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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꽃의 광장이 되다

2014-09-12


반가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곳, 추억과 낭만이 서린 장소라 하면 단연코 ‘기차역’을 떠올릴 테지만 딱 한곳, 서울역만큼은 광장을 가득 메운 비둘기와 노숙인, 종교인으로 유쾌하지 않은 이미지를 가진 곳이다. 혹자는 서울역 광장을 대한민국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시라도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이 공간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최근 나타나고 있다. 최정화의 총천연색도 그 중 하나다.

에디터 | 박유리(yrpark@jungle.co.kr)
자료제공 | 문화역서울 284

최정화의 총천연색은 시각예술, 시각문화를 중심으로 미술, 디자인, 공예, 설치, 수집, 공공미술, 공연, 미디어, 학술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 융복합 예술 프로젝트지만, 최근 장르를 망라하고 하나의 흐름처럼 부상한 ‘융복합’에 편승하기보다는 폐허에서 꽃이 피어난 것처럼 혼잡함으로 뒤엉킨 서울역 부근에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정화하고자 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그 작업을 무용지용의 미학이라는 동양의 정신을 자연스레 작품에 결합시켜 온 최정화 작가와 함께했다.
전시 타이틀이자 주제인 ‘총천연색’은 완전한 자연 본연의 색이라는 뜻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총(總, Total)이라는 개념을 덧대어 속세의 문화, 인간 세상의 색을 함께 담아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총천연색은 플라스틱으로 대변되는 이 시대의 인공물질 문명의 화려함이 실은, 가장 자연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면에서 우리 시대 문화의 역설이기도 하며, 동시에 작가 특유의 화려한 조형적 다채로움과 즐거움을 드러내는 개념을 담고 있다. 작가는 하찮은 것들을 존중하며, 그것들이 가진 본연의 것들을 바탕으로 예술적인 가치로 승화시키고자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 소재라 할 수 있는 ‘플라스틱’이 가진 인공적인 색을 가치 있는 빛깔로 담았다.

‘꽃의 향연’, ‘꽃의 여가’, ‘꽃의 만다라’, ‘청소꽃’, ‘꽃의 뼈’, ‘꽃 숲’, ‘꽃의 뜻’ 등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오브제 조형물들과 작가의 컬렉션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면,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세계인 ‘꽃’으로 주제가 연결된다. 전체 꽃의 테마는 폐기물의 총체적 형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역의 면면 또한 최정화의 작품과 동일시되어 연결된다.
이 다양한 형태의 꽃들은 플라스틱 소재의 뚜껑, 바구니, 장난감, 구슬 등 실제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음직한 재료들로 이뤄졌는데, 여기에는 자연의 생태계처럼 상품의 생태계가 존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들을 꽃의 형상으로 재사용함으로써 가짜와 인공의 것들도 생명과 자연으로 거듭나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역사 주변의 노숙인들과 시민들이 참여해 ‘함께함’의 의미를 더했다. 특히 구 서울역사 광장 앞에 설치된 가로등 높이인 7m의 거대한 플라스틱 소쿠리 탑 ’꽃의 매일’은 약 1달 간 설명서를 가지고 노숙인들과 자원 봉사자가 작업한 결과물로, 서울역의 거주자이자 소외된 이웃인 노숙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2층 전시장 바닥에 세상 모든 색깔을 담아낸 듯한 다양한 형태의 30여만 개의 플라스틱 뚜껑으로 수놓은 ‘꽃의 만다라’ 역시, 시민의 참여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무료관람으로 한 대신 시민들에게 관람료에 해당하는 플라스틱 뚜껑을 지참하게 한 후, 스스로 디스플레이 할 수 있도록 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보고 체험하며 즐길 수 있는, 접근이 쉬운 전시로 다가가고자 한 작가의 뜻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시 외에도, 융복합 행사인 만큼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아티스트와의 토크, 공연, 강연, 학술 콜로키움, 이벤트, 시민참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이어진다.
10월 19일까지 문화역서울 284 전관과 광장 일원에서 열리는 본 전시를 통해,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에서 스쳐 지나갈 때 폐기물 더미에서 꽃을 발견하듯 서울역에 새로운 시각을 던질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서울역 광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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