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1-19
도심지에서는 다소 벗어난 듯한 한적한 거리, 노란 은행나무들이 자신의 분신을 거리로 흩날리며 제법 운치를 자아내는 늦가을, 일원동 거리 한 자락에 래미안 주택문화관이 다소곳이 자리한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주택문화관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마치 갤러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독특한 건물 표정이 거리를 걷고 있는 행인들은 신기한 듯 발걸음을 머물거나 의자에 앉아 잠시나마 휴식을 취한다.
제법 오래전부터 주거경향의 새로운 흐름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모델하우스가 점차 상설 주택문화관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일원동 삼성주택문화관 역시 아트하우스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래미안 갤러리로 새롭게 탈바꿈하였다. 흡사 백화점의 쇼윈도우를 보는 듯 경쾌하고 이색적으로 다가오는 주택문화관은 이제껏 보아온 주택문화관의 개념과 상이한 접근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 이름에서 잘 드러나듯 다분히 건축적이기보다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보는 듯 차별화된 입면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트하우스가 마련되기까지 총괄 지휘자격으로 디자인을 진행한 아티스트 한젬마가 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이미 대중에게 친숙함을 과시한 아티스트 한젬마. 그녀의 살아왔던 삶의 환경이 순수예술가로서의 무거운 짊을 벗어던지고 대중과 적극적으로 호흡하고자 하였듯이 이제 대중들은 그녀를 베스트셀러의 저자,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그림DJ로 칭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미 1993년부터 전시를 시작으로 수십 차례의 전시와 공모전을 갖고 있는 관록 있는 예술가이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비상(Flying Up, 40×10m)'이라는 전시를 통해 대중적 관심을 모았고 성북 뉴타운 벽화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세권의 책을 쓴 작가, 예술프로그램의 진행자와 패널, 각종 언론매체의 컬럼리스트, 퍼포먼스 공연자, CF출연, 대학 강의 등 예술의 팔방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이다. 그리고 최근 서울 일원동과 대구 범어동의 주택문화관을 디자인하며 또 다른 영역으로 자신의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분양을 목적으로 지어지는 대부분의 모델하우스가 마치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작금의 현실에서 주거문화를 중심으로 대중과 친숙한 살아있는 집을 만들면 어떠할까? 이런 의문점을 삼성건설 관계자에게 던지면서 한젬마의 주택문화관 리모델링은 물길을 트기 시작한다.
“아트하우스를 계획하면서 폐쇄된 공간을 탈피하고 대중과 적극적인 소통을 마련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두고자 하였습니다. 도면은 잘 모르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창의적이면서도 내외부가 소통하며 사람들과 보다 많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익히 오래전부터 못, 경첩, 지퍼, 똑딱단추 등의 연결 오브제로 ‘관계-소통’이란 주제로 일관되게 작업해 온 그녀였기에 자신의 언어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외관은 자연을 상징하는 그린과 기술을 상징하는 회색, 그리고 비어있음을 의미하는 흰색으로 사각 컴포지션의 입체적 건물로 유비쿼터스 미래형 주택체험관의 이미지를 얻어내고자 하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되면서 한젬마는 공사 휘장막에 자신의 ‘비상’ 작품을 설치하는 이색적인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다. 거대한 날개를 휘장막에 걸어놓아 공사 주변 환경에서 야기되는 시각적 공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겪게되는 시민들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하고자 한 것인 동시에 대중들에게 전시형식으로 예술을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그야말로 작가다운 참신한 발상이었다.
작업 초기부터 한젬마는 자신의 아트하우스 작업에 다른 예술가들을 참여시키고자 한다.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에게 전시기회를 제공하고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예술적 공간적 짜임새를 제안한 것이다.
무심코 거리를 거닐다가 인도에서 바라보이는 유명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고,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혹은 힘든 보행길에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트의자에 앉을 수 있다면 어떠할까? 그것이 바로 건물 자체에 예술성을 높일 수 있고 예술의 벽을 넘어 보다 친근하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접근방식이 되지 않을까?
이러한 아이디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아트하우스는 자연스럽게 주변과의 튼실한 관계맺기를 추구하게 된다. 외피를 감싸고 있는 두꺼운 벽은 쇼윈도우처럼 안과 밖이 소통할 수 있도록 투명유리로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속에 박은선, 박승모, 이진용, 전광호, 조성묵 작가들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보행자들에게 살며시 감성적 눈길을 전해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주택문화와 연계된 전시작품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얻을 수 있고, 예술작가들은 주택문화관측과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인 전시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건물 외부공간에 조각적 요소를 반영하여 건물 자체의 예술성을 높이고자 한 그녀는 ‘for you’, ‘함께해요 우리’, 보자기에 담고 싶은 그대에게‘, ’색다른 조화‘ 등의 아트의자를 손수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또한 건물 내외부에 놓여진 의자와 외부 공간 곳곳에 인물 동상들을 직접 디자인하여 공간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입구 부분에는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가 쇼윈도우를 물끄러미 바라다보고 있고, 외벽 발코니에는 화목한 가족들이 손짓을 하거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조용히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여자의 모습이나 길가는 학생들이 손짓 또한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아트하우스 내부역시 벽면과 바닥 곳곳에 ’관계‘를 주제로 한 한젬마의 작품들이 공간과 만나면서 방문객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고자 한다.
예술의 높다란 벽을 허물고 일상의 공간과 거리에서 대중과 호흡하고자 하는 한젬마의 아트하우스. 그것은 디자인을 우선시하는 기업의 실천의지와 생동감 있는 주택문화관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중과의 관계와 소통을 이끌어 내고자하는 한 아티스트의 창의적인 결과물인 셈이다.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내 집을 짓는 듯, 영화처럼 재미있게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는 팔방미인 한젬마. 이제 그녀를 ‘디자인을 예술가의 시각으로 읽어주는 여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가적 고집과 열린 대중적 끼를 통해 예술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속의 디자인 환경을 넌지시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