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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 리뷰

태양초를 상징하는 ‘맑고 강한 태양광’의 효과

2004-04-12


“고추 하나만 잘 찍어주시면 됩니다.”
첫 통화에서 전해들은 고객의 주문사항이었습니다.
‘하나만’, 그리고 ‘잘’. 그건 곧 ‘최고의 퀄리티를 바란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촬영시안은 있으시지요?”
“그럼요. 그림으로 된 시안인데,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레이아웃은 참고가 될 듯합니다.
광고주께서 좋다시는 고추 자료사진이 있는데, 촬영할 때 제가 가지고 가겠습니다.”
늘 그렇듯, 의뢰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마음의 부담이 시작되더군요.
다행히도 촬영하는 날 고객께서 내민 ‘광고주가 선호하는 고추 사진’은 몇 년 전에 촬영했던 제 사진이었습니다.
디자이너도, 함께 오신 광고주께서도 그 사진이 제 작업임을 아시고는 무척 기뻐하시더군요.
조금은 안심이 되었습니다.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광고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의 출발점은 역시 적합한 모델(소재)의 선택! 실력있는 코디네이터께서 열심히 다양한 모델(미스 고추?)들을 준비해 오셨지만, 결국은 촬영 도중 다시 마땅한 고추를 구하러 시장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많은 경쟁을 뚫고 선발(?)된 첫 고추는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고추 끝이 두꺼워 그림자 형태가 이쁘지 않은 것이 문제였고,
새로 구해온 고추는 외형·두께 모두 좋았지만 꼭지 형태가 처음 것만 못하다는 단점이 있었지요.
결국 새로 구해온 고추에서 꼭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낸 다음, 처음 고추의 꼭지를 접착제로 붙여서 성형 고추(?)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조명.
우선 태양초를 상징하는 ‘맑고 강한 태양광’의 효과를 내야 합니다.
맑은 태양광은 ‘전혀 부드럽지 않은, 아주 명확한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특징!
따라서 주 조명으로 사용할 플래시 헤드는 빛을 확산(부드럽게 만드는)시키는 리플렉터(반사 갓)를 제거한 다음, 좌측 45도 위에서 비춥니다.
태양이 하나인 것처럼, 이렇게 원 라이트(one light)를 사용하면 강하고 확실한 그림자 하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너무 강해서 시커멓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탑(top) 위치에서 소프트 박스를 이용하여 전체적으로 약한 필 라이트(fill light) 효과를 줍니다.
이렇게 하면 그림자 부분의 밝기를 조절할 수 있지요.
이제는 고추에 액센트를 줄 강한 하이라이트와 빛이 어른거리는 효과를 만들어야 할 차례.
저는 오목 거울 2개를 사용했습니다.
주 조명의 대각선 반대쪽, 촬영 테이블 위에 오목 거울을 설치하고 주 조명의 빛을 그대로 반사시켜 고추를 비추도록 하는데, 이때 거울의 각도와 위치에 따라 빛의 표정들이 다양하게 변화하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때때로 하이라이트가 너무 강해서 어색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오목 거울을 검정 스타킹 조각 같은 소도구로 살짝 가리면 반사광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고추 하나 찍는데, 뭐 이리 할 말이 많을까?”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소재를 앞에 놓고도 그것을 촬영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방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진의 결과는 많이 틀려지지요.
또 동일한 촬영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어느 사진가가 촬영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또 많이 달라집니다.
마치 요리와도 같지요.
동일한 재료를 사용한다 해도, 특급호텔에서 소위 격조있는 요리와 서비스를 경험해 보면, ‘이런 것 하나까지도 신경 쓰는구나’ 싶을 정도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작지만 섬세한 부분’까지 세세하게 배려합니다.
물론 고객들은 “역시 다르군!”하며 감탄하게 되지요.

좋은 작업 결과로 광고주를 만족시키는 것도 결국은 ‘작지만 섬세한 부분’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가의 세심한 배려와 섬세함, 그 노력 여하에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는 확실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이는 결코 큰 것에서 나지 않습니다.
이 작은 차이를 감지하고 줄여 나가는 것, 그 노력이 오늘 우리에겐 정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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