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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당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는 SIRE

2007-02-06


글 │ 이건 슈가큐브 기획팀장 egun@sugarcube.tv


언론자유지수 1위, 연구개발투자 8위, 국가경쟁력 9위, 삶의 질을 대변하는 인간개발지수 10위. 2006년을 결산하는 각 나라의 행복지수 평가에서 네덜란드가 거둔 성적 중 세계 10위권 이내에 든 항목만을 정리한 것이다. 한편 매년 각국의 행복지수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하는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야스가 2005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네덜란드는 96점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 사이트는 바로 그 ‘행복의 나라’ 네덜란드의 어두운 이면을 냉정하게 들춰내고 있다.

‘I Spy With My Little Eye’는 네덜란드의 비영리 캠페인 재단인 SIRE가 최근 진행하고 있는 아동 학대 방지 캠페인이다. 도메인 이름이기도 한 ‘ikzie ikzie wat jij niet ziet’는 영어로는 ‘I See I See What You Don’t See’라는 뜻으로 영어권의 ‘I Spy With My Little Eye’와 유사한 게임이라고 한다.

사이트를 열면 화면 중앙을 강렬하게 채우는 눈동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 위에는 역시 압도적인 크기의 카운터가 있고 ‘그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눈을 떴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첫 번째 이슈는 10대 홈리스(homeless) 문제이다. 어두운 밤, 가로등을 클릭할 때마다 그 밑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는 10대 노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구구절절 사연을 읊어대지도 않는다. 다만 ‘사실’만을 전달한다. 그들의 이름과 나이, 언제부터 거리를 헤매었는지, 현재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영상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씩 완성되는 하단의 메시지. ‘네덜란드에는 5,000명 이상의 10대 노숙자가 있습니다.’


클릭할 때마다 가슴을 쿵쿵 울리는 듯한 영상과 음울한 사운드가 조금은 공포스럽고도 진지한 몰입을 유도한다. 처음 로딩 시 스피커를 켜라는 안내가 있는데 청각적 공포 효과를 배가시켜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 내 생각이 맞다면 SIRE는 치밀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부모로부터 방치된 어린이, 청소년 성매매, 아동 학대, 가정 폭력, 성추행 등의 문제 제기가 이어진다. 절제되고 상징적인 오브제와 함께 수치에 근거한 사실 고발이 주는 충격과 경각심의 파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생일 카드가 부고장으로 바뀌는 아동 학대 문제의 섬뜩한 함축성과 놀이판을 이용한 성추행 문제의 중의적 상징성은 감탄할 만하다.


사회 고발과 선정성 사이의 균형 문제는 오랜 딜레마이다. 사실 일부 시사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오히려 비행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I Spy With My Little Eye’는 바로 그 균형을 정확히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 지경이냐고 호들갑을 떨지도 않고, 날것 그대로 지나치게 자상하게 사건을 재연해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지만 등한시해왔거나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 부분들에 눈을 뜨라고 침착하고 건조하게 권유한다. 이 힘겹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여행의 끝에서, 나 역시 눈을 뜨겠노라고 약속하는 클릭을 한다. 카운터에 하나의 숫자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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