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07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진을 전문적으로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도 ‘스탁사진’이란 단어는 생소한 용어였고, 사진 비즈니스의 먼 변방처럼 여겼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스탁사진의 판매형태가 다양화 되고, 사진 사용자들도 기업체 등의 전문 디자이너부터 일반인이나 이에 준하는 사람들로 그 영역이 넓어져 스탁사진이 많이 보편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글 | 이명조
사진제공 | 토픽포토
필요 예상해 만들어놓은 기성 사진
스탁사진(Stock photography)이란 말 그대로 고객의 주문에 의해 만들어진 사진이 아닌 고객의 수요를 예상하고 미리 만들어놓은 기성 사진이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빨라진 시대에 고객들은 한 장의 필요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사진의 콘티를 만들고 스튜디오를 섭외하고 모델 오디션을 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날씨까지 고려해 며칠을 기다려서 촬영해야 하는 이 모든 번거러움을 쉽게 감내할 수 있을까?
스탁사진 시장에는 이미 수많은 전문 사진가들이 고객의 니즈(needs)를 고려해 만들어놓은 좋은 사진들이 넘쳐나고 있다. 고객은 단지 컴퓨터 앞에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손쉽게 바로 구매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스탁사진은 원래 미국의 매그넘 작가들이 특정 잡지를 위해 찍어놓은 사진을 나중에 다른 용도로 다시 쓸 곳이 있으면 일정금액의 저작료를 받고 다시 판매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의미의 스탁사진 시장이 형성된 때는 1980년대 중반 정도다. 그러나 특별히 전문 스탁사진가라는 직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흔히 말하는 캘린더 사진을 찍던 일부 풍경 사진가들이 스탁에이전시에 자신의 사진을 판매 의뢰하였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에서도 스탁사진이 하나의 사진 직업군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본격적인 의미의 스탁사진을 기획해 촬영하는 사진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디지털 이후 사진 품질과 판매횟수 모두 상승
그러나 스탁사진 시장의 결정적인 변화는 인터넷의 발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2000년이 되면서 인터넷이 급격히 발전하였고 기존의 필름 대여 방식에서 이미지를 디지털화해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선택한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전송하기 시작하면서 스탁사진 시장은 커다란 변화를 맞았다. 동시에 스탁 사진가의 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사진가의 입장에서 가장 큰 변화는 좋은 사진의 판매 기회가 대폭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필름으로 대여하던 시절에는 아무리 좋은 사진이 있어도 필름의 특성상 소수의 고객에게만 보여주고 대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동시에 수많은 고객에게 사진이 노출되고 같은 사진을 횟수에 제한 없이 여러 번 판매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객이 원하는 좋은 사진의 경우 판매 횟수가 상대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따라서 실력 있는 작가들의 사진판매 수익도 대폭 증가하였다. 자연히 사진가들은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해 좋은 스탁사진을 찍으려는 열의가 높아졌으며, 고객의 입장에서도 스탁 사이트에 좋은 사진이 늘어나면서 필요한 사진을 직접 촬영하기보다는 스탁에이전시를 통해 손쉽게 구해 쓰려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초저가 판매사이트 마이크로페이먼트 등장
최근 스탁사진 시장의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초저가 사진 판매 사이트의 등장이다. DSLR 카메라의 보급이 늘면서 일반인도 누구나 자신이 찍은 사진을 마이크로페이먼트라 불리는 스탁사이트에 직접 업로드해 판매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 구매자들은 불과 몇 천원 혹은 그 이하의 가격에도 이들 사진을 구입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출판이나 광고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초저가 사이트의 등장은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판매하는 일에 비교적 쉽게 뛰어 들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사진사적으로도 매우 큰 변화이며, 전문 사진가의 영역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사진을 좋아하고 전문 사진가의 길을 동경하는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열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초저가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부류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처음에는 순수 아마추어나 일반인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실력 있는 프로 사진가들도 초저가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비록 사진 한 장당 판매 단가는 낮지만 대신 전 세계를 상대로 많은 판매 횟수를 올림으로써 실질적인 수입은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판매방식만 다를 뿐 순수와 스탁사진은 닮은 꼴
그렇다면 직업으로서의 스탁사진가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우선 전체적으로 순수사진을 지향하는 사진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탁사진가는 시장의 동향이나 현대의 트렌드를 분석해 자신이 찍고자 하는 테마를 선정하고 그 다음 촬영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여행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여행지와 해당 여행지에서 무엇을 어떻게 찍을지 계획을 세워 여행지로 떠나고, 여행지에서는 최적의 날씨나 좋은 뷰 포인트를 확보해 남과는 차별화되는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찍는 사진가라면 자신이 찍으려는 사진의 콘티를 정하고 그 다음은 초상권을 확보할 수 있는 모델을 섭외하고 기타 모델의 의상이나 소품 등을 준비해 원하는 촬영지에서 촬영을 하게 된다. 순수사진가와의 차이점이라면 아마도 사진을 제작하고 난 다음 판매하는 방식에서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순수사진가는 제작된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넣은 다음 전시를 열거나 화랑을 통해 판매하는 반면 스탁사진가는 제작한 사진을 인화할 필요 없이 파일을 스탁에이전시에 맡기면 에이전시는 인터넷 사이트에 업로드해 고객들에게 판매하게 된다.
사진은 유망한 문화콘텐츠, 스탁사진가의 조건은
이러한 일을 하게 되는 스탁 사진가에게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스탁사진가는 기획에서부터 제작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대부분 혼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이고 부지런해야 한다. 또한 시장의 동향에 늘 관심을 가지고 최종 소비자나 디자이너들이 만족할 만한 창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시대의 트렌드를 놓치지 말고 스스로 크리에이티브한 사고를 갖고 이것을 사진화 하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스탁사진으로 성공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나가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스탁사진가로 성공하지 못하는 대부분은 능력이 부족하기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끈기 있게 해나가지 못한 경우가 많다.
스탁사진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확고하게 스탁사진가로 자리를 잡은 경우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이다. 우선은 누구의 지시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진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하면서 살 수 있고, 스탁사진의 특성상 밝고 건강하고 행복한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게 된다. 무엇보다 고령화 시대에 자신의 건강과 노력 여하에 따라 정년 없이 오랫동안 작업할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도 보장된다는 점도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은 좋은 문화 콘텐츠이고, 문화 비즈니스다. 이러한 사진을 더 많이 생산하고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수출하려면 더 유능하고 의지를 가진 젊은 사진가들이 스탁사진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이미지가 전 세계의 중요 서적이나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뉴욕이나 파리, 런던과 같은 도시의 간판이나 빌보드를 장식한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일까. 스탁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원하는 스탁에이전시를 방문하면 된다. 모든 스탁에이전시는 언제나 유능한 사진가를 기다리고 있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10년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월간사진>
이명조는 스탁에이전시인 토픽포토(www.topicphoto.com)의 대표다. 서울예대와 홍익대 산미대학원 등에서 스탁사진과 사진마케팅을 강의 중이며, 7월28일부터는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스탁사진을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