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4
최근 뉴욕 시에서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Active Design Guidelines)’을 발표했다. 의학이나 정책이 아닌, 디자인으로 시민들의 신체 활동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게다가 이 매뉴얼에는 건축가, 기획 및 설계자, 그리고 디자인 전문가들이 더 건강한 건물과 거리, 그리고 도시 공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전략들이 담겨있다.
에디터 │ 이지영(jylee@jungle.co.kr)
숨가쁘게 계단을 올라가는 대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사람, 푹신한 소파와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 야외 활동을 하려다가도 부족하거나 불편한 시설 때문에 쉽게 포기하고 마는 사람. 사실, 이러한 현대 도시인들에게 비만과 다이어트는 자석처럼 따라붙는 숙제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또 각자의 노력이 물론 중요하겠지만, 뉴욕 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공 디자인의 영역에서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가 바로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Active Design Guidelines)’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건축가들과 도시개혁가들은 건물과 근린시설, 수질 관리 시스템, 공원 등의 디자인을 개선함으로써 콜레라나 결핵과 같은 전염성 질병을 퇴치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21세기에도 마찬가지다.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전염병, ‘비만’의 퇴치에 의사가 아닌 디자이너들이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이제 비만뿐 아니라 만성적으로 이와 연결된 당뇨, 심장병, 그리고 암에 이르는 각종 질병과 맞서 싸우는데 한 몫 거들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른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손꼽히는 것은 흡연인데, 이를 제외하고 나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체 활동의 감소와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적절한 신체 활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증진시키는데 건축 및 도시 계획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차츰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했다. 학계의 최신 연구 결과와 최고 실무자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완성된 이 매뉴얼은 건축가들과 디자이너들이 더 건강한 건물, 거리, 도시 공간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실질적인 전략을 제공한다. 시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거나 활동적인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도록 직접적으로 장려하는 인근 시설과 거리 및 야외 공간에 대한 디자인 전략이 가이드라인 안에 모두 담겨있는 것. 더불어 시민들이 일하고 즐기며 살아가는 공간을 보다 활발하게 만드는 건물 디자인 전략도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내부 공간 및 야외 공간의 적절한 위치나 디자인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액티브 디자인’과 함께 자연친화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인 ‘서스테이너블 디자인’ 사이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논의까지 아우르고 있다. 한편,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뉴욕 시의 디자인 및 건설국(DDC, Departments of Design and Construction), 건강과 정신 및 위생국(Departments of Health and Mental Hygiene), 교통국(Departments of Transportation), 도시 기획과 예산 관리국(City Planning and the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그리고 학계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통해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장과 건축, 공원 및 레크레이션 관련 부서, 학교 시설물 담당자, 건물 보존 및 개발관, 노화와 복지 관련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곳곳을 이루는 수많은 구성원이 동참해 완성되었다. 때문에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이 뉴욕 시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 것이라 해도, 다른 도시나 커뮤니티에 적용하는 데에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이 공공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낼 수 있음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현재 가장 시급하며 널리 퍼진 건강 문제 중 하나인 비만의 해결에도 디자인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결국 뉴욕 시의 액티브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디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