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6-05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졸리운 강아지 두 마리로 우리에게 복실 복실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삼순이 사진관’.
삼순이와 순이의 뒹굴거리는 모습만 보아도 같이 낮잠 한숨 ‘때리고’싶고, 디지털카메라로 빠방하게 찍어놓은 인형들과 풍경들은 작가의 눈썰미와 감각적인 프레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삼순이 사진관’에 푹 빠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삼순이 사진관의 쥔장이자 찍사 김형모씨는 작년 Asia Digital Art Award에서 ‘모연’이라는 키네틱 폰트로 대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디지털 키네틱 폰트로 자신의 감성언어를 표현하는가 하면, 강아지와 식물, 주변의 너무나 소박하고 꾸밈없는 사물들로 또 다른 컬러의 자신의 세계를 선보이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친구들과 함께 차린 스튜디오150C에서 먹고 자고 마시면서 독창적인 웹 디자인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나이는 서른 하나, 취미는 영화감상, 특기는 그림그리기, 장래희망은 선생님 (-_-;) 이라는 엉뚱하고도 평범한 웹디자이너, 그리고, 삼순이 사진관의 쥔장, 그를 만났다. .
말끔하면서도 푸근한 삼순이 사진관에서 그와 나눈 나른한 잡담~
취재 : 이진실 기자 (whiskybar@yoondesign.co.kr)
☞ 요즘 순이의 근황은?
건강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양호해 졌고 이제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로는 두 마리가 있다고 했는데 아무쪼록 건강한 강아지들이 하루 빨리 태어나서 삼순이 사진관을 통해 또 한번 방문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드리고 싶다.
☞ 삼순이 사진관을 만들게 된 계기는?
직접적인 계기는 디지털카메라(Nikon Coolpix 5000)를 구입하면서부터 다.
거의 같은 시기에 운동하다가 집 잃은 강아지 순이를 만났고 우리회사 팀원이 삼순이를 데려와서 자연스럽게 둘 다 좋은 모델이 되어주었다.
그들은 사랑 밖에 모른다. 먹을 것에 대한 사랑과 주인에 대한 사랑. 설사 그것이 본능이라 할지라도 난 그런 점이 좋다. 그런 순수함을 사진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고 마음이 정화되길 바랬다. 또 하나 ‘기타등등’ 란을 만들어 가끔씩 떠오르는 발상들의 저장창고로도 활용 중이며,구역질 나기 일수인 상업사이트 제작 시 받는 스트레스를 이곳을 통해 풀기도 한다.
☞ 삼순이 사진관을 만들때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거..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는데.. 촬영시 강아지들이 너무 움직거려서 주로 자는 모습을 많이 찍었다. 가끔 잘 자고 있는 강아지들 깨워서 괜히 사진 찍자고 다정한 목소리로 소리 지른적도 있고...-.-;;
사람말 알아들을 일 없는 개에게 너무 구체적인 포즈를 원했던 내 자신이 바보가 아니였을까. -.-?
☞ 여러 사이트들을 만들어 왔는데, 삼순이 사진관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글쎄.. 단지 개와 사진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로써 당연히(?) 만들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공간이다. 온라인상의 전시장이며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는 사이버 카페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내 작품엔 큰 의미부여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의미를 물어올 때 할 말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 삼순이사진관을 보면 다른 디자이너들의 홈피에서 보다 훨씬 포장이나, 가식 없이 자신의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 같다.
포장이나 가식이 없어 보인다는 말은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것이고 요즘 유행하는 트랜드처럼 장식하고 꾸미는 걸 잘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단순함 속에 진리가 있다”,“절재 할수록 아름답다”라는 둥의 말들은 물론 내가 추구하는 경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어설픈 실력을 합리화 시키기에 아주 적절한 표현들이다.
☞ 요즘 디카를 끼고 살지 않는 디자이너가 거의 없는 듯 하다..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특별히 느끼는 매력이라면.
가장 큰 매력은 역시 무한 셔터다. 현상,인화비 걱정도 없고 촬영 시 기동성엔 약간 불만이지만 요즘과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디자이너들에겐 필수품인 것 같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또 다른 세상을 보게 해주는 하나의 마법과 같은 구멍이다.
그냥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은 생각 보다 넓지 않고 카메라는 그 시각의 한계를 뛰어 넘게 만들어 준다. 또한 친절하게도 그 세상을 기록해 주기까지 하니 이 얼마나 유익한 장난감인가.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분석력 향상은 물론이고 디자인 작업 시에 필요한 소스 제작으로도 자주 애용하고 있다. 또한 하찮고 사소한 것들도 비범(?)하게 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 앞으로 어떤 사진들을 더 많이 찍어보고 싶은지..
처음엔 나도 내가 사진을 아주 잘 찍는 줄만 알았으나 그런 착각은 금세 사라졌다.
보면 볼 수록 내 사진엔 아직 깊이가 없음을 깨달았고 그저 말 그대로 사진일 뿐 작품이라 불리기에는 아직 부끄럽고 미숙한 점들이 많다.
찍으면 찍을수록 느낌과 감성이 묻어 나오는 작품성 있는 사진들을 찍고 싶다.
그리고 생활,행동반경이 넓지 않다 보니 소재의 다양성에서도 한계에 부닥쳤는데 촬영을 위한 여행도 떠나고 싶고 인물사진, 특히 Nude는 말 할 것도 없이 꼭 찍어보고 싶은 장르다.
☞ 스튜디오 150C에서의 하루의 일과는?
일정한 출퇴근,근무시간 없이 150c에서 마음대로 24시간을 보낸다.
물론 경제적,육체적으로 이런 삶에서 오는 부작용들도 있지만 이런 생활이 편하고 즐거운 건 사실이다. 상업적인 프로젝트가 있으면 그때마다 약간은 고달픈 밤샘 작업을 하고
일이 없을 땐 사무실에서 여느 백수들과 같은 생활을 한다. 써핑,게임,TV시청,강아지랑 놀아주기..등등
물론 사진 촬영도 하고 '내 맘대로 작업'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지새운 적도 많다.
적어도 아직은 '돈과 안정'보다는 '자유와 아트'를 선택했고 후회도 없다.
우리 150c멤버들은 '주4일 근무제' 관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빈둥거린다.ㅋㅋ
☞ 남의 눈치 절대 안보는 성격일 거 같다. 나름대로 디자인적 주관이 뚜렷할거 같은데..
서른이 넘은 나이 인데 어찌 절대 남의 눈치를 안보며 살겠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양아치 아닌가? ^^ 되도록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대체로 남의 시선 같은 건 신경 안 쓰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환경자체가 그렇기도 한데, 남 눈치 보며 살지 말자고 만든 철없는 디자이너들의 공간이 150c이기 때문..
구체적인 디자인적 주관을 주장할 단계는 아직 아니다.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열정과 실력은 내 나이에 반비례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토끼 같은 자식보면 정신 차릴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디자이너로써 나는 아직 어리고 한참 멀었다.
☞ 아시아 디지털 아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은 키네틱 폰트 '모연'을 보았다.
디지털로 형상화된 한글의 리듬감이 인상적이다. 폰트에 대한 관심이나 ‘모연’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싶다.
그래픽디자이너가 폰트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폰트와 타이포그래픽 특히 그것들을 가지고 만드는 디자인 작업은 즐겁고 재미있다. 그래픽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매력적인 소재들이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어려운 영역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직은 어설픈 작업들 뿐이다.
디지털아트의 경우, 사실 여타 웹 아트 혹은 웹 디자인과의 경계나 기준은 모호하다고 본다.
그게 그거란 이야기…
당연히 나는 계속해서 시각적 실험을 계속해 나갈 것이고 그것이 무엇으로 불려지고 보여지던 간에 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디자이너나 작가는 자의던 타의던 어느 일정 수준이나 경력에 이르게 되면 슬슬 장난끼가 발동하는데, 자기들에게 나오는 어떤 것이던 그것이 모두 마치 '예술'인 냥 사람들이 착각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 착각을 즐기기 까지 하면서… (나만 그런가 -.-?)
아무튼 그런 점에서 작품’모연’은 날 버릇 없는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얼마 전부터 '화장실이야기'를 구상 중인데 내 홈에 몇 점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작업 역시 그런 짓(?)들의 연장선상이며 나의 엉뚱함이 ‘아트’로 보이던 ‘사기’로 보이던 그건 중요치 않다.
☞ '모연'하면 담배연기비슷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제대로 떠올리셨다. 원래 이 작품의 제목은 '흡연' 또는 '애연' 두 가지 중에 하나로 정하기로 했었다. 물론 농담이다. ㅋㅋ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 나와 내 연인의 이름 끝자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 다소 유치하고 누구나 한번쯤 했을 법한 뻔한 작명법이다.
'모'자와 '연'자를 합쳐본 후 혹시나 해서 사전을 뒤져 보니 '저녁무렵의 연기'라는
모연(暮煙:smoke at dusk) 이란 단어가 있었다. 그전엔 그런 단어가 있는지 조차 몰랐는데 정말 우연치 않게 'Kinetic Font'의 분위기와 어울려 너무나 신기했고 반가웠다.
모연을 이루는 최소 기호인 아홉 개의 사각형도 사실은 여자친구가 보내준 포토샵 블러쉬 필터에서 발견했으니 이런 저런 이유로 그녀가 아니였으면 아마도 이 작품은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게 바로 작품탄생의 운명 아닐까? ^^ V
☞ 마지막으로 웹디자인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행복이 있다면...
사실 보람이나 행복을 자주 느끼긴 힘들다. 솔직히 하루에도 몇 번이고 뭐 다른 일(직업)은 없을까를 생각한다. 창작의 고통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하는 아웃풋이 나오지 않을 때의 느낌이란,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느끼듯이 나에게도 역시 힘든 순간들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남에게 들키지 않고 잘 훔치도록 노력하는 수 밖에...
그러나 분명 웹은 정말이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고맙고 매력적인 매체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웹이 없었더라면? 인터넷이 없는 시대의 디자이너로써 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가장 큰 보람은 즐기면서(play) 작업 한 것이 돈으로도 연결 될 때.^^
제작 시 들어간 나의 감성과 느낌이 타인에게도 제대로 전달되어 서로가 좋은 느낌으로
공유 될 때. 무엇보다 하고 싶었던 일을 직업으로 선택했으니 난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기사를 마감할 무렵, 인터뷰 때만해도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순이가 드디어 귀여운 사내아이 두 마리를 순산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