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09
요즘 미국과 이라크 상황을 보면서 “우리도 빨리 강한 나라가 되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고구려 역사 문제를 접하면서는 “중국이 왜 저럴까?”하는 생각보다 오히려 “우리 것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무신경”에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던 터에 이번 KTF 광고건을 작업하게 되었지요.
시안을 보시면 짐작하시겠지만, 상당한 무게의 책들을 올려놓을 선반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튼튼히 세울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선반을 설치하는 일이라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만, 합판에 벽지를 발라 벽을 세운 다음 선반을 설치해야만 하는 상황. 1,2층 선반 사이의 간격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전체 높이 조절도 가능해야 합니다.
우선 튼튼한 C 스탠드 2개를 놓고 슈퍼 클램프 4개와 L 브라켓 4개를 조합하여 선반을 걸 수 있도록 설치한 다음, 130cm가 넘는 나무선반 양쪽 끝을 그곳에 고정 시키고 움직이지 않도록 스탠드와 스탠드를 노끈으로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래도 불안한 생각에 무거운 모래 주머니를 C 스탠드 다리에 걸어주고, 오토폴을 C 스탠드와 나란히 설치한 다음 두 기둥(오토폴과 C 스탠드)을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세트를 마무리 했습니다.
그 다음은 책을 배치할 차례이지요. 높이와 두께, 재질과 색상에서 오는 느낌에 따라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를 고려하며 책들을 꽃아 나갑니다.
적당한 간격과 틈을 섞어가며 넣었다가 뺐다가 순서를 바꾸기도 수십 번. 고조선에서부터 백제와 신라, 제일 중요한 고구려, 통일신라와 발해. 나중에 합성될 책제목을 고려하여 그에 어울리는 책을 고르고 나름대로 생각해둔 책의 순서에 맞추어 책꽂이 전체의 모습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책을 배치하면서 거의 동시에 조명도 함께 설치해 나갑니다.
책의 위치와 크기•높이에 따라 빛의 느낌이 틀려지기 때문인데, 늘 그렇지만 이번 촬영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조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좁은 각도로 빛을 모아주는 허니컴 스포트 7개를 사용해 주로 책의 입체감과 질감을 살려주었는데, 주로 ‘왼쪽 위 창문에서 45도 방향으로 비치는 따뜻한 느낌의 빛’이란 조명 컨셉으로 작업했습니다.
조명할 전체 영역을 놓고 부분 부분 각각의 헤드(조명)가 맡을 영역을 나누어 헤드를 설치한 다음, 빛의 세기와 굵기를 조절해줍니다.
이때 저는 주로 3~40˚에 이르는 허니컴 그리드를 사용합니다.
원래의 계획은 손까지 함께 촬영하는 것이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비례가 맞지 않고 왜소해 보이는 문제가 발생하여 별도로 촬영해야 했습니다.
몇 벌의 중국 의상들 가운데 중국 느낌이 가장 강한 옷을 선택, 원래 세트를 배경으로 삼아 책꽂이를 비추던 조명 3개를 손과 팔에 맞게 조정, 붉은 비단옷의 중국문양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조명 위치를 조절해줍니다.
‘고구려’라는 글자가 올라갈 책의 위치와 각도를 신중히 결정하여 고정시킨 다음, 그 책을 잡아 빼 내는 손의 모습을 미세한 손의 변화와 구부러진 팔의 각도에 주의해 변화를 주어가며 촬영했습니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일안 반사식 카메라 한 대를 갖는 것이 제 소원이었습니다.
어렵사리 PENTAX MX를 손에 넣었을 때, 제겐 달랑 표준렌즈 하나 밖에 없었지만 세상을 모두 다 담을 듯 뜨거운 열정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전공하게 되면서는 스튜디오에서 쓰이는 파워팩이 따로 달린 스트로보 조명이 무척 갖고 싶었고, 어렵게 어렵게 헤드 두 개가 딸린 조명을 구했을 때, 좁은 제 방에다가 스튜디오(?)를 꾸며놓고선 온갖 잡동사니를 다 가져다 놓고 수 많은 밤을 새워가며 참 많이도 찍어댔습니다.
조명 헤드 한 개만 더 있으면 더 멋지게 찍을 수 있을텐데… 하고 아쉬워하면서 말이죠.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이번 “고구려 좀 빌릴까요?” 작업에 동원된 조명의 수는 헤드가 무려 8개, 파워팩이 3개였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헤드의 수를 세어보니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더군요. 그 가운데 관리가 잘 안 되어 곧바로 쓸 수 없는 헤드도 3개나…. 먼지가 뽀얗게 앉은 헤드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토록 소중한 고구려 문화재가 우리의 무관심과 안일함 속에서 허술하게 방치되고 훼손되어 마침내 사라져가는 것처럼, 하나씩 하나씩 무디어져만 가는 작은 가치의 소중함들이 어쩌면 우리가 어렵게 쌓아온 성실한 노력들을 조금씩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헤드 위에 쌓인 먼지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제 마음에 쌓인 먼지를 보듯 “헤드 한 개만 더 있었으면…” 했던 소박한 그때 마음을 회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