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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홍삼으로 만들어 물처럼 마신다”

2005-01-26


오늘은 농심 홍삼수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대학시절, 광고수업 시간이면 무조건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술병이나 음료수병의 물방울 살리기. 교수님들로부터 ‘참기름병(투명도를 잘 살리지 못한 병)’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며 몇 번이나 재촬영을 해야 했던 속 꽤나 끓이던 어려운 과제로 기억에 남습니다만 15년이 넘은 지금에도 음료수, 특히나 페트병 촬영은 역시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가 물방울을 연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과 글리세린을 섞어 분무기로 뿌린 후 주사바늘로 정교하게 다듬는 방법인데 주로 캔 음료수 촬영에 사용합니다.
표면이 금속이라 물방울이 퍼지지 않고 몽글몽글 잘 맺히기도 할뿐더러 오랜 시간 물방울이 형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촬영할 수 있어 좋은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실제로 음료수나 용기를 차갑게 만들고 실온에 꺼내놓을 때 온도 차이로 맺혀지는 물방울들을 그대로 촬영하는 방법입니다.
주로 용기의 재질이 플라스틱이거나 유리일 경우 물과 섞은 글리세린으로는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잘 맺혀지질 않고 퍼져 버리기 때문에 두 번째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번 홍삼수도 두 번째 방법으로 촬영했습니다. 촬영 하루 전 홍삼수를 냉동실에 얼려 놓고 다음날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실온에 꺼내 놓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촬영합니다.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는 맺힌 물방울들이 너무 징그럽지 않도록 다듬어 주어야 하고 스프레이로 살짝 물을 뿌려 물방울들을 키워도 주고 흘려 내려 보내기도 합니다. 주사바늘로 한방울 한방울을 연출하기도 하면서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물로 씻어낸 후 깨끗이 물기를 닦아내고 또다시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튼 물방울은 그렇게 촬영을 합니다만 그 다음으로 넘어야 할 험준한 산, 바로 제품의 투명도 살리기입니다. 너무 평범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밝고 어둡고 들쭉날쭉해서도 안 된답니다.
황금색 밝은 하이라이트와 자연스런 중간 톤들이 존재하고 너무 가볍지 않도록 어두운 톤들을 적당하게…. 일단, 제품에 영향이 덜 가도록 45도 뒤쪽에서 허니컴 스팟 조명을 2개 설치하고 페트병 뒤의 다양한 반사판들을 비추도록 구성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반사판들은 각종 깨진 오목거울들과 은박 비닐 포장지 뒷면 그리고 쿠킹 호일들입니다.
이러한 재료들을 자유롭게 각도 조절이 되는 받침대에 고정시켜 파인더 방향에서 효과를 보며 미세한 조정을 하게 됩니다. 위치와 각도, 병과의 거리, 크기나 모양과 구겨진 정도에 따라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답니다.


우리는 기존에 해오던 습관이나 일하는 방식의 변화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최소한 소극적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흑백암실에서의 부분적인 버닝이나 닷징, 그리고 스포팅은 ‘예술가의 성실한 작업’이라 하면서도 포토샵을 통한 수정작업에 대해서는 ‘사진의 정통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로 여기며 꺼리던 때가 있었으니까요.
품격 있는 고급(?) 사진은 왠지 필름으로 촬영해야 할 것 같지는 않으신지요? 새로운 생각이나 앞선 시스템이 기존 것보다 언제나 좋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우리는 잘못된 오해나 편견에 발목이 잡혀 급변하는 디지털 흐름 속에서 소외되거나 더딘 걸음을 걸어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빠르게 발전해 가는 첨단 기술력 앞에 위기감이나 조급함을 느끼며 변화의 속도를 맞출 필요까지는 없습니다만 내가 사용하는 방법과 시스템이 최선이라는 믿음과 함께 보다 나은 방법에 대한 고민과 투자와 열린 생각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 수 있었던 것도 기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네요.
물값이 기름값보다 비싸질 때가 올 거라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물을 돈 주고 사먹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던 시절, 그 말은 단지 먼 훗날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차별화된 생각으로 기름보다 비싼 물을 만들어 멋진 사업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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