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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 디자인? Bon Design?! 김윤수

2006-08-04


1997년. 공간이 어찌 분할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온통 검은색의 공간, 선정적 이미지를 내뿜는 자그마한 PDP액정이 벽면에 인스톨레이션 되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바 지직스(zzyzx). 스무살, 그 공간에 매료된 내 젊은 날의 객기덕에 내 눈, 입 그리고 귀는 호사를 누렸더랬다. 내 나이 서른 즈음에는 테이블 사이 사이 드리워진 커튼 사이에 숨어 곧 오게 될 서른을 흥얼거릴 수 있는 바74가 내 추억들과 함께하고 있다.
서른이 넘은 어느날 내 젊은 날과 함께했던 그 공간들이 한 사람의 손에 디자인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나이 마흔 즈음이 궁금해졌다.

디자이너 김윤수.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디자이너를 만난다는 것만큼 반갑고 즐거운 일이 없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공간이 있고, 좋아하는 공간이라 함은 많은 뜻을 담고 있을 테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단순히 눈에 박혀 가벼이 눈만을 자극하는 공간이 아닌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 편안한 느낌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지는 그런 곳이다. 공간의 한 모퉁이를 돌고 나면 또 새로운 세계를 펼쳐주는 그의 공간은 찾을 때마다 언제나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취재 | 호수진 객원에디터 (lake-jin@hanmail.net)

전 디자인 어소시에이트에서 10년을 넘게 일하던 그가 홀로 디자인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 본 디자인은 특별히 식음공간의 전문성을 살린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다. 공간에 대한 특별한 호불호(好不好)없이 일하던 그가 특별히 식음공간에 매력을 느낀 것은 무엇보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다양성. 물론 특정한 한 가족을 위한 주거공간 디자인도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는 당연히 즐거운 일이겠지만, 서로 다른 경험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을 디자인 한다는 것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짜릿한 일일 듯싶다.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 김윤수가 덧붙이는 이유는 생각보다 재미있다. 본인이 디자인한 주거공간은 어찌 사용되는지 궁금해도 확인할 수 없지만, 상업공간의 경우 언제든 확인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것. 마음 내킬 때 찾아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공간사용에 한 수 배우고 나온다.

식음공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목적이 무어냐는 것이다. 맥빠지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식음공간에 있어 디자인은 잡지책의 부록과 같다. 공간이 오래 가야 인테리어 디자인도 오래 두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100년, 200년을 바라보는 건축과 달리 상업공간 인테리어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현실. 운영 시스템이나 서비스 방식이 충족되는 디자인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 식음공간 전문 디자이너 김윤수의 생각이다. 그에게 있어 작품이 되는 공간이지만, 운영자에게 있어 디자인은 수단일 뿐이기에 소비자들을 편하게 그리고 지속적인 발걸음을 유도하는 인테리어가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석사 논문은 마케팅과 디자인에 관한 얘기였다. 쓸데 없는 부수적인 장식을 버리고 운영상의 문제점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공간이 지속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담동 타니의 경우, 주방이 오픈 되어있다. 그 운영 방식이 오픈 키친과 맞물렸기에 그것이 공간의 중심을 이룰 수 있었지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그저 흉물스러운 디자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식음공간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밖에 나와 무언가를 먹고 마시려 한다는 것은 쳇바퀴 돌 듯 똑 같은 일상에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함이 아닐까. 좋은 사람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좋은 것을 먹고 마시고 싶은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알아야 한다.

‘청담동 타니에서 말이에요…심은하가 왔길래 구경갔는데 칸칸이 드리워진 파티션 때문에 못봤어요. 파티션이 너무 원망스럽던걸요.’ 라는 말에 환한 웃음을 짓던 디자이너 김윤수. 그것 또한 점심, 저녁으로 다른 타겟층을 가지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운영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저녁 시간과 달리 레스토랑의 근처를 생활 반경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하는 점심 운영. 서로 안면이 있기에 부딪혀서 반가운 사람이 있고, 부딪혀서 반가울리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 세심한 배려를 위해 내려진 파티션. 영화배우를 못봤다는 아쉬움이 들었던 기억으로 남은 레스토랑이 나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수준 있는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디자인에 있어 그는 무엇보다 기본적 소재의 특성을 살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의 바램대로 그의 공간이 청담동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생명력을 가졌을 때 밍숭맹숭 하던 돌에 이끼가 끼고, 나무 결이 윤이 나면서 지나간 시간을 담을 수 있기에 더욱 멋스럽다.

한가지 스타일 보다는 이중적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모던한 공간에 클래식한 요소를 삽입하고, 동양적인 공간에 서양적 액센트를 사용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추구일 뿐. 어느 하나로 규정되는 것은 싫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것에 대한 탐닉은 즐겁다. 현대 사회의 모던한 공간을 마주 했을 때 새로운 시도 하나로 공간을 찾는 고객에게 만족을 주고 그를 찾은 클라이언트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74가 그러했다. 이젠 청담동 어딜 둘러봐도 테라스 공간이 있는 카페, 레스토랑 투성이지만, 74를 오픈하던 당시엔 흔하지 않았던 발상. 단지, 자연과 공간이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준 것이 테라스 공간이다. 그가 청담동의 유행을 선도했다하면 너무 큰 과장일까?

그의 디자인의 근원지를 알고 싶었다. 아이디어 충전의 원천을 물은 나. 그 질문 자체가 우문이었다. 철저한 분석속에 이루어지는 디자인이거늘 그의 일상이 디자인의 힘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건국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1기다. 당시 실내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불모지에 가까웠고,
사실 그가 처음 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설치 미술에 가까웠단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아날로그 세대와 디지털 세대의 현격한 차이라고 해야 하나. 정보가 없던 과거와 달리, 컴퓨터에 인터넷 창을 띄우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해외여행도 수월해졌다. 보다 발전된 디자인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요즘 학생들,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다 보니 생각보다 손이 먼저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스케치를 통한 생각의 발전도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부숴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청담동 문화. 그러한 가운데, 10년이 넘도록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간들을 만들어내는 그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근본은 변하지 않는, 그래서 좋은 디자인 본(本,Bon) 디자인의 김윤수. 그 깊이를 알아내기에 그를 마주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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