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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를 아는 방법, Jenny KNOWLTON in Chicago

2011-04-20


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할 때 언제나 우연히 이뤄질 만남을 기대한다. 기대하지 않더라도 불시에 일어나는 것이 ‘여행지에서의 만남’이다. 영화 ‘프로포즈 데이’에서 여주인공 에이미 아담스는 남자친구에게 고백하러 가기 위해 멜버른으로 떠난다. 도중에 폭풍을 만나고, 그녀는 비바람을 피하고자 한 식당에 들어간다. 그때부터 시작된 식당주인(매튜 굿)과의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에 에이미 아담스의 고백을 받는 사람이 남자친구인지, 식당 주인인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은 작정을 하고 사랑을 찾아 이탈리아로 떠난다. 이처럼 ‘여행’과 ‘만남’은 늘 붙어 있길 바라게 되는 환상의 조화다. ‘영화 같은 일’이 항상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에겐 너무 먼 이야기라 단정 짓지는 말자. 호텔 로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다가, 졸업 후 소식이 정말 궁금했던 동창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거나, 여행 중 밀렸던 빨래를 대충 챙기고 터벅터벅 걸어갔던 호스텔 3층 공동 빨래방에서 만나 유일한 말벗이 되어 주었던 그 사람과 몇 년 후 재회를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글 | 정혜원 정글리포터
사진 | Jenny Knowlton 제공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B&B(Bed & Breakfast)가 재미있는 이유도 그 속에 언제나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호텔의 기회비용으로 B&B를 선택한 여행자라면, 그 만남이 늘 설레일 것이다. 그것이 ‘긴장’이 되었든 ‘기대’가 되었든, 얼굴도 잘 모르는 집주인과 미리 약속을 잡고 열쇠를 건네 받는 일은 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호텔을 포기한 여행자’의 동의어인 ‘호텔 조식을 포기한 여행자’는 집주인이 제공하는 Bed와 Breakfast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B&B 여행자는 자신이 이용할 침대의 사이즈가 킹이니 퀸이니 하는 사실엔 연연해 하지 않는다, 주어진 대로 이용할 뿐. 그러나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는 선물이 큰 기쁨을 안겨 주듯이, 어느 날 한밤중에 목이 말라 열었던 냉장고에서 집주인이 미리 사다 놓은 흰 우유와 베이글을 발견했을 땐, 호텔 조식도 잊게 될 것이다.‘내일 아침은 걱정 없겠네!’ 생각하며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고, 훗날 그 여행의 날들도, 그 집주인도 잊을 수 없는 나만의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B&B는 여행자와 여행자에게 집을 내주는 집 주인이 신분과 출신지를 떠나 사람 대 사람으로,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숙박 방법이다. 그래서 이것은 ‘누가’,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첫 번째 ‘여행자를 맞이하는 법’에서는 베를린에 사는 Le Van Bo를 만나 봤었다. 그는 DIY 가구를 만들며, 자신이 만든 가구를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집에 가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B&B로 활용한다.

맥주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B&B란, ‘Breakfast & Bed’가 아니라,‘Bed & Beer’가 되기도 한다. 집에 생맥주 기계를 들여놓고 여행자에게 매일 아침 ‘모닝 맥주’를 내려주니 말이다. 때로 B&B는 캠핑카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케냐에 사는 어떤 이는 산장을 여러 채 지어 놓고, 여행자를 맞이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집을 활용, 여행자에게 제공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여행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또 내가 사는 곳을 잘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에, 혹은 그냥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 마음의 문과 함께 집의 문을 열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Jenny KNOWLTON in Chicago

시카고 여행을 계획할 때 우린 어떤 만남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상상은 자유다. 시카고에서 가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날아왔다는 청년, 존박이 고향으로 돌아와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피자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고, 영화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의 원 제목이자 시카고에 있는 조그만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 ‘위커 파크(Wicker park)’를 서성거리는 조시 하트넷 같은 남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확률은 미지수지만.
시카고에 사는 Jenny는 시카고 토박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열리는 여러 예술 축제와 전시의 기획을 도맡아 해왔다. 발이 참 넓은 Jenny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알고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자꾸만 소개해 주려고 했다. 늘 ‘우리 집에 머물렀던 한국인 누구누구는 지금 무슨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이 인터뷰에 도움될 만한 일이 있다면, 그들과 만나게 해 줄게요’라는 말을 빠짐없이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갤러리를 활용하여 B&B를 운영한다. 갤러리는 사람이 계속 찾아오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공간보다 조용하고 적막이 감돌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녀가 이 공간에서 어떻게 여행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빈털터리였던 내 마음이 어느새 풍족해져 있었다”

‘Gallery Apartment’라는 컨셉이 독특하다. 운영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나?
공간 자체가 워낙 넓어서 활용할 수 있는 분야도 많다. 전시가 없을 때 이렇게 B&B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공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 보고 싶었다. 혹시나 전시가 있을 때에는 칸막이를 두는 등의 방식을 통해 공간을 분리한다. 전시 관람 시간에는 여행자들이 대부분 밖에 나가 있을 시간이라 이용하는 사람들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갤러리가 있는 건물의 다른 층에는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친구들이 살고 있다. 우린 돌아가면서 호스트 역할을 한다. 건물 옥상에는 정원이 있는데 이곳에 서면 시카고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은 날은 이곳에서 여행자들과 함께 바비큐 파티를 연다. 위치적으로도 교통이 편리하고, 주변에 볼거리, 놀거리도 많다.

“음식을 먹으러 갈 땐, 한 레스토랑에서 배부른 식사를 하지 않는다”

여행자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 놓는 것이 있는가?
여느 숙박시설처럼 기본적인 것은 다 준비하지만, 우리 집이라고 특별히 준비하는 건 없다. 그저 여행자들이 머무는 동안만큼은 생활 영역 안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우리 집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커피 하나를 마시더라도 에스프레소, 라떼, 카푸치노 등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모두 준비를 해 놓았다. 집 근처의 맛집, 술집에 대한 소개를 해주거나 거리 여행에 동참할 때도 있다. 물론 여행자가 원할 때에 한해서이다. 특히 음식을 먹으러 갈 땐, 한 레스토랑에서 배부른 식사를 하지 않는다. 여러 곳을 다니며 여러 음식을 조금씩 맛보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당신도 여행을 좋아하는가?
어렸을 적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고, 지금도 좋아한다. 부모님께서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하셔서 우리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언제나 집은 북적거렸다. 부모님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필요한 경우엔 방도 제공해 주셨다. 나도 종종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때론 어른들끼리 나누는 대화에 껴 보기도 했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나에겐 하루하루가 여행이었다. 학교가 좀 멀리 있었기 때문에 걷든, 버스를 타든 강을 건너가야 했었다. 학교엔 유독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학교 주변을 벗어나 멀리 놀러 가는 그런 날들은 작은 여행과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내 여행 생활이 시작됐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어디 있든, 어디서 무엇을 발견하든 주저할 것이 없었고, 두려움도 없었다.

졸업 후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을 것 같다.
물론 여행다운 여행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여행을 많이 다닌 횟수만큼, 수많은 일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인쇄소에서 일을 했고 모은 돈으로 친구를 따라 뉴욕에서 몇 년간 산 적이 있다. 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4년 정도 사진을 배웠고, 이후에는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서 일을 하면서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광고를 만드는 감독 일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시카고 최대의 예술 축제인 ‘아트 시카고’의 기획 일을 했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전시 기획을 해 오고 있다. 일을 하면서 시카고에만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에 거의 매년, 혹은 1년에 두세 번 정도 파리와 서유럽을 가곤 했었다. 가면 대개 친구 집에서 묵거나, 친구의 친구의 집, 아니면 호스텔을 이용했다. 마찬가지로 내가 시카고에 있을 때엔 그들도 우리 집으로 와서 잠깐씩 머물다 가곤 했다. 서로 오고 가는 돈이 없었을 뿐이지, 이것도 일종의 무역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굉장히 지속 가능한 무역이다. 하면서 배우게 된 것도 많았다. 시카고에 오는 사람들은 다 각자의 방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출장차 온 동료와 상사, 일 때문에 잠깐 들른 갤러리 오너, 여행만 하고 싶어서 따라 온 친구까지, 우리 집에서는 잠만 자고 가는 손님일지라도 이 방문자를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또 저 방문자에게 어떻게 대접하면 좋을지 하는 것들을 몸소 배울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숙박비를 받은 건 아니지만 이렇게 누군가를 우리 집의 고객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잊지 못할 여행이 있는가?
전시 기획 일을 하면서 여러 나라도 다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2001년 9월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이때 워싱턴에서 일을 마치고 시카고로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난 너무 지쳐있었지만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끝내 국내선 항공권을 빈으로 떠나는 국제선 표로 바꾸었다. 그때 공항에서 같이 빈으로 가는 한 사람과 인사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빈에서 활동하는 아코디언 연주가였던 그는 당시 공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그의 도움을 받아가며 빈에서 지냈다. 그 후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갔다. 호스텔에 머물면서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자들을 만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워싱턴 공항에서 만났던 그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불가리아에 사시는 부모님을 뵈러 갈 건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다페스트에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불가리아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와있던 그와 재회했다. 난 며칠 간 그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와 함께 불가리아의 제2의 수도인 플로디브도 구경하고, 그가 살아온 곳을 거닐고,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여행했다. 이때의 모든 경험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놀랍고, 재미있었던 순간들이다. 아마 혼자서 여행을 했었더라면, 그렇게 그 지역과 가깝게, 마치 그 지역 사람처럼 여행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와는 지금도 아주 가깝고 특별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여행 계획이 있다면?
오는 6월에 스위스의 루체른에 갈 계획이다. 전에 함께 일했던 아티스트들이 여는 전시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내게 정신적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일을 하면서 오랜 시간 살았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익숙하다. 갈 때마다 또 어떤 예술 같은 일이 벌어질지 늘 설렌다.

호스트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어떻게 하면 동시에 더 많은 여행자를 맞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렇기에 나의 하루하루는 기대로 가득 차 있을 수밖에 없다!

B&B 예약 전문 웹사이트인 ‘에어 비앤비’에 들어가서 여행할 지역을 입력하는 검색 창에 Chicago를 쳐 보면, 첫 번째로 Jenny의 집이 나온다. 그녀는 이른바 인증된 ‘슈퍼주인장’이다. 저렴한데다 잊지 못할 여행을 만들어 주니 여행자들은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정보를 아낌없이 전해준다. 이런 그녀의 친절이 어찌 보면 다소 소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녀의 그런 소란함은 부담스럽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쭉 알고 지낸 옆집 아주머니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그녀는 언제 만나도 요란스러우면서도 푸근한 인상을 줄 것만 같다. 그녀의 삶은 여행의 기록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것은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기록이기도 하다. 그녀의 머리와 가슴은 여행에 관한 추억과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늘 여행자들과 함께하는 그녀는 언제나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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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에디터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디자인, 마음을 움직이는 포근한 디자인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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