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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에브리데이! 프랑스 사진의 달

2011-06-09


프랑스에서 세 개의 사진 페스티벌을 봤다. 7월의 아를르(Arles) 사진축제, 9월의 페르피냥(Perepignan) 축제, 그리고 11월의 ‘파리 사진의 달’이 그것이다.

글 | 채승우


다양한 실험 보여준 페르피냥 축제

저널리즘 사진축제인 ‘비자 푸르 리마지(Visa pour l’image)’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페르피냥에서 열렸다. 올해로 20번째인 이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작은 운하가 도시 사이를 흐르고,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15세기의 성과 수녀원, 성당에서 사진 전시들이 열린다. 사람들은 작은 지도 한 장을 들고, 골목골목을 누비다가 거리의 카페에서 스페인 음식을 먹거나 벨기에 맥주를 마셨다. 저널리즘 사진이 축제꺼리가 될 수 있다니.

매일 밤에는 성당 마당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프로젝트쇼가 열려 한 시간 반 정도, 20여개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영웅이며 전설이기도 한 사진가들을 만나는 시간도 인기 있었다.

전 세계의 사진가들과 사진 에이전시, 신문 잡지 출판 관계자들이 모여든 것은 물론이다. 젊은 사진가들은 자기 작품을 싸들고 에이전시 부스와 전시장 사이를 바쁘게 누비며, 자기 사진을 보여주고 일거리를 얻을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사진은 팔기 힘들다. 우리는 좀더 강한 사회적 이슈를 원한다.”

‘팔기 힘들다’고 했다. 글쎄 저널리즘 사진잡지가 하나도 없고, 대부분의 사진기자들이 월급장이인 한국에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기준이었다. 저널리즘 사진이 일반인들과 어울리는 축제가 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사진시장이 형성될 수 있지만 사진가들은 사진을 팔아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축제를 통해서 보여지는 사진은 매우 다양했다. 대형 에이전시들이 보여주는 ‘팔기 쉬운’ 자극적인 사진들이 있었다. 쉽게 팔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 스타일의 사진을 하겠다는 고집스런 젊은이들은 그룹을 만들어 따로 부스를 차리고 자기들 사진들을 내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콜렉티프(Collectif)라고 불렀다. 동유럽이나 남아메리카에서 온 사진가들은 그 지역의 사진은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며 지리적인 장점을 내세우기도 했다.

프린지 축제인 ‘비자 오프(Visa off)’도 열렸다. 그 중에는 학생들의 전시가 있었고, 어떤 사진들은 기존의 보도사진들을 은근히 비꼬기도 했다. 이라크의 전쟁터 사진과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합성한 작품이 축제 본부 앞 전시장에 걸려 있었다.

축제 기간 중 심포지엄이 이틀에 걸쳐 열렸다. 올해의 주제는 ‘포토저널리즘, 저널리즘, 혹은 뉴스의 위기. 사진은 아직도 뉴스와 정보를 전달하는가?’였다. 하나의 축제 안에 비판과 반성이 함께 존재하니, 축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친구가 된 젊은 사진가들은 밤마다 광장의 카페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사진가로서 ‘살아남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주었다.



패션디자이너가 기획한 아를르 페스티벌

페르피냥을 떠나 아를르에 들렀다. 고호의 마을이기도 하며 프랑스 국립 사진학교가 있는 곳이기도 한 작은 도시에서 사진축제 ‘Les Rencontres d’Arles Photography’가 열린 지 올해로 39년째다. 7월에 시작한 축제의 전시는 9월까지 계속된다.

특이하게도 올해의 게스트 큐레이터는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안 라크루와였다. 사진 관련자가 아닌 패션디자이너가 총지휘자여서 올해 전시에는 참신한 것이 없었다며 투덜대는 이 지역 사진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는 패션사진에 대한 전시와 아를르에 대한 사진 특별 전시를 만들었다. 프랑스의 사진 자료들은 그야말로 방대하고 풍부해서 단지 패션사진과 아를르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감상거리를 제공했다. 1920년대에는 프랑스의 패션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하기 위해 모든 패션 생산물을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이곳이 아니고서는 보기 힘든 사진들이었다. 프랭땅 백화점의 쇼윈도를 기록한 사진도 재미있었다.

그 방대한 사진 유산들 덕분에 사진이 처음부터 어떤 말하기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쟝 크리스티안 부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17살에 파리에 와서 결혼사진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어렵지 않게 고객들을 만족시키는 기술들을 습득했고 그럭저럭 팔리는 사진들을 찍었다. 후에 저널리즘 사진가가 된 그는 지난 시절 결혼 스튜디오에서 찍은 틀에 박힌 사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포즈를 취하며 무언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그 방식들에서 사진을 발견한 것이다. 사진의 내용만이 아니라 사진 안과 밖의 보여주기 자체에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 시절의 사진들을 정리해서 발표하기 시작했다.

죠아킴 쉬미드는 더 노골적이었다. 그는 길거리에 버려진 사진들을 주워서 전시를 했다. 잃어버렸거나 버려졌을 이 사진들은 그 사진이 없어진 장소와 시간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생각해보게 했다.

패션사진들도 마찬가지로 읽을 수 있었다. 오래된 교회에 전시된 보그의 상품 사진들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있었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보그의 정물사진들은 그 대상들이 사라져 없어질 것들이었음을 보여준다. 토템처럼 찍힌 립스틱, 신성해 보이는 눈썹 브러쉬, 성스런 유물인양 찍힌 상품들은 그 사회의 상업적 욕구를 드러낸다. 결국 그 욕구들이 상품을 예술의 단계로까지 이끌었다.’

다큐멘터리 사진까지 포함하는 이 방대한 전시가 하나로 묶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오랜 역사와 풍부한 사진적 유산의 바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일본 주빈국으로 초대한 파리포토

11월13일부터는 세계 최고의 사진시장 ‘파리포토’가 열렸다. 올해 11월에는 ‘파리 사진의 달(Le Mois De La Photo)’ 행사가 함께 열렸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사진으로 덮인 듯 했다.

‘사진의 달’은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1980년에 시작해 몇 년 전부터는 유럽 전체로 퍼져 베를린, 로마, 비엔나, 룩셈부르크, 모스크바들에서도 함께 진행된다. 파리 전역의 갤러리 90여개가 참가해 사진전을 열고, 큰 뮤지엄들도 참가했다. 올해 ‘사진의 달’ 주제는 ‘유럽 사진,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였다. 퐁피두센터에서는 <유럽사진의 실험> 전이 열렸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70년대 미국사진의 충격>전, 시립현대예술 박물관에서는 <뒤셀도르프파의 사진들> 전 등이 마련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큰 축제에는 언제나 프린지 행사가 따르기 마련이어서 ‘사진의 달 OFF’ 행사가 함께 열렸다. 역시 90여 개의 전시가 작은 갤러리, 도서관, 상점, 지하철역에서 열렸다.


며칠을 ‘파리포토’가 열린 루브르궁 지하의 전시실에서 보냈다. 19개국에서 갤러리와 출판사 107개가 참가했으니, 그들이 가져온 사진과 책을 보는 데만 그만큼의 시간을 써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금산 갤러리가 참가해 아타김, 데비한, 김준을 소개했다. 배병우, 이정진, 김수자, 노순택, 천경우, 백승우는 외국 갤러리와 출판사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독일의 ‘아트에이전트’ 갤러리는 노순택의 사진만을 가지고 참가했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질문을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번 ‘파리포토’의 주빈국은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일본이 선정되었다. 올해는 프랑스와 일본이 수교한 지 150년이 되는 해이다. 한 해 동안 프랑스에서 740여 건의 일본 관련 행사가 열린다. 파리포토의 일본측 큐레이터인 마리코 다케우치씨는 “일본 수교 150주년과 겹친 것은 우연일 뿐이다. 주빈국이 된 것은 일본 사진이 성장한 결과이다”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일본 사진가 130명이 동시에 소개된 것은 대단한 숫자였다.

파리포토의 아트 디렉터인 기욤 피앙과 큐레이터 다케우치는 모두 일본 사진의 역사를 통해 일본 사진을 설명했다. 1839년 프랑스에서 다게레오 타입이 발명된 때를 보통 사진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그로부터 9년 후 사진은 일본에 전해진다. 사진의 변화를 사회사와 함께 설명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이 역사에 대한 설명은 일본 사진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해결해주지 못했다.

‘어쩌면 이렇게 일본 사진은 일본 색깔을 갖는 것일까?’

큐레이터들이 강조한 일본 출판의 역할이 그 해답에 가까운 듯 했다. 일본의 갤러리들은 전시를 위해 공간을 대여하는 정도의 역할만을 해왔다. 그 대신 발전한 출판 즉, 사진집과 잡지가 사진을 발표하고 대중의 반응을 되돌려받는 역할을 했다. 젊은 사진가 미카 니나가와는 컬러풀하고 가벼운 사진으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작가이다. 대중에게 인기 있는 사진이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이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서구의 경우, 작가들은 갤러리를 통해서만 시장에 연결된다. 일본 사진가들은 책을 출판하면서도 전시는 하지 않았다. 결국 서구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진가들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큐레이터들은 이번 페어의 중심에 일본의 출판사들을 놓았다. 일본 사진계를 더 잘 아는 출판사들을 세계 시장과 만나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프랑스 작가들 중에서 눈에 띄는 젊은 사진가들은 드니 다쟈크와 모하메드 부르이샤였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파리 교외(Banlieue)에 대한 사진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 모두 장면을 계획하고 연출한다. 픽션이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갖는 그러면서 묘한 불안감을 안겨주는 사진들이었다. 부르이샤의 전시 텍스트는 그의 사진을 제프 월에 비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드니 다쟈크의 작업은 거리의 댄서들이 공중에 멈추어선 것 같은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대형마켓의 매장 안에 사람들이 부유하는 듯한 최근 ‘하이퍼’ 시리즈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진의 달’ 행사의 특징 중 하나는 유럽연합과 세계화를 다룬 작업이 많다는 것이었다. 유럽의 외곽 지역(?)에 대한 르포타쥬가 많았다. 많은 사진가들이 그들의 삶을 차가운 긴장감이 감도는 사진으로 담아냈다. 예를 들어 그 중의 하나는 독신 노인들이 살던 공간을 기록한 사진이었다. ‘몇 월 며칠 출생, 몇 월 며칠 발견’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들이었다.

'사진의 달’ 전시를 찾아다니는 동안, ‘지금 프랑스 사진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영향에 대해, 독일 사진에 대해, 북유럽 사진에 대해 진지한 기획전시가 있었지만 프랑스 사진에 대한 전시는 브레송이나 사빈와이즈, 시파이오글루(시파 에이전시의 창시자) 등 옛 사람들의 전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군가 프랑스는 아직도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에 매여 있다고 했다. 달리 보자면, 프랑스 문화의 장점은 다양한 다른 문화를 포용하는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것’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의 수도임을 뽐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에서 본 세 개의 사진 축제에서 유럽을 포함한 세계 사진 전체를 두루 보았다는 느낌은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채승우는 조선일보 사진기자로 현재 유럽을 여행하는 사진 산책 중이다. 개인전 ‘깃발소리’(2003), ‘경제연감’(2006), ‘신반차도’(2008)를 연 바 있으며 낸 책으로는 ‘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이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9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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