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2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같이 해 오고 있지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서로 완전히 다른 출발점에서 각각의 장르가 탄생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가 실제로 있는 그대로의 것을 찍는 영상 촬영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애니메이션은 그림 혹은 회화를 움직이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으로 그림 한 장 한 장을 그려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 리얼리즘인데 반해 애니메이션은 그림, 회화가 가지는 상상력, 표현력, 추상성 등 그 회화의 성격에 따라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글 | 박재옥 애니메이션 감독(www.oktoons.com)
에디터 | 길영화(yhkil@jungle.co.kr)
얼마 전 인디애니페스트를 계기로 방한한 미즈이 미라이 감독은 독특한 작품세계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그의 작품‘TATAMP’는 마치 원시 생물 같은 자연의 형상을 자기만의 드로잉과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내러티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생명형상적 추상 이미지와 음악과 절묘하게 편집된 미즈이 감독의 스타일은 애니메이션의 표현적 한계에는 끝이 없음을 느끼게 해 준다.
대학 시절 미즈이 감독은 집 근처 롯데리아에서 종종 세포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애니메이션의 하게 된 계기도 이 세포그림을 움직이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을 하게 되기까지에는 담당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매주 교수님이 스시를 사주면서 무조건적인 칭찬을 해준 것이 자신감을 가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결국 꾸준히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수한 미즈이 감독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에 제작한 ‘MODERN No.2’는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기도 하였다.
미즈이 감독은 본인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바실리 칸딘스키를 언급하였다. 바실리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 재직 이후에 무척추동물인 바다생물이나 미세 생물체의 원형적 형태를 그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미즈이 감독의 초기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러한 소재가 주류를 이룬다. 회화의 역사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 칸딘스키의 스타일은 미즈이 감독을 통해서 음악과 함께 움직이는 생명체로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때론 음악에 맞게 움직임이 그려지기도 하고 때론 움직임에 맞게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다고 한다. ‘TATAMP’에서는 각각의 생명체들이 고유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이 여러 개의 레이어를 통해서 편집되어 절묘한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최근에 제작된 ‘MODERN No.2’는 좀 더 다른 스타일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것은 원시 생명체의 움직임이 아닌 기하학적인 도형과 기계적인 움직임으로의 변화이다. 자연과 문명을 상징하는 두 가지 대비되는 스타일의 작업은 음악과 패턴적인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훌륭한 내러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영화 산업 종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일 뿐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만날 수 있는 순수한 가치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예술의 다양성과 작가들의 창작 영역은 좀 더 큰 폭으로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즈이 미라이 감독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사이트
http://vimeo.com/user5743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