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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 리뷰

디자인과 마이너리티

2011-04-08


요즘 서울 시내를 나가면 곳곳에 붙어있는 괴상한 광고들이 눈에 띤다. ‘표창장’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광고들은 각각 ‘식당아줌마’, ‘환경미화원’, ‘회사원’, ‘소방공무원’, ‘대중교통 기사’, ‘건설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얘기인즉슨 각각 직군들의 수고스러움과 노고를 치하하며 서울을 빛낸 공로를 인정하여 표창장을 수여한다는 것이다. ‘대체 누가 이런 광고를..’이라고 잠시 생각했으나, 얼마 안 가 ‘역시나 서울시..’라는 체념이 몰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글│최태섭 칼럼니스트( curse13@nate.com)
에디터 | 이은정(ejlee@jungle.co.kr)

이미 티저 광고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호기심보다는 불쾌함으로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이 광고가 택한 ‘전략’은 의문을 자아내게 만든다. 게다가 표창장이면 표창장이지, 표창장 안에 트로피는 또 뭔가? 게다가 저 6개의 직군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된 것인가? 아니 무엇보다도 왜 이 난데없는 공치사가 시작된 것이란 말인가?

이 광고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은 당최 납득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취지가 뭐든 간에 상관없이 이 광고는 서울시의 여러 다른 광고들과 마찬가지로 ‘광고적으로 실패’다. 물론 서울시는 광고에이전시도 아니고, 이미 지나치게 광고에 신경을 쏟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광고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안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광고는 나 같은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

이 광고는 그러니까 모범 시민상 같은 것이다. 사회에서 가장 수고하는 여섯 개의 직군들의 공로를 치하한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 여섯 개의 직군에 필요한 것은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지, 떡 한 조각도 안 떨어지는 표창장 따위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노동시간은 길기로 유명해서 그 위대한 OECD국가 중에서도 당당하게 1위(연평균 2256시간)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심화되는 고용불안정과 보란 듯이 올라가는 가파른 물가상승률의 조합은 수많은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오늘날 환경미화원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그 이유는 환경미화원이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정규직’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환경미화원이 조금 이라도 편해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청소를 업으로 삼는 이들 중에서 이 정규직 환경미화원들은 상위 계층에 속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경우 고령자와 여성, 그 중에서도 여성 고령자로 이루어진 청소노동자들은 용역이나 파견노동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대체로 1000원이 안 되는 돈을 식대로 지급받으면서 최저임금에 준하는(사실 이것만 받아도 양반인) 돈을 받으며 하루 종일 청소를 하는 이들은, 일반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 공공기관, 심지어 법원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청소를 하고 있다.

나머지 직군들도 만만치 않다. 교통지옥에서 버스를 몰고 종종 승객에게 구타도 당하는 버스 운전기사나, 인력부족과 제대로 된 안전장치 미비로 과로와 위험 속에 방치되어있는 소방공무원, 아파트의 우주정복 기획과 4대강 정비사업의 속도전 덕분에 부상과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는 건설노동자, 상당수가 연변에서 건너온 조선족이며, 덕분에 가뜩이나 낮았던 임금이 더욱더 낮아진 식당아줌마, 마지막으로 그 범위에 따라서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일반적으로는 야근과 과로 그리고 퇴사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회사원들까지. 아마 한 권의 책으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이 ‘수고하는 사람들’의 잔혹사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나면 ‘새해를 맞아 사회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다’는 광고에 대한 설명이 결코 곱게 들리기 어렵다. 게다가 ‘낮은 곳’,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서민’ 같은 표현들은 흡사 개발독재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이다. 대체 무엇이 낮고, 누가 묵묵하며(혹은 묵묵해야 하며), 주어진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이 불쌍한 서민들을 위해 친히 표창장을 내리겠다는 사또적 발상은 또 뭐란 말인가?

단지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광고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그 광고가 향하는 곳이 사회적 마이너리티라고 여겨지는 곳이라면 더더욱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이 광고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추켜세운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들에 대한 존중이며,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법을 고민하는 사려 깊음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이 광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아마도 두 번째로 말하는 것일 테지만, 서울시는 부디 훌륭한 시정에 힘쓰고 이 소모적인 광고공해는 그만둬 주길 바란다. 정말로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


P.S 이 광고를 기획한 이제석씨에 따르면 애초에 이것은 동상으로 제작될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울시와의 협의과정에서 동상이 트로피로, 트로피가 상장으로 바뀐 것이다. 유머와 아이러니를 주된 무기로 삼는 그의 다른 공익광고들을 볼 때, 동상이 상장이 된 것은 이 광고의 메시지를 거꾸로 바꿔놓을 만큼 치명적인 결함이다. 만약 이 동상들이 광화문 광장 같은 곳에 세워졌다면, 지금 보다는 훨씬 더 좋은 광고가 되었을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도 심심한 유감을 표하며, 이런 결과물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또 다른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기사의 내용은 본 매거진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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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잡지디자이너 과심은 여러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노력은 부족함 디자인계에 정보를 알고싶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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