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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손 끝에 피어나는 단아한 감촉

2005-11-29


붓질(www.bootjil.com).온라인 공간인 인터넷 홈페이지의 이름이 ‘붓질’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온라인에서 느껴지는 오프라인의 질감, (어느 순간 우리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공간은 ‘오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아이러니 하다.) 살갗의 느낌. 그 이름에서 사람 손끝이, 미묘한 감촉이 느껴진다.
붓질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이름 그대로 누군가가 손 대었을 붓질의 감이 전해진다. 평면의 모니터로 보여지는 생생한 인물들의 그림은 보는 사람을 순간 정지시키는 힘이 있다.
여러 점의 공필화를 감상할 수 있는 손지훈씨의 홈페이지 ‘붓질’은 그런 곳이다.
사람의 손맛과 컴퓨터 화면의 멋이 은은하게 흘러 넘치는 곳.
어떤 곳일까. 궁금함을 참기 힘들다면, ‘마우스질’을 시작하면 된다.

취재 | 김유진 기자 (egkim@jungle.co.kr)

이미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는가. URL을 더블 클릭 하면 된다. 그럼 바로, 낯선 동양화로 그려진 인물화가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 다소곳한 품 새. 그림 속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으면, 온라인에 떠있는 인물들에게 금새 속 깊은 이야기를 하나, 둘 지어주게 된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손지훈씨는 2001년 ‘붓질(Bootjil.com)’이라는 도메인을 구입해 2002년 가을 홈페이지의 문을 열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웹디자인을 하다가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모아놓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홈페이지 이름인 ‘붓질’은 손지훈씨 작업을 아우르는 말이다. 비단에 붓질을 하는 마음으로, 페인터에 타블렛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다. 딱 떨어지는 컴퓨터 작업과 손에 느낌이 전해지는 붓질은 완벽하게 똑같지 않지만, 그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붓질’이라는 이름은 타블렛에 거는 주문과도 같다.

홈페이지 자체로 본다면, 구성은 매우 심플하다. 홈페이지의 틀도 설치형 블로그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장 손지훈씨가 적어 나가는 ‘note’, 그림 작업들이 올려져 있는 ‘gallery’, 배경화면을 다운 로드 할 수 있는 ‘wallpaper’, 그 외에 ‘bbs’, ‘link’ 등이다.
주인장 손지훈씨가 적어나가는 보드 형식의 ‘note’ 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이야기’와 사진 위주의 여행기를 담은 ‘여행’, 공식적인 스케쥴을 적어놓은 ‘일정’, 재미있게 본 전시나 행사를 스케치한 ‘전시’로 나눠져 있다. 메뉴명만 봐도 이렇게 심플하고 간단할 수 없다.

그러나 단순한 구성이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매우 정적으로 보이는 그의 그림 때문이다. 다소곳하고 단아한 인물화들은 이 조용하고 얌전한 홈페이지와 매우 적절하게 어우러져 보인다. 그림을 클릭할 때 마다 족자처럼 떨어지는 플래쉬는 이 홈페이지에서 유일하게 부여된 운동감이다. 물론 이러한 효과는 ‘한 폭’의 그림이라는 수식어를 매우 적당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붓질 홈페이지의 핵심은 역시 ‘gallery’가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있는 많은 작품들은 붓질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붓질 그 자체이기도 하다.
갤러리에 있는 각 메뉴별로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 디지털 페인팅
디지털 페인팅은 수작업과 페인터로 병행해서 완성한 공필화 작품들이 올려져 있다. 주로 손지훈씨가 자유롭게 그린 개인 작업물이다.

>> 컨셉 아트
컨셉 아트는 문화컨텐츠진흥원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중국 고전 소설 <태평광기> 의 주인공을 그렸던 작업을 모아 놓은 곳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정지되어 있지만, 신화 속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핸드메이드 (수작업)
핸드메이드 메뉴에는 그가 100% 수작업으로 완성해 스캔하여 업로드한 작품들이 있다. 출판 일러스트로 2003년 작업한 것들이다. 동물들의 경우에는 털이나 수염 등 극도로 세밀한 묘사가 필요하므로 페인터를 쓰지 않고 수작업으로 그려나갔다.

손지훈씨가 그리는 공필화는 동양화 중 채색화의 한 계열이다. 종이를 쓰는 일반 채색화와 달리 비단을 사용한다. 틀 위에 비단을 발라 그 위에 밑 색을 입히고 색을 계속 쌓아 올린다. 물론 이 과정에는 색을 입힐 때마다 물감을 말려야 하는 과정과 수정작업도 당연히 따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리던 손지훈씨에게 작업의 혁명이 일어났다. 페인터를 이용해 타블렛으로 공필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100% 페인터로 작업도 하였지만, 그는 공필화 특유의 포근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수작업 40%, 페인터 60% 정도로 작업의 과정을 바꾸어 나갔다.
그의 작업과정은 다음과 같다.

Jungle : 홈페이지가 참 단정하다.
손지훈: 웹디자인을 했을 때는 화려하고 현란한 싸이트를 좋아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시도를 했는데, 심플하고 보기 쉬운 것이 딱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주얼 보다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Jungle : 갤러리 페이지에 그림의 목록을 눈 부분으로 클로즈업 해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손지훈: 인물화에서 눈이 가장 자신 있다. 언제나 나는 눈을 먼저 그리고, 눈의 완성도에 따라, 이후 작업의 진행 여부를 판단한다. 눈이 마음에 들면 계속 작업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술을 마시러 간다. (웃음) 그렇기 때문에 눈은 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Jungle : 이런 그림을 언제부터 그렸는가.
손지훈: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좋았고, 부모님의 반대로 어렵게 가게 된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려면 동양화를 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색 계열을 싫어한다거나 포근하고 단아한 느낌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워낙 동양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잘 맞는 것 같다.

Jungle : 주로 여인들 혹은 인물들의 그림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손지훈: 학교 다닐 때는 얼굴에 있는 주름을 그리는 게 좋아서 파고다 공원에 가서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드로잉하곤 했다. ‘인생이 작업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참 사는 게 허무하게 느껴지고, 회의감도 밀려오더라. 그래서 그림부터 바꿔야겠다 생각을 했고, 그게 자연스럽게 여인상으로 바뀌었다.

Jungle : 그림의 아이디어나 소재가 뭔가 다를 것 같다. 인물들의 얼굴도 생생한데, 모델이 따로 있나.
손지훈: 그렇다. 모작이나 모델을 써서 그리기도 하고, 지인들의 얼굴에서 조금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복식에 관해서는 약간 부족해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거나 동대문 고서적에서 소스를 찾는다. 가끔은 한복집에 가서 받아온 카달로그를 받아와 보고 응용을 하기도 한다.

Jungle :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는 것에 대한 망설임이나 거부감은 없었나.
손지훈: 내가 하고 있는 디지털 작업은 수작업과 상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도구와 재료의 차이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본다. 타블렛이 붓이라고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다. 컴퓨터 상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완성도가 그렇게 밖에 안 나온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중요하지 않다.
파스텔과 연필로 그림을 그렸을 때는 그것이 쓸 수 있고, 필요했고, 그래서 가장 익숙한 재료였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디지털적인 미술도구들이 많이 생겼다. 페인터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이다.

Jungle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손지훈: 홈페이지는 내년 중에 다시 리뉴얼 할 예정이다. 지금은 너무 깔끔해서 칼같이 끊어진다는 생각도 든다. 보다 자연스러운 느낌이 살면서, 비주얼적으로 차분함과 단아함을 유지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전시를 준비중이다. 1.8m 의 화선지로 출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방식으로 전시를 꾸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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