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22
“최고의 무공해 콩나물 선발대회”. 촬영 전 메인 모델이 될 콩나물을 골라내는 일을 무려 4시간에 걸쳐 3명이 해냈습니다.
농약을 쓰지 않고 물만 먹여 키운 놈들이라네요. 확실히 일반 콩나물에 비해 볼품이 없었고 또 ‘그런 모습을 좋게 보여주는 것’이 이번 촬영의 중요한 구상이었습니다.
1차 선발전을 통과한 콩나물들이 약 100여 개. 그들을 추리고 추려 약 20개의 모델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모두 촬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간결하고 균형 잡힌 그림자가 생겨야 하는데 선발된 몇몇 콩나물들 중에서는 눈으로 보기에는 좋았지만 막상 조명을 하고 보니 휘어진 정도에 따라 그림자가 부자연스럽게 생기는 녀석들을 한 번 더 추려내야 했습니다. 바닥에 콩나물들을 눕혀 놓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촬영을 합니다.
이때, 좌측 위에서 허니컴 스팟 하나를 조명하되, 그림자의 굵기와 형태를 보면서 대략 30~45도로 모델에 따라 조절해 줍니다.
그리고 그림자의 농도와 전체 사진의 콘트라스트 조절을 위해 카메라 위치에서 소프트 박스로 부드럽게 전 영역을 조명(필 라이트)해 줍니다. 연약한(?) 모델들이 지치지 않도록 가능한 한 조명의 뜨거운 모델링 램프를 절제해가며 신속하게 촬영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소재는 다양한 형태의 물방울들. 맑고 투명하게 그리고 구상에 맞는 형태대로 만들어야 하는 게 관건. 단순한 형태의 맺히는 물방울들은 물과 글리세린을 사용합니다만 크기 비례에 제약 없는 특별한 형태를 만들어야 할 경우에 저는 투명한 백색 물엿을 사용 합니다.
이것을 바늘 없는 주사기에 넣고 원하는 형태로 그림을 그리고, 형태가 변하기 전에 신속히 촬영합니다.
물방울에 생기는 강한 하일라이트와 명확한 그림자는 물방울의 맑고 투명한 느낌을 살려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강한 스팟 라이트를 메인으로 사용해 하일라이트를 만들어 주고 소프트 박스로 그림자의 밝기, 주로 콘트라스트를 조절해주면 됩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두부나 콩나물 심부름을 참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나 콩나물을 사러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신문지로 접은 봉투 속에 콩나물과 함께 아줌마의 인정까지 듬뿍 담아왔었고 그날 저녁엔 어김없이 참기름과 고춧가루로 버무린 콩나물 무침, 그리고 두부 송송 구수한 된장찌개가 올라오곤 했습니다. 이렇듯 콩나물은 우리에게 있어 참으로 소박하고 친근한 먹거리로 여겨지곤 합니다.
저마다의 상표를 달고 깔끔한 비닐포장에 담겨 “저는 무공해랍니다”라고 외치는 요즘의 콩나물들을 보면서 뭐든지 다 상품화해서 파는 세상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만큼 공해가 심각해지면서 무공해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겠지요.
요즘도 잘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복잡한 만원 버스를 보고 “콩나물시루 같다”는 표현을 씁니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학급당 인원수가 많던 교실모습에도 우리는 ‘콩나물 교실’이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진 교육의 모습에도 이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해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사진학과 졸업생들. 필요 이상으로 배출된 이 고급 인력들은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사진 교육계 자성의 목소리도 있고 과거 교육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도 같습니다만,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고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보다 더 많이 움직이고 노력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에 어떠했느냐는 이미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힘든데 내가 힘든 것도 당연하지, 지금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그렇지, 하는 식의 상황논리도 한낱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의 가치를 높여가며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려는 아주 구체적이고도 매우 적극적인 자기 투자와 노력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어느 좋던 시절에 구멍가게에서 아무런 포장 없이 신문지에 둘둘 말려 잘도 팔려나가던 콩나물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합니까? 인지도 있는 브랜드 상표가 붙은 깔끔한 비닐 옷을 입고 있어야 하고 ‘무공해’나 ‘우리 콩’ 혹은 ‘유기농’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콩나물로 대접 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