 자신이 가장 아끼는 사물을 대하듯 접근해야 한다’ 혹은 ‘단순한 공명심에서가 아닌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시각을 ‘공적인’ 주제에 적용해 좀더 창의적이고, 차별화되는 사진작업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주제를 가까이서 찾으라는 의미를 다른 차원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이 말을 좀더 직접적으로 해석하면 자신과 관련이 있는 주제로부터 사진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병원 25시’ 같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어린아이들이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환자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상당수가 자신처럼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이유는 간단하다. 병의 고통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사진에 적용해 보면 나와 가장 관련이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단순히 해외여행을 하면서 계획 없이 촬영된 사진을 무엇인가 대단한 작업을 한 것처럼 남들에게 공개하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방학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하고 촬영한 사진을 수업시간에 가지고 들어오는 학생들을 볼 때면 이런 이유에서 무척 난감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렇다면 자신 주변에서 주제를 찾아 작업한 작가는 누가 있을까? 여기서는 여성 문제를 다루었던 도나 페라토(Donna Ferrato)와 자신과 같은 민족인 히스패닉의 삶과 애환을 촬영했던 조셉 로드리게스(Joseph Rodriguez)를 소개하기로 한다.
가정 폭력 다룬 도나 페라토
도나 페라토는 보스톤의 갈란드 대학을 다니다 1976년부터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진 통신사인 블랙스타의 소속 사진가로 활동하며, 당시 라이프, 스턴, 피플, 뉴욕 타임즈, 빌리지 보이스 등의 주요 잡지들과 신문에 많은 사진들을 게재했다.
필자가 1990년 블랙스타에 근무하던 시기에 도나 페라토는 미국의 록 밴드인 건즈앤로지즈(Gun''s N Roses)의 전국 순회공연을 따라다니면서 촬영하고 있었다. 실제로 만난 것은 딱 한번 뿐이었지만, 털털하고 강인한 인상의 그녀는 당시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35mm 렌즈가 고정된 코니카 레인지 파인더를 편집실에 소개하기도 했다. 필자가 굳이 그녀의 장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요즘 학생들이 지나치게 좋은 장비에 집착하지 않는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단일 렌즈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작업은 그녀를 유명세에 오르게 했던 가정 폭력을 다룬 작업이다. 그녀는 1985년 잡지 어싸인먼트(assignment, 어싸인먼트라는 용어는 이미 연재 시작 부분에서 간단히 설명한 바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잡지나 신문을 위해서 하는 작업을 말한다. 흔히 클라이언트(client)로부터 작업 명령을 받고 하는 작업을 말하며, 앞으로는 영어 설명을 붙이지 않고 어싸인먼트로 통일해서 표기하기로 하겠다)를 하다가 자신의 부인을 폭행하는 남편을 목격하면서 가정 폭력에 관한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녀는 유진 스미스 추모 기금의 다큐멘터리 사진 공모에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업이 이전의 다른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과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녀가 가정 폭력의 원인과 결과를 매우 심도 있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가정 폭력 현장과 그 결과를 촬영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병원 응급실, 여성 보호소, 폭력 피해 여성 치료소, 자기 방어 교실 등을 촬영했다.
이 사진들은 1987년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 게재되었고, 개인 작품집인 ‘적과의 동침(Living with the Enemy)’로 출판되었다. 이 작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진 리차드(Eugene Richards)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잡지 어싸인먼트로 시작해 좀더 심층적인 작업을 거쳐 작품집으로 결실을 맺은 매우 모범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굳이 모범적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대부분의 잡지 어싸인먼트들이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개인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론 여성 사진가가 여성의 문제만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성 사진가인 수잔 마이젤러스(Susan Meiselas)나 신디 카프(Cindy Karp) 등은 중남미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게릴라와 함께 생활하는 등 남성들조차 해내기 어려운 어싸인먼트들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기서 도나 페라토를 소개한 것을 혹시 독자들이 여성은 무조건 특정한 주제만을 촬영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히스패닉계를 촬영한 조셉 로드리게스
조셉 로드리게스는 어린 시절을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보냈다. 그는 마약에 손을 대면서 여러 차례 범죄를 저질러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다. 감옥생활을 청산한 후 로드리게스는 사진을 배우기 위해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 등록했고, 여기서 래리 클락(Larry Clark, 래리 클락은 월남전쟁 중이었던 1971년 미국 중서부 지방에 사는 세 명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었던 마약 중독, 폭력, 혼란한 성생활 등을 기록해 다큐멘터리 사진의 고전이 된 ‘털사’로 널리 알려진 사진가이자 영화 제작자이다)을 만나게 된다. 그는 클락의 전시회 ‘털사(Tulsa)’를 같이 준비하면서 마약중독에 관한 그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사회적 다큐멘터리를 하기 위해 ICP에 등록을 하게 되고 여기서 프레드 리친(Fred Ritchin)을 만나게 된다. 당시 리친은 전설적인 브루스 데이빗슨의 작업인 ‘할렘 100번가’를 기념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같은 지역을 함께 촬영하는 과제를 내주었다. 로드리게스는 4년간 동부 할렘을 촬영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실렸고, 1995년 ‘스패니쉬 할렘’이라는 작품집으로 결실을 맺었다. 작업을 하는 태도와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에서 본다면 로드리게스와 도나 페라토는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NEA(국립예술기금)를 비롯한 많은 기금을 받은 로드리게스는 1995년부터는 미국의 서부인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이 지역의 갱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에서 갱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이라크 전쟁에 가는 것만큼이나 위험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위험스러운 일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떠한 과제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이고, 이런 이유에서 마약 스토리와 갱스토리를 촬영할 수 있는 사진가에게는 많은 어싸인먼트 제안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한때 마약에 손을 대고,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질렀던 비행 청소년이었던 조셉 로드리게스가 히스패닉계 빈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동부 100번가를 촬영하고,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갱들을 촬영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다루었던 주제들은 그가 아니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이 여기서의 포인트다.
이슈를 찾아라
우리는 흔히 정치적 이슈라고 하면 정치 이벤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국회에서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정치 이슈라고 생각한다면 이 주제에 접근이 가능한 기자들만이 취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을 넓히면 정치 이슈라는 것이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으로 출마하는 후보들이 유세를 통해서 “내가 ○○○이 되면, 이런 저런 일들을 하겠습니다”라고 공약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상대방 정당과는 어떻게 다른 정치색을 가지고 있는지를 피력한다. 좀더 쉽게 실례를 들어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가 가장 우방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정치 이슈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판이하게 다른 정치노선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점에서 이들이 다르냐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수, 혹은 진보의 색채는 특정 이슈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사안별로 보면 대외정책, 군사, 안보, 복지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이슈들이 있고, 인종, 성차별, 낙태, 동성애 등과 같은 이슈 등이 이 뒤를 따른다. 사실 사진으로 전자의 이슈들을 취재하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대부분의 주류 매체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쟁과 난민, 미군의 군사 개입 등은 포토저널리즘의 중심 주제를 차지하곤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나 분쟁지역을 취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몰라도 사실상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이 접근하기는 매우 어려운 주제다.
미국의 포토저널리즘 시장은 4, 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당시 대다수의 주제들은 해외의 사건과 전쟁 등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은 미국내의 작가들에게 하나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미국의 젊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내부를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다는 자성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젊은 작가들은 대니 라이언(Danny Lyon), 브루스 데이빗슨(Bruce Davidson) 등이 있다. 이들은 외국이 아닌 국내로 눈을 돌려 국내 이슈들을 촬영했다. 어떻게 보면 앞의 주제는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첫번째 주제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도 좋을 듯하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좀더 정치적인 문제로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가? 앞에서 이미 열거한 바와 같이 국내의 정치 이슈도 상당히 많다. 여성문제, 인권문제, 인종문제(이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국내상황과 동떨어진 이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단일민족이라는 정서가 유독 강한 우리나라에서 외국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이다), 복지문제를 비롯해 많은 이슈들이 떠오를 수 있다. 여기서는 인권과 복지에 관한 작업들로 알려진 미국의 매트 헤론(Matt Herron)과 조선일보의 최순호기자를 소개한다.
미국내 인종차별 고발한 매트 헤론
1960년대 미국에선 흑인 인권운동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번져갔다. 50년대에 촬영된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을 보면 백인 세면대와 흑인 세면대가 분리되어 있고, 버스의 앞자리에는 백인이, 뒷자리에는 흑인이 앉아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이처럼 미국의 인종 분리정책은 당시 심각했고, 이에 거세게 항의하는 미국 흑인들의 인권운동은 그동안 많은 사진들을 통해 보여졌다.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가는 블랙스타의 전설적인 사진가였던 찰스 무어(Charles Moore)일 것이다. 그의 사진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인권운동의 역사를 고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찰스 무어가 아닌 다른 작가를 소개하기로 하겠다. 매트 헤론(Matt Herron)은 1962년 미시시피의 잭슨시로 이주하면서 인권운동에 관한 사진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미국 남부지역은 유난히 인종 차별이 극성을 부리던 곳으로, 영화 속에서도 KKK단이 할거하는 본거지로 그려지곤 하는 지역이다. 헤론은 FSA(미국농림부)가 주관해 도로시아 랭과 워커 에반스 등이 참여한 다큐멘터리 사진에 깊은 감명을 받고 사진을 시작했던 작가로, 미시시피 지역의 인권운동을 촬영해 FSA 사진의 정신을 기리고자 이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인권운동 프로젝트에 가담한 8명의 사진가들은 미시시피, 알라바마, 조지아 등을 여행하면서 1964년 여름의 농촌과 소도시의 생활상을 기록했다.
그의 작업은 당시 미국 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30년이 지난 후에 미국 인권운동 다큐멘터리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촬영된 사진들은 전시, 영상, 서적 등의 다양한 형태로 알려졌으며, 헤론은 이후에도 계속해 인권운동에 관한 사진들을 수집해 아카이브화하였다. 그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인 www.TakeStock.org의 설립을 도와 당시의 디지털화된 사진, 캡션, 전기문, 사진가들과의 인터뷰 등을 이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관심 갖게 한 최순호
흔히 다큐멘터리 사진의 원조로는 루이스 하인(Lewis Hine)이 꼽힌다. 루이스 하인은 어린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현장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초기에는 뉴욕의 엘리스 아일랜드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을 기록했다.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 관한 사진은 인권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진가들이 촬영을 해왔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루이스 하인의 사진작업이 가지는 커다란 의미는 잘못된 현실을 지적해 ‘어린이 노동법’ 개정이라는 성과로 연결되어, 하나의 사회적 개혁의 힘으로 사진이 작용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동남아, 중국 등에 잘사는 나라로 비쳐져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국이 늘고 있다. 현재 돈을 벌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수는 전국에 걸쳐 5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산업재해, 질병, 성폭행, 사망 등의 고통을 당해도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할지 엄두를 못낸 것이 현실이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노동현장의 실태, 산재 후의 외국인 노동자 등의 작업으로 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다루어져왔다. 실태를 고발하는 것은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임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대두되고 있는 ‘대안 저널리즘’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일보 최순호기자의 작업은 후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1년간 취재해 조선일보에 게재하였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병원의 진료 상황과 외국인 노동자의 실태를 기록해 ‘Thanks’라는 작품집으로 결실을 맺었다. 당시 2억 5천만원 정도의 부채를 안고 있던 이 병원은 개원 1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어느 정도 부채를 청산할 수 있었고, 앞으로는 정부의 지원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어싸인먼트로 시작된 작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다수의 모범적인 포토저널리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사진집으로 출판이 되고, 그 작업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일련의 인종갈등과 폭동은 단순히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급격한 출산율 저하, 노동 기피현상 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고려한다면 외국인 이민 문제는 가장 큰 사회정치적 이슈의 하나로 남을 것이며 중요한 주제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