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3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와가(기와집)와 초가가 잘 보존되어 전통 건축물들의 조화를 살펴볼 수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사회 구조와 유교적 양반문화의 주거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마을이기도 하다.
에디터 | 김윤 객원기자 (cosmosstar00@naver.com)
과도한 웅장함으로 주눅들게 만든다거나, 오목조목 잘 꾸며져 있지만 어딘지 얄미운 이웃나라들의 건축물과는 다르게 주변과의 조화를 우선시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는 것이 한국전통건축의 특징이다.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하회마을은 이러한 고즈넉한 한국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선생이 자란 곳으로 유명하고, 우리나라의 전통생활문화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은 음양의 조화 즉 산의 기운과 물의 기운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산임수가 적용되었다. 마을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보존된 47개 서원과 사당 중의 하나인 병산서원이 있다. 병산서원의 정문인 복례문은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곳 인(仁)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보편적으로 서원의 정문은 삼문(三門)인데 반해 하나의 문으로 이루어 진 것이 특징이다. 복례문과 만대루 밑을 지나면 유생들이 학문을 키우는 서원의 중요공간인 입교당이다. 복례문을 기준으로 볼 때 입교당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산지지형이 많은 경상도 지역의 공간활용 방식을 볼 수 있다. 가운데 ㅁ자형 마당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유생들의 기숙사격인 동재와 서재가 입교당을 받쳐주고 시원하게 트인 만대루가 정면에 자리잡고 있어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마을의 중심에는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기원하는 나무가 있다. 높이 15m, 둘레 5.4m에 수령이 600년이나 되었다는 느티나무는 삼신당 신목이다. 이곳을 시작으로 하회별신굿 놀이의 춤판이 벌어진다. 신목 앞에는 소원성취라고 가슴에 새겨진 환한 얼굴의 장승이 있는데, 신목 주변과 장승 머리 가득 소원이 담긴 쪽지가 달려있다. 한 켠에 소원을 적을 수 있는 종이와 펜이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나 소원을 적을 수 있다.
하회마을은 양반문화와 서민문화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답게 기와집과 초가집이 잘 어우러져 있다. 사랑채, 행랑채, 안채, 대청마루에 담장으로 죽 둘러쳐진 양반가옥과는 다르게 일자형이나 ㄱ자형 의 단순하고 검소한 건물 한 두 개로 새끼줄을 단단히 엮어 올린 초가집은 양반집 기와집 못지않은 누군가의 든든한 쉼터였을 것이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하셨던 서애 류성룡선생의 종택 충효당은 삼신당 옆에 있다. 보물 414호인 현재의 충효당은 류성룡선생이 생전에 살던 검소한 생가의 모습은 아니다. 선생의 덕성을 기념하기 위해 후손들이 증축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다.
솟을대문 안쪽으로 보이는 사랑채는 겹집형식을 이루고 있으며 난간을 이루는 툇마루가 감싸고 있다.
대청마루 뒤쪽에 비대칭의 두 개의 문이 있다. 한쪽은 출입용도이고 한쪽은 창문용도이다. 전통기와집의 특징인 나무결과 창호 문이 마치 하나의 액자가 되어 대청 마루 뒤편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낸다.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으로는 바람도 흥에 겨운 듯 자유스럽게 드나든다. 더운 여름을 이길 수 있도록 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약한 지기를 보완하기 위하여 심어진 솔숲이 만송정은 키 큰 소나무들 덕분에 뙤약볕을 피하기 좋은 곳이다. 앞에는 낙동강 백사장이 펼쳐지고 멀리는 부용대가 보이는 이 곳에서 그 옛날 선비들은 ‘선유줄불놀이’ 라는 풍류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하회마을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 퇴계 이황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산서원이 있다. 건물의 크기와 방향 에서부터 이름까지 선생이 추구하는 유교적 이상이 담겨있는데, 높지는 않지만 넉넉한 뒷산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하나가 된 모습이다.
퇴계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은 단정한 일자형태로 부엌, 온돌방, 마루로 구성된다. 여기에 부엌 반 칸, 마루 한 칸을 늘리고 덧 지붕을 달아 공간을 활용하였는데, 기본 세 칸의 형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룬다. 서당을 들어서는 곳의 싸리 가지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문이 있다. 그윽하고 곧다는 뜻으로 유정문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안과 밖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어주는 것 같은 자세로 서있다. 도산서당 서쪽으로는 제자들이 기거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 책을 보관하는 서고 광명실 그리고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대강당인 전교당 등 이 위치하는데, 관직보다는 학문에 전념하고 싶었던 선생의 평생의 바람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느껴지는 듯 하다.
요즘 건축물들은 더 멋진 모습을 뽐내기 바쁘다. 최첨단 기술을 통해 화려해지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삭막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공간에 있으면 뭐든 잘 해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재촉하기도 한다. 화려한 겉모습으로 으스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교감하는 우리의 공간인 한옥을 체험하며 서두르는 마음을 조금은 가라 앉혀 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자료
http://www.hahoe.or.kr
http://www.dosanseow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