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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빼고 본질만 남은 사과상자처럼

2010-02-18


형태는 단순하고 본질만 존재하는, 사과상자 같은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 조병수를 만났다. 담백하고 힘있는 터치가 느껴지는 스케치를 통해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에디터 | 이영진(yjlee@jungle.co.kr)
자료제공 | 조병수건축연구소, 황우섭 작가
사진 | 스튜디오 salt

건축가 조병수는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건축학 석사 출신으로 미국 지가 선정한 세계 3인의 개성 있는 컨템퍼러리 디자이너로 소개되고, <아키텍쳐 레코드> 지에서 뽑은 세계의 선도적 건축가 11인에 포함된 바 있다. 그동안 ㅁ자 집, 세 상자 집, 화천 이외수댁, 땅집처럼 담백하고 힘있는 집을 설계해오면서 한국적 감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건축가로 평가 받았으며, 최근에는 한일시멘트방문센터• 게스트하우스로 2009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주 헤이리의 카메라타, ㅁ자집, 세 상자 집, 화천 이외수 댁까지. 조병수는 직선의 사각박스 개념을 자주 사용해 왔다. “박스 형태의 건축물은 작업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도면 그리기와 짓기가 쉬워요.(웃음)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사용하기 편하고, 보기도 좋아야 좋은 건축이죠. 무엇보다 형태는 단순하지만 내적 경험은 다채로울 수 있는 공간을 추구하다 보니 박스형태가 되었네요.” 그래서일까. 그가 만들어내는 사각박스는 최소한의 것만 지닌 단순한 공간의 담백한 힘이 느껴진다. 본질을 추구하는 공간의 출발점은 그가 유학을 갔던 미국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몬태나에서 건축가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닦았다면, 하버드 대학원에서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는 대학원 재학 시절을 추억하며 동양문화센터를 보스턴에 짓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연구한 논문을 펼쳐 보인다. 논문 속에는 공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20여 년 전에 이미 그의 논문에서 펼쳤던 공간의 본질을 추구하는 단순한 형태의 건축에 대한 상상과 실험들을 하나 둘씩 현실 밖으로 꺼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현실로 나와 박스형태로 구현된 작품 중 하나인 작품 헤이리의 카메라타 음악감상실을 에디터는 사진보다 실물이 더 나은, 알고 보니 속은 더 진국인 남자배우로 기억한다. 조병수는 음악감상실이라는 내부공간의 의도를 묵직한 콘크리트 박스형태로 감추었다. 문을 열면 슬며시 드러나는 내부는 무엇도 음악감상을 방해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만을 들려주기 위해 비우고 또 비운 공간이다. 내방자로 하여금 경험하고 깨닫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땅 집 또한 사각 스틸 매스형태다. 방은 총 6개인데, 방 하나당 한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규모로 계획한 것은 우리 전통가옥의 단위 ‘칸’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라고. 땅 속에 박힌 사각 박스는 신기하게도 지하의 폐쇄성과는 거리가 멀다. 절제되어 새어 들어오는 빛이 무엇보다 ‘치유의 기능’이라는 중요한 역할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마당은 밤이 되면 달빛과 별빛을 받아들이고, 마당 콘크리트 담장 곳곳에는 세월이 흘러 풀이 자라날 것을 예상해 나무기둥을 박았다.



‘ㅁ’ 자집은 콘크리트의 정사각형 공간이다. 외형은 전혀 한옥을 떠올릴 수 없는 박스의 형태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는 구조라든가, 달빛, 하늘 같은 자연을 들인 모습은 전통 한옥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고자 했다.
이런 단순한 박스형의 구조라 할지라도 건축물과 주변과의 관계를 중시한 조병수의 건축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부지를 살펴보며 그 프로젝트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흥미롭고 특별한 관계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건축물이 본래의 부지와 조화롭게 어울리고 작품의 수직• 수평적 특성에 따라 건축물에 적합한 재료에 대한 연구를 선행하는 것이다. 여러 번의 연구와 이해를 통해 부지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도 잔잔하고 깊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일각에서는 다양한 공법과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콘크리트 소재에 대해 한국적인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최근작인 한일시멘트 방문센터• 게스트하우스에 사용된 ‘패브릭 거푸집 콘크리트’를 비롯해 최신 소재나 공법을 꽤 자주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적’이라는 것을 오래된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 여기는 대신,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사유한다. “굳이 한국적인 건축이라고 해서 재료와 공법 자체도 전통과 연결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감수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지, 전통적인 가옥을 재현해서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에요. 재료의 물성에 따른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한국적인 감수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 있는 심성이나 본질의 자연스러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이 지은 땅집에서 시 낭송회를 열만큼 문학을 사랑하고, 평소 민화부터 미술, 여행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조병수는 이 모든 것에서 건축적인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또 그것으로부터 받은 영감은 바로 스케치로 옮긴다고. 조병수건축연구소 건물 1층에 자리잡은 레스토랑 아카(A.C.C.A)에는 그의 스케치가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숨쉬는 집부터 물속에 지어진 집까지. 생각만으로도 신나는 상상속의 집이다. 2010년에는 좀 더 재미있고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그의 건축관을 거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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