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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열, 분리, 이음 자연을 향한 공간의 재해석-사천애(思闡厓) 펜션

2009-05-19

여행을 다니다 보면 주변 자연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을 볼 수 있다. 우거진 숲을 깎아 내고 덩그러니 세운 전원주택이라든지, 푸른 나무들 사이로 우뚝 솟은 회색빛 모텔. 자연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축물이자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 때문에 이제는 자연의 제 빛을 잃어버리게 하는, 볼썽사나워진 풍경이다. 사천애가 단순한 숙박시설이라면 객실을 빼곡히 채워 건물을 높게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사천애의 설계자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을 겸허히 받아들여 그 공간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에디터 ㅣ 심민영 (myshim@jungle.co.kr) 자료 및 사진제공 ㅣDesign INFUR

자연의 흐름을 이해하는 공간

나열하고, 공간을 비우고, 각을 세우고, 비튼다. 펜션 ‘사천애’는 학창시절 한때 유행했던 보드게임 ‘젠가’를 닮은 기하학적인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그 모양새가 마음에 들고 그곳을 벗삼아 그 주변의 자연풍광을 즐기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앞은 동해바다고 뒤는 태백산맥. 그 웅장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사천애는 잘 정돈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듯한 사각형 하나하나의 형태를 모아 놓은 건축물이다. 사천애가 특별한 것은 그 모양새 때문만은 아니다. 건물 곳곳에는 풍경을 이해하며,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그것과 동화하려 한 설계자의 노력과 고심의 흔적을 볼 수 있어 그 마음이 더욱 아름답다.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천애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자연에 흡수되려 한 노력 덕분에 인공적인 건물조형임에도 불구하고 자연동화적이다. 그 양면적 느낌이 공존하는 사천애는 모던하면서도 자유분방해 매우 매력적이다.

앞은 바다, 뒤는 태백산맥

앞으로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뒤로는 태백산맥의 의연한 능선을 해치지 않는, 구릉 위에 몸을 낮춘 사천애. 경관의 훼방꾼이 아닌 원래부터 그렇게, 자연과 오래 전부터 하나였을 것 같은 낯익음. 그것은 사천애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창문을 열면 동해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람에 금새 태백산맥까지 날아갈 수 있을 정도로 자연과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사천애인 것이다.

찾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간

하루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빌어야 하는 삶은 이제 신물이 날 때,
휴대전화가 무서워지기 시작할 때
바로 지금.

시인이자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갑수는 그의 에세이에서 여행을 떠나야 할 때를 이렇게 나열하고 있다. 사람은 각자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결심한다. 힘들 때, 기쁠 때, 외로울 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존경하는 부모님과, 그리운 친구들과. 사천애는 이렇게 여행의 다양한 이유와 상황을 헤아릴 줄 아는 사려 깊은 공간이다. 그런 사천애의 공간들은 그 이름부터 특별하다.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사람들의 휴식공간 ‘다시’. ‘그 동안’ 지나왔던 세월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공간, 큰 나무 밑에서 낮참을 청하듯 싱그럽고 상쾌한 ’나무’. 이렇듯 사천애의 각 공간에는 공간의 의미가 있고 이야기가 있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방들에는 각기 개성이 넘친다. ‘콤마’의 방의 경우 ‘휴식’, ‘쉬어가기’, ‘쉼표’, ‘푸른색’, ‘바다’. 콘셉트에서 연상될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가 색상, 형태, 빛 등을 통해 정확히 공간에 부합되게, 각기 소스들이 어울려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다.

이는 공간이 줄 수 있는 의미를 깊게 생각하고 찾는 이가 최상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기획한 설계자의 세심한 배려인 것이다. ‘펜션’보다는 ‘공간’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사천애. 그 어느 때보다 휴식의 필요성이 커지는 요즘. 하루쯤 나만을 위해 호화스러운 사치가 필요하다면, 세상과 나를 단절시킬 공간이 절실하다면, 한적한 동해의 낮은 언덕에 조용히 빛을 밝히고 서있는 사천애로 초대한다. 자연에 흡수된 건축물의 관대함에 동화되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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