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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도시 디자인

2013-11-27


기존의 것을 허물고 새롭게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 혁신이다. 그 동안의 도시 디자인은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다보니 똑같은 형태의 도시 모습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골목길의 대한 관심으로 개성과 역사를 가진 도시 이미지 구축이 진행되고 있어 반갑다. 사람들의 생활을 오롯이 품고있는 도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글 | 박희정(광진구청 도시디자인과)
기사제공│팝사인

기존 지역의 대한 이해 선행한 도시 계획 필요
골목길 열풍이 한참이다. 9월에는 서울시에서 ‘국제골목컨퍼런스 - 골목, 돌아오다’가 열리기도 했다. 필자도 컨퍼런스에 참석했었는데 골목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이른 시간에 시작된 컨퍼런스임에도 인산인해를 이루어 입장도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개인적으로 컨퍼런스 내용에 약간 실망했다. 미래지향적인 골목의 내용을 기대했으나 그보다는 그간 골목을 등한시한 반성 위주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니 필자가 너무 성급하게 기대를 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구불하고 좁은 골목길이 있고 오래된 동네는 낡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시계획에서 재개발 계획을 세우고 좁은 길과 주택을 싹 밀어버리고 거기에 대단위 아파트를 세우고 나면 비로소 근사한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재개발이 끝난 지역에는 골목길이 없다. 보행자 전용 도로라고는 아파트 내 통행로가 전부이다. 그나마 단지 내 모든 차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몰라도 지하와 지상주차가 동시에 이루어지면 보행자 전용도로는 없다. 이러한 도시계획은 보행자 도로가 없어지는 문제만이 아니라 기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나 동네 커뮤니티까지 몽땅 파괴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구성원 배려없는 도시계획은 실패할 확률 높아
1956년 준공된 미국 세인트로이스 도심 근처에 세워진 집합주거 단지는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가 설계하여 건축상까지 수상했지만 1972년 5월 15일을 시작으로 폭파 해체되었다. 11층짜리 33개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의 신도시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반듯한 네모난 아파트와 반듯하게 만들어진 도로 등 20년의 수명도 다하지 못한채 철거 되면서 근대건축의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이런 아파트가 고급 주택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사실 이 아파트의 거주자들은 빈민층 이주자들로서 인종차별로 인해 백인과 흑인이 다른 공간에 입주하였으며 백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점점 슬럼화 되고 지속적인 범죄 발생 등으로 철거하게 되었는데 거주민들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구성원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맥락 없는 공간을 조성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건축 당시에는 기존 건축비보다 더 높은 비용이 들어간 고급 아파트였으며 중간층에는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으나 저소득층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기존의 역사적 맥락 없이 허허벌판에 아파트만 달랑 세워 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적용이 안되긴 하지만.

백사마을, 주거지 보전 방식의 재개발 시도
건축가 승효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도시를 만들지만 그 도시는 우리 사회를 만든다. 좋은 도시에서는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고 나쁜 도시에서는 나쁜 사회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봉건적 도시에서는 봉건적 사회가 민주적 도시에서는 민주적 사회가 만들어진다. 만약 우리의 도시에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의 원인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나쁜 구조에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위의 사례를 보면 충분히 공감가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좋은 도시를 만드는 새로운 방식으로 도심 재개발 사업에 골목을 보존하는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노원구의 백사마을이 처음으로 주거지보존 방식으로 재개발된다. 특히 주민들의 주요 동선인 골목길과 집터가 들어서지 못했던 급경사면은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있는 녹지를 보존하는 등 기존의 공간의 최대한 살리면서 노후된 주택을 정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도시의 역사 담아내는 골목길 투어
골목에 대한 관심도 상승은 걷기와도 관계가 깊다. 특히 도보여행은 도시의 내면을 오롯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우리나라 초창기 해외여행은 단체 패키지여행이 대부분이라 대부분의 관광지를 단체로 차를 타고 이동하였으나 자유여행이 활성화 되면서 부터는 많은 여행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도보여행을 즐기고 있으며 골목 중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도 많다. 체코의 체스키크롬로프는 S자로 흐르는 볼타바강변을 따라 도시가 만들어졌으며,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골목 골목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300개가 넘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건물들이 있다. 세계 유명한 골목들은 자연의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활양식에 따라 골목이 만들어져 있다. 북촌 한옥마을도 한옥이 먼저 들어서고 나서 그사이 사이에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져 골목길이 되었다. 역사적 가치까지는 아니지만 맛집과 이국적인 풍경들로 관심을 받고 있는 경리단길도 있다. 필자는 이곳을 무척 좋아하는데 간판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나무판자에 외국인이 쓱쓱 써 놓은 간판도 있고 글자는 없고 그림만 덩그러니 있는 간판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의 간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로가 도시의 얼굴이라면 도시의 골목은 도시의 내면이다. 골목에서 만나는 작은 가게와 아기자기한 간판들 또는 건대 먹자골목처럼 정신사납고 화려한 간판들. 얼굴이야 항상 반듯한 모습이겠지만 내면이야 고요하기도 하고 때론 복잡하기도 한 것처럼 우리가 사는 도시의 골목의 간판도 작고 예쁘기도 하고 때론 크고 화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걷고 싶은 골목길을 만든다고 건대 먹자골목의 간판들을 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연스럽게 생긴 모습 그대로 마음의 어느 한 구석은 심란하기도 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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