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4
신사동에 괜찮은 공간이 들어섰다기에 우르르 몰려갔다. 가히 소문대로다. 그러나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펼쳤을 때, 사람들은 가볍게 혀를 찼다. 쯧쯧. 공들인 공간에 어울리지 않게 코팅지를 링으로 성의 없이 철한 것이다. 스타일 좀 구겼다. 디자인이나 브랜딩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건 기업이나 정부 같은 거대 단체만의 전략일까? 요즘 서점가에 즐비한 인터넷 쇼핑몰이나 카페와 관련한 창업 성공기 책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닌 듯하다.
압구정동 시네시티 골목에 이 동네 분위기와 확연히 구분되는 공간이 하나 들어섰다. 바로 ‘무이무이’다. ‘둘도 없다’는 ‘유일무이’에서 따온 이름 그대로 모든 게 지극정성인 이곳은, ‘스칸디나비아 스타일의 가구만 모아놓으면 뜬다’는 구태의연한 시류를 뒤집고 국내디자이너를 앞세워 한국적인 스타일을 선보인다. 백령도 고구마, 완도의 유기농 유자처럼 팔도강산에서 가장 좋은 재료로 만든다는 음식도 남다르지만 디자인에 들인 공 역시 만만치 않다. 1층은 카페, 2층은 테라스 포장마차로 구성된 무이무이는 보통 카페가 2~3개월 만에 뚝딱 지어지는 데 반해 콘셉트 ‘무이’를 잡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조명등, 테이블웨어 디자인까지 철저한 브랜딩을 거친 것. 이를 위해 레스토랑 컨설팅전문 업체인 ‘비 마이 게스트(Be My Guest)’와 레스토랑 아이덴티티 작업에 일가견이 있는 ‘켈리타 앤 컴퍼니(Kelita & Co. Inc.)’ 같이 내로라하는 전문업체들이 의기투합했다. 이들은 이미 ‘액추얼리’나 ‘테이크 어반’을 성공시킨 베테랑들이다. 공간 구성도 땅값 높은 이 동네에서는 파격적이다. 백일홍과 자작나무를 심은 중정을 갖춰 고택에 들어선 듯한 품격이 느껴진다. 한옥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콘셉트라 정한 것은 없어요. 그저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를 원했습니다. 인테리어적인 요소를 줄여 절감한 비용을 공간과 잘 어울리는 작가들의 작품에 투자했지요.” 디자이너에게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게 해달라고만 요구했다는 송숙 무이무이 대표의 설명이다.
마감재나 구조재가 그대로 노출된 공간에는 신동원 작가의 대형 도자 설치 작품과 이정진 작가의 사진이 있다. 가구 역시 젊은 명인으로 추앙받는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 작품. 그의 다양한 가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음식은 송희그라스하우스와 김선미 도예가의 그릇에 담겨 나온다. 하나부터 열까지 디자이너의 정성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어떻게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요리를 좋아하는 평범한 주부가 클라이언트였다. 근데 음식에 들이는 정성이 남달랐다. 디자인에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오래 기다려주셨다. 우리 역시 작업을 치밀하게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우리보다 더 느린 클라이언트다.(웃음) 깊이가 남다른 고객 덕분에 이런 ‘거룩한’ 작업에 참여하게 된 거 같다.
상형문자처럼 보이는 ‘무이무이’의 로고가 재미있다. 로고나 이름을 캐주얼하게 하고 싶었다. 무이무이의 로고는 한자의 ‘無’자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 젓가락과 찬처럼 보이기도 하고, 2층 건물 안에 사람이 꽉 들어찬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중적인 효과를 노렸다.
이 작업에 참여한 다른 디자이너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는가? 처음 컨설팅 작업부터 비 마이 게스트와 함께 참여했다. 모든 디자이너와 함께 회의하면서 물리적으로 들인 시간이 상당하다.
글 | 임나리 기자, 사진 | 이우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