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5
전 세계 181개 이동 통신사의 통신 방식인 WCDMA는 77개 나라, 19억의 인구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한민국 대표 WCDMA ‘SHOW’의 지면 광고 촬영이 있었습니다. 다섯 손가락에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들을 일러스트로 그려 넣고 “인종은 다르지만 하나의 WCDMA, SHOW로 통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광고입니다.
오후 1시에 손 모델과 일러스트레이터가 손에 메이크업을 하고 스튜디오로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스태프들은 스튜디오에서 메이크업을 시작했습니다. 촬영 전 손 모델의 손을 미리 점검하지 못했는데 막상 도착한 모델은 손가락이 너무 얇고 길어서 촬영 콘셉트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급한 일정상 아트디렉터의 손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하고 촬영 준비실에 모든 도구를 펼쳐 놓고 손가락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손가락에 바탕이 되는 기본 살색을 고르게 칠한 후, 농도가 다른 살색들로 명암을 표현하고 얼굴의 윤곽을 그려 넣는 정교한 작업들이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새끼손가락 하나를 완성하는 데 1시간 30분이 걸리더군요. 그때 시간이 저녁 8시, 처음이라 오래 걸렸지 이제부터는 가속도가 좀 더 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손가락 하나 완성하는 데 평균 1시간씩 소요되었고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메이크업을 하는 긴 시간 동안 다른 스태프의 손으로 테스트 촬영을 하며 조명을 미리 다듬어 두었습니다. 조명 배치는 탑 위치에서 소프트박스로 기본적인 필 라이트(콘트라스트 조절용 조명)를 설치한 후, 허니컴 스폿 2개를 좌우 뒤 약간 위쪽 역광의 위치에서 설치해 하이라이트와 손 외곽 라인용 효과광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때, 효과가 너무 강하지 않고 약간의 반짝하는 느낌만 주도록 광량을 조절해 줍니다. 로봇 팔(금광제품으로 벽에 붙박이로 고정시킨 라이트 스탠드 역할을 하는 암arm)에 설치한 또 다른 2개의 허니컴 스폿 조명으로 손의 위 앞쪽에서 손의 입체감을 살리며 각 부위를 밝혀 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손을 위한 조명으로 손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디테일하게 살려 주지는 못합니다. 이제부터는 손이야 어떻게 나오든 핸드폰을 위한 제품 위주의 조명을 따로 설치해야 합니다.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톤의 변화와 하이라이트가 생기도록 해야 하고 제품의 외곽 라인들도 잘 살도록 해 줘야 하는데 기본적인 ‘조명의 위치나 방향성을 유지’해야 손과 합성이 되었을 때 거부감이 적고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얇은 확산판(우윳빛 아크릴을 이용하여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줌)을 둥글게 휘어 작은 돔을 만들고 그 속에 손과 제품(제품에 비춰진 손의 투영을 함께 담아야 자연스럽기 때문)을 넣고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확인하며 메인 라이트의 위치를 조정합니다. 아크릴판에 생긴 밝은 하이라이트와 계조들이 제품의 글로시한 느낌을 살리는 최적의 위치에 투영되도록 조절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모델이 자신의 손 위치를 기억하고 움직이지 말아야 하므로 손 모델은 지구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촬영을 하면서 스태프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콘셉트에 맞는 손의 형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제품을 사용하듯 거머쥔 듯한 손으로 제품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손가락에 그려진 캐릭터들의 얼굴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손 위에 핸드폰을 그냥 올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움켜쥔 느낌을 살리기 힘들었기에 캐릭터들의 얼굴을 최대한 보여 주면서 어느 정도 잡은 느낌이 드는 선에서 아쉽지만 타협을 해야 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 삐삐(호출기)를 사용하던 시절에는 홍콩 영화에서 소위 ‘어깨’들이 주로 들고 다니며 가끔은 무기(?)로도 사용되던 모토로라사의 크고 길쭉한 핸드폰이 화제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어디에서나 전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러웠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 전화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고 이제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얼굴과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느 책에서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말하더군요. 인터넷과 정보 통신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서든 개인 간 접속이 가능하고 수십억의 사람들이 국경과 언어, 문화를 뛰어넘어 동시에 경쟁하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열리고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해외 에이전시를 통해 그곳 스튜디오에 촬영을 의뢰하고 원하는 이미지를 인터넷상으로 결정하면 후반 작업을 거친 완벽한 이미지를 웹하드에서 내려 받아 디자인 작업을 해서 출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만큼 경쟁 상대가 많아졌다는 얘기이니 긴장도 됩니다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인 셈입니다.
“쇼를 하라 쇼” 광고와 함께 점점 더 평평해져 가는 지구촌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광고주: 케이티프리텔
대행사: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이은장
아트디렉터: 조정호
컴퓨터아트워크: 임만섭(bom)
사용장비: FUJI GX680
FUSINON 180mm
PHASEONE P25 디지털백
C1Pro
SPEEDOTRON 4804,
2403CX
broncolor Grafit 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