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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제품 본래의 꾸밈없는 담백함

2004-08-12

얼마전 바디샵 제품을 촬영했습니다.
바디샵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 못했던 터라, 촬영전 간단히 조사해보니 자연친화적인 환경사업 등 좋은 일들을 많이 하는 기업인 것 같더군요. 상당히 규모있는 다국적 기업인 것에 비하면 광고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기존에 제작했던 광고물들도 대부분 아주 검소한 느낌을 주는 것들이었지요.
촬영 며칠 전, 컨셉 회의가 스튜디오에서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구체화된 컨셉의 테두리 안에서 광고주에게 제시할 대략의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몇 컷의 테스트 촬영을 따로 하게 되었는데, 이후의 디지털 작업을 대비하여 상대측의 CMS 환경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잡지 2페이지 광고를 기본으로 인물 위주의 왼쪽은 다른 분께 의뢰되었고, 제품이 주가 되는 오른쪽은 제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제품의 용기는 과하게 고급스럽거나 요란한 디자인으로 치장되지 않은, 실용적이고 검소한 모습이더군요.
제 임무는 이들을 3가지 제품군으로 나누어 모두 3장의 이미지를 촬영하는 것. 화이트와 그레이의 단순한 배경 위에 “제품 본래의 형태와 컬러에 충실하도록 촬영하는 것”이 컨셉으로 주어졌고, 완성된 3장의 사진들은 가능한 서로 일관성 있는 느낌과 톤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빛이 투과되는 유백색 아크릴판이 설치된 촬영대(맨프로토 제품) 위에서 기본적인 조명을 설치하고 이들 제품과의 씨름을 시작했습니다.
붐 스탠드를 이용, 탑 위치에서 소프트 박스로 필라이트(전체적인 컨트라스트 조절용)를 주도록 하고 아크릴판 밑에서 허니컴 스포트를 이용해 바닥(배경)에 자연스런 그라데이션(부드럽게 밝기가 변하는)이 생기도록 설치합니다. 제품에 역광 하일라이트가 생기도록 소프트박스 뒷쪽 역광 위치에서 스포트라이트 한 개, 제품의 세부 디테일을 살려주기 위해 좌우측에 각각 한 개씩 허니컴 스포트 라이트를 설치하면 기본 조명 세팅은 끝이 납니다. 본격적인 씨름은 지금부터지요.
첫째는 제품들이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컨셉을 생각하며 형태를 만들어 배치하는 일. 가능하면 다른 스탭들의 의견을 물어가며 최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 가며 최선의 구성을 찾아냅니다.
카메라 위치를 잡은 다음, 좌우로 상하로 카메라 앵글을 바꿔 가며 최적의 뷰를 결정하는 것까지. 그 다음 두 번째는 조명과의 씨름. 앞서 설치했던 기본 조명을 가지고 제품군에 가장 잘 어울리도록 빛으로 옷을 입히는 작업이지요. 각각의 조명들은 그 위치와 높이, 밝기와 색감에 따라 천의 얼굴로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 좌우의 허니컴 스포트로 제품의 라벨 등 주요 부분을 비추고, 역광 하일라이트의 위치와 밝기 등을 고려하여 소프트박스 뒤쪽의 허니컴 스포트를 조절하고, 탑에 달려있는 소프트박스의 높이를 조절하여 어두운 섀도우 부분의 밝기와 전체 컨트라스트를 조절해 줍니다.

얼마 전 외국 광고계에서 그곳 사진가들과 함께 일했던 분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지 사진가들은 전문분야별로 다양하게 고른 분포를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인물과 패션 쪽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게 많이 아쉽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촬영을 의뢰하기 위해 사진가들을 섭외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인물이나 패션쪽은 사람이 많은 반면, 검증되지 않은 신인들에게 일을 맡기는 모험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고, 검증된 일부 스타급 사진가들은 일정 잡기도 어렵고 콧대도 높아 비싼 촬영료 등 여러가지로 힘들다는군요.
그와 반대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 혹은 테이블 탑table top이라 불리는 제품 분야의 사진가들은 층이 너무 얇아 손에 꼽을 정도여서 사람 구하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랍니다.
우리나라는 남이 하는 일이 잘 된다거나 괜찮아 보이면 너도 나도 그쪽에 몰리며 휩쓸려가는 경향이 유독 심한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전체의 1퍼센트도 안될 메이저급 사진가들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서 막연히 그 분야를 동경한다거나 덜커덕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겠지요.
힘들고 어려운 - 소위 3D - 분야에는 사람이 없어서 인력난을 겪는다고들 하는데, 오늘날 사진가들의 인물·패션 선호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어렵고 까다로운 면이 있긴 하겠지만 스틸 라이프는 앞으로 사진가로서의 활동에 꼭 필요한 지식과 경험들이 많이 녹아 있는 게 사실이고 보면, 결코 가볍게 넘어갈 분야는 아니지요.
배우는 시기에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사진의 전반적인 분야를 골고루 다루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문분야는 기본기가 잘 다져진 이후에 정상적인 경험과 노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갖추어진 모습이라야 더 아름답겠지요.
너무 일찍부터 전문성을 갖추려는 치우친 생각들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느 한 분야를 선호하거나 비하하는 사회적인 편견도 바로 잡혀야 할 것 입니다.
많은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이 남들의 이목과 상관 없이 여러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보람을 찾게 되는, 그런 모습이 우리의 내일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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