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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친환경은 이제 그만

2011-02-16


세상은 ‘친환경’을 말한다. ‘친환경 아파트’, ‘친환경 버스’, ‘친환경 모피’, ‘친환경 농법’, ‘친환경 디자인’. ‘친환경’이 난무한다. 쏟아지는 ‘친환경’을 듣고 있으면 우리 삶이 정말 친親환경적이라는 착각이 든다. 주변을 보자. 우리가 정말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나? 산을 깎아 아파트를 짓고 강을 메워 댐을 만든다. 집 앞에 나가면 합법으로 유해가스를 배출하는 자동차가 달린다. 너무 반反환경적으로 살았기 때문에 ‘친환경’이라는 말이 생겨버렸다. 반환경적인 사실에 대한 죄책감을 덜거나 은폐하기 위해 ‘친환경’을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하게 된다.

글 사진 | 강우성 정글리포터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지난 12일까지 두성인더페이퍼갤러리에서 열린 ‘NO MORE’전. 이 전시는 친환경’을 낯설게 보는 큰 주제 아래 ‘친환경’이라는 말의 공허함과 우리 주변 환경에 대한 관심을 다루었다.
문광진, 이명우 작가는 이런 현상에 직면해 현재 ‘친환경’이라는 말이 지닌 공허함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방산시장과 충무로 일대 제본소에서 패키지를 절단하고 남은 가장자리 종이를 모아 뚫린 모양을 재구성하고 실크스크린 인쇄한 포스터가 전시장 벽과 바닥에 있다. 다양한 모양으로 뻥 뚫린 종이가 갤러리를 가득 채운다. 입구 맞은 편 벽 가운데 작은 화면에서는 ‘친환경’을 말하는 뉴스와 노래를 스크랩한 영상의 소리가 갤러리 내부에 울린다. 반복되는 ‘친환경’ 소리를 들으면서 뻥 뚫린 포스터를 보면 ‘친환경’이 의미 없는 외침으로 들린다.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 내부는 한 눈에 들어왔다. 사방의 벽과 기둥 하나와 테이블 두 개, 그리고 바닥에 작품이 있다. 입구 맞은 편 양쪽 모퉁이에는 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일깨우는 ‘polar bear campaign only’와 ‘eco bag’이 있다. ‘polar bear campaign only’는 “북극곰은 친환경 슈퍼스타”라는 슬로건으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북극곰이 아니라 한국곰부터 생각하자는 의미를 전달한다. ‘eco bag’은 “에코백은 친환경 핫 아이템”이라는 슬로건으로 비닐봉지만큼이나 많아지고 있는 에코백 제작이 무의미하다는 내용을 지닌 작품이다. 두 가지 작품 모두 친환경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두 작품이 지닌 의미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은 전시장 입구 벽에서 상영하는 퍼포먼스 영상이었다. 작가들은 너무 먼 북극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무작정” 청계천으로 갔다고 한다. 무작정 간 것 치고는 꽤 많은 준비를 했다. 동대문에서 청계광장까지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청계천 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그렸다. 대형 박스에 시트지를 붙여 물을 뿌려도 젖지 않게 하고, 박스를 물고기 모양으로 뚫은 후 청계천 물을 소독약 분사기에 담아 박스를 대고 청계천 산책로 바닥에 뿌려 물고기가 헤엄쳐 가는 것처럼 만들었다. 물을 뿌리면 뿌릴수록 물고기의 형상은 진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져 물고기는 사라진다. 산책로에 청계천 물로 물고기를 그린다는 발상은 명랑하지만 공중으로 증발해버리는 물고기는 슬프다. 작가들은 우리와 멀리 떨어진 북극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눈앞의 환경을 살펴보고 그것을 위해 각자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전시에서 상영회를 진행하기도 한 문광진 작가는 “이 전시가 관객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입하기보다 관객이 직접 생각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며 전시를 진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린 디자인, 에코 디자인이라는 말이 필요 없으며 디자인을 위한 본질적인 디자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은 본래 공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공공 디자인’이라는 말 자체는 의미가 없다는 주장과 유사한 말이다. ‘디자인’이 친환경적인 인간의 삶과 인간, 사회, 공공을 모두 내포하고 있을까? 그런 디자인이 가능할까?

전시장 입구 유리에 붙은 포스터는 네모난 종이 한 가운 데 4개의 빈공간이 있었다. 빈공간은 북극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보여준다. 무분별한 ‘친환경’이라는 말과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한 ‘NO MORE’는 ‘친환경’의 유행, ‘친환경’의 상업화를 냉정한 눈으로 보게 했다.

사진 영상 및 작품제작과정 moonstars.egloos.com
청계천 퍼포먼스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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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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