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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Let it be ; 내버려두기

2011-05-20


인도의 뉴델리 공항, 그날도 비행기가 연착되어 공항청사 구석의 벤치에 앉아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공항의 실내 광장 한복판에 조그만 물체 하나가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되는 생쥐가 공항 광장을 과감하게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뛰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고 있었다.

글, 사진 | 사진가 고빈


에피소드 I

처음에는 생쥐가 쥐약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쥐약을 먹지 않고선 어떻게 저렇게 과감하게 공항 한복판을 유유자적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생쥐는 넓은 공항 광장 복판에서 다른 생쥐와 만나서 잠시 뭔 얘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계속해서 각자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난 옆 벤치에 앉아 있던 다른 인도사람들에게 “저 생쥐 좀 봐요. 어떻게 당신네 나라의 생쥐는 저렇게 겁이 없을 수 있죠?”라고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인도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오히려 생쥐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동양인 여행자를 더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쥐가 내 눈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생쥐를 따라가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성큼 걸어서 생쥐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갔다. 생쥐는 누군가로부터 추적을 받고 있다는 눈치를 챘는지 좀더 빠른 속도록 움직였고, 나 역시 생쥐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뛰다시피 쫓아갔다.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생쥐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벤치 쪽으로 내달렸다. 그 때 벤치에는 인도의 한 노신사가 다리를 꼬고 않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 조그만 생쥐는 노신사의 바짓단 속으로 쏙 들어가 숨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노신사는 생쥐가 자신의 바짓단 속으로 들어온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채, 갑자기 자기 앞에 성큼 나타난 동양인을 보고 특유의 인도식 말투로 “애니 프로블렘?”(뭔 문제 있어요?) 묻는 것이었다. “예…저기…당신의…바지 속에…생쥐가 음…새앙쥐요”라고 말하자 노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가볍게 다리를 설렁설렁 흔들었다. 순간 노신사의 바지 속에 숨어있던 생쥐가 잽싸게 빠져나와 공항 광장 저쪽편으로 달아나버렸다. 그것을 본 노신사는 바지자락을 한번 툭 털더니 “노 프로블렘”이라면서 인도인 특유의 몸짓으로 고개를 좌우로 한두번 갸우뚱거리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신문을 펼쳐 읽었다.



에피소드 Ⅱ

개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서양의 동물보호운동가가 인도에 왔다. 그녀는 많은 개들이 인도의 길거리에서 돌봐주는 사람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고 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동물보호기관을 만들었다. 그 동물보호기관은 인도의 한 작은 바닷가 도시의 개들에게 예방주사를 놔주고 병든 개들에게 약을 먹이거나 또는 개 사료를 만들어 거리의 개들에게 나누어주는 소박한 사랑의 실천부터 시작했다. 인도의 길거리에서 수천년을 야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하며 살아오던 개들은 충분한 먹을거리와 훨씬 좋아진 생존조건이 마련되자 얼마 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머릿수가 불어났다. 보통 야생의 조건이라면 태어난 강아지 열 마리 중 한 마리 정도가 살아남았다면 이 프로그램이 시작되고선 열 마리 중 일곱 마리 정도가 살아남게 되었다. 또 이렇게 살아남은 강아지들은 6개월에서 8개월 만에 번식 능력이 생겨 또다시 여러 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동물보호기관은 그 지역의 모든 개들을 잡아 거세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고 계속 불어나기만 했다. 인근 지역에서 그 도시에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챈 들개들이 계속해서 그 도시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개들은 본능적으로 영역 본능을 가졌지만 거세를 당한 개들은 영역 본능이 약해져 몰려든 들개에 밀리기 시작했다. 또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자라면서 야성이 사라져 진짜 야성의 들개들을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개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되기 시작했고 순수한 의도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결국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마하트마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함 그리고 그 도덕적 기준은 그 나라 사람들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란 말을 남겼다. 그래서 간디의 나라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거리나 시장 또는 기차역 같은 곳에 원숭이, 돼지, 개, 고양이, 쥐, 당나귀, 까마귀, 염소, 소, 낙타와 코끼리까지 각종 동물들이 인간의 삶 주변에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곤 한다. 식당 앞에서 꼬리를 치켜들고 태연하게 볼일을 보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늙고 병들어서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길바닥에 늘어져 누워있는 동물들, 장사꾼의 수레에서 먹을거리를 훔쳐 시장 통을 아수라장을 만들고 달아나는 동물들. 영역 다툼 때문에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벌이는 것은 예사이며 복잡한 거리 한복판에 큰대자로 드러누워 한가하게 낮잠을 즐기는 배짱 좋은 동물들까지 안 그래도 복잡한 인도의 길거리는 동물들 때문에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있다.



상황이 이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인도사람들은 이 길거리 동물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동물들을 위한 수용시설을 만들거나 동물들을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방주사를 놓아준다거나 피부병에 걸린 동물들을 위해 약을 발라준다거나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인도의 길거리에는 늙고 병들고 아픈 동물들로 넘쳐난다. 인도인들의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되도록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태도다. 동물들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나름대로의 순리와 법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인간이 원하는 방식대로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려는 것이 인도인들의 태도다. 그곳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아니다. 자연 앞에서 존재하는 모든 영혼은 무게가 동등하다.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곧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인류는 인간이 중심이 된 세상을 꿈꾸어왔다. 그래서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의 독선 속에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홀로 위대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본 기사는 <월간사진> 2008년 1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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