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디지털영상 | 리뷰

‘똘’끼로 만든 독립 장편애니메이션

2013-07-08


영화의 역사에 나올법한 거장들도 첫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만큼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장편 영화는 단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비롯해 수많은 걸작을 남긴 스탠리 큐브릭은 사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과 체스대회 상금을 합쳐 첫 장편을 만들었다. 첫 단편을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한 달간 무단출입하면서 이 회사의 한 중역에게 작품을 보여준 것이 장편의 기회를 잡는 시발점이 된다. 만약 그들에게 첫 장편 영화가 없었다면 그들은 영화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영화의 역사에서 그들의 이름은 사라졌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영화를 보고 영화의 꿈을 키운 수많은 감독들 역시 등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글│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http://www.anihall.com)
에디터│정은주(ejjung@jungle.co.kr)

국내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일반 장편 영화에 비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투자가 활성화되어있지 않고, 극소수의 지원제도마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특히 독립적이고 작가적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감독들에게는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를 아주 잘 만나거나 운 좋게 좋은 제작자에게 선택되지 않는 이상 꿈꾸기 힘든 장편 애니메이션이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그 꿈을 향해 달리고 있는 감독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자극받을 때가 많다. 장편 애니메이션 ‘똘’을 만들고 있는 이은영 감독도 그들 중 하나이다.

‘똘’은 가족의 역사 속에 잠재되고 웅크려 있는 상처와 어린 시절 겪은 성폭행사건으로 인해 한 여성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상처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탄생한 괴물 ‘뿔개’ 와의 만남을 통해 여주인공 로미가 여러 난관을 해치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장해 간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색채와 도발적인 이미지는 영화전반에 흐르는 락 음악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작품이다.

2012년에 한국 콘텐츠진흥원에서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은 '똘은' 장편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을 갖고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이은영 감독은 전세금을 빼가며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했다. 그렇게 일년 반의 제작기간을 거쳐 60분 분량의 ‘작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처음 만드는 장편 애니메이션인 만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감독이 생각하는 완성도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해서 수정작업을 위한 추가 제작비를 모금하기 위해 노트를 제작해 판매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해낸다 해도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대중들과 만나는 일이다. 홍보 마케팅 비용으로 적어도 10억에서 20억을 쓰지 않으면 흥행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과 저예산 영화는 예술영화전용관으로 직행하는 상황에서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는 장편애니메이션 개봉지원을 노려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 중의 하나이지만, 이마저도 상업 장편 애니메이션과 경쟁해야 하기에 쉽지 않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과정이다. 감독은 작품을 통해서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하나의 성장 과정이며 영화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것은 다시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은영 감독의 ‘똘’은 아직도 완성을 향해 가야할 길이 멀다. 지금까지는 열정으로만 작품을 보고 만들어왔다면 현재는 제 3자의 입장으로 작품을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감독은 말한다.

한편, 이은영 감독은 ‘붓끼리’라고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이 접목된 이 프로젝트는 풀뿌리를 이용해 글과 그림을 그리는 선생님과 아이들을 비롯해, 전통미술현장에서 뛰고 있는 강사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현재 감독은 추가 제작비를 모으기 위해 독립 문화 창작자들을 위한 온라인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제작비를 모금하고 있다. 사이트에 들어가 제작비를 지원해주면 노트나 엽서, 티셔츠 등을 선물로 받을 수도 있다.

텀블벅 사이트- 붓끼리
https://tumblbug.com/greenroot

현재 애니메이션 ‘똘’은 2차 본 프로덕션 작업을 앞두고 신중하게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화를 단순히 상업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자라난다면 영화를 만들고 누리는 방식은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많아진다면, 우리 애니메이션의 토양은 점점 견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