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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위치한, 숭인교회

2006-06-05


글_이충기|사진_박완순

숭인교회는 장소, 모양, 높이 등 여러 면에서 아주 독특한 대지에 자리잡고 있다. 창신역•동묘앞•신당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낙산의 동쪽자락으로, 청계천과 종로를 교차하며 남북으로 뻗은 도로의 동망봉 터널 위에 위치한다. 이곳이 오랜 주거지였음을 나타내듯 땅 모양은 불규칙한 선들로 이루어진 특이한 형태이며 남북의 대지레벨이 6.5m 정도 차이나는 경사지이다.

지명현상을 통해 설계를 시작할 때만해도 대지 주변에는 오래된 산동네가 풍기는 다양한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며, 소규모 주거들이 재미있는 골목길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파트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북쪽과 남쪽은 교회가 완공될 시기를 전후해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따라서 대지레벨이나 땅모양을 극복하는 것이 주된 해결과제였을 뿐 아담하게 자리했던 기존 교회와 주변 경관에 대한 고려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새로 지어질 교회의 높이는 아파트숲에 묻혀버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현장을 다니면서 크게 아쉬웠던 부분은 이른바 강북뉴타운이란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도시주거환경 개선사업들이 땅의 역사나 환경을 무참히 파괴하고 거대한 아파트 숲만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강북의 아파트, 특히 서울 성곽자락에 접한 동네인 이곳만이라도 고층아파트 대신 저층 연립주택과 단독주택이 어우러진 동네로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이제 이전 골목과 주변 경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곳에 교회만이 아파트 가운데 외롭게 서 있게 되었다.


숭인교회는 본당을 중심으로 대지형태를 따라 계획하였다. 6.5m의 레벨차를 반지하 2개층으로 해결하고 지상2층에 본당을 배치하고, 본당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외부계단을 두었다. 비교적 닫힌 북쪽의 입면과 달리 남쪽으로는 왼쪽의 동망봉 주변의 밀집주거, 남쪽의 창신역, 종로의 동묘앞, 청계천, 학교운동장을 조망할 수 있도록 커튼월로 계획했다. 북동쪽 외관은 남서쪽의 커튼월을 경계로 노출콘크리트 외벽이 대지경계를 따라 감아 올라가는 형태를 취하였는데, 이는 교회로 진입할 때 형성되는 느낌을 경사대지의 레벨을 따라 휘감아 올라가는 형태로 반영한 것이다.

교인들의 입장에서 새 교회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만큼이나 설렘을 동반하겠지만 시설의 편리함은 장소에 대한 기억을 빨리 지워버릴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에 있는 땅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계획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고, 아파트가 다 들어설 수년 후에 다시 한번 나의 고민이 불필요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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