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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상 | 리뷰

삶의 활력을 주는 100% 애니메이터 류기현

2005-08-20

원화나 캐릭터 등 직접 그리신 그림 자료들은 원본을 어떻게 보관하시나요.
디자인의 경우 원본 그림들은 아무데나 쳐박아두지만, 맘에 드는 Key-Ani 작업은 카피본을 한 부 만들어서 또 쳐박아 두죠. 그리곤 상당부분 유실합니다. 스캔본은 가끔씩 필요해서 CD에 백업해두고요. 회사에서는 나름대로 데이터들을 잘 간수해주는 것 같습니다.

청강대에서 최근에 하신 워크샵은 어떤 것이었나요.

‘JM MEDIA’ 와 ‘청강대’가 함께 2004년부터 시작한 애니메이션학과 ‘워크샵 프로그램’ 이예요. 작년에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제가 3일정도 수업을 했었습니다.
‘Retas’ 프로그램을 만든 Celsys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인 Stylos를 이용해서 진행했어요. (개봉예정인 작품 ‘아치와 씨팍’에서의 작화프로그램과 같음) 기자재가 부족한 탓에 2인 1조로 3일간 원화부터 촬영까지 동영상을 하나씩을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최대한 그림을 그리는 부담은 줄이면서 움직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학생들이 충분히 만끽하는 것을 바라고 진행했습니다. 결과물들의 퀄리티보다 라인테스트를 보면서 히죽히죽 웃던 학생들 표정이 인상적이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작품이나 작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앞에서 말했던 ‘추억은 방울방울’ 같은 작품하고, ‘조상님 만만세’ 에서 ‘우쯔노미아’의 동화스타일에 반했었어요. ‘이웃의 야마다군’ 에서도, 그런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주 새롭고 좋았어요.

‘우쯔노미아’라는 이름도 그렇고, 잘 알려지지 않은 ‘조상님만만세’ 라는 작품에서, 어떤 면이 마음을 사로잡으셨는지 조금만 더 자세히 알려주세요

애니메이션을 시작 할 즈음에는 ‘지브리’의 ‘다카하다 이사오’에게서 크게 감흥을 받았죠. 처음 '추억은 방울방울' 이라는 요상한 제목의 VHS테잎을 하나 건네받아 보고는 엄청 충격을 받았었구요. 말할 수 없이 그 영화가 너무 좋았어요. 남들처럼 ‘NEW TYPE’ 잡지 세대였어요. 건담이나 마크로스 그리고 미야자끼의 작품들도 모두 즐겨보는.. 머리가 좀 커버린 후에 다시 만화를 돌아보게 만든 건 다카하다 이사오의 작품이었고요.
‘우쯔노미야 사토루’는 원화 일을 시작하면서 몇몇 작품과 선배들의 귀동냥으로 알게된 일본의 애니메이터입니다. 작업자나 작화 매니아가 아닌 이상엔 일반인들이 이름을 듣기 힘들죠. 저도 그다지 정보가 많다거나 하지는 않아요. 단지 액팅을 막 시작하던 때는 그 사람 작업물들 모두가 굉장히 독특하고 멋져보였죠. 획일화 되어있는 미소녀 망가니 하는 것들은 지금도 그리기가 꺼려져요. 그런데 ‘사토루’는 모든 제멋대로였어요. 제멋대로 그렸는데 그의 캐릭터들은 아주 신기하게도 잘 움직였어요. 정말 당시엔 그사람 필름을 보고 있으면 너무 우습고 재미있었어요.
저는 ‘사토루’ 신상정보나 프로필을 줄줄 외는 매니아도 아니고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만, 작업물들은 아직도 여전히 제게 좀 더 원초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서, 또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마술같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상기시켜주는 어떤 코드 같은 의미예요.

작업환경이나 분위기는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이 좀 달라졌나요?
관련학과가 눈에 띄게 많아졌죠. 300여 개가 넘는다는 학원, 학교 등 많은 곳에서 학생을 받아주고 교수나 강사들을 채용하여 일자리가 확보되어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교수로 일을 하려면 정작 자신들의 작업보다 학생 취업에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느라 바쁘게 되는 것 같아요. 교수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기 힘들죠.
또 관련학과 졸업하고 바로 원화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요즘은 실력만 받쳐준다면 예전처럼 5년을 꽉 채워서 동화경력을 쌓지 않아도 원화를 바로 할 수도 있는 점이 예전하고 많이 다르죠.

함께 애니메이션을 시작헸던 동료들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말씀해주세요.

변함없이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는 동료들이 많이 있어요.
전혀 다른 직업으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도 짬짬이 개인작업을 계속하는 경우도 있고, 또 계속 고전을 면하지 못하다가 3D를 배워 갑자기 게임쪽으로 진출해 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아주 잘된 경우도 있지요. 그렇게 여러 가지가 있어요.
경험해볼수록 일이란 게 항상 변하기 때문에 서로 잘 되기를 바라며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서로 안쓰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5년 혹은 10년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30대 중반을 넘어서기 전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꼭.

인터뷰 그 후
에필로그


인터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경험담들을 두런두런 질문해서 들을 수 있고, 따끈따끈한 그림들을 직접 보고(만지고),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쁘게 일하시는 분들의 귀한 시간을 얻어내서 함께 웃을 수 있기까지 하는 그 멋진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애니메이터 류기현님의 인터뷰는 더욱 의미가 새로왔지요.
작업실에 파묻혀서 순수하게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게다가 잠도 부족한 와중에 시간을 내 주셨는데 생생하게 전해주신 좋은 내용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좀 더 질문다운 질문을 제대로 하고, 글로 나타낼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습니다.

애니메이터 류기현과의 인터뷰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셨나요?
1997년, 아주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어요.
화실을 다니다 쉬고 있었는데 화실친구한테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테잎을 빌려서 보게 된 거예요. ‘어. 이거 정말 할만한 일인 것 같다..’ 하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이 진지해지기 시작했어요. 애니메이션 일을 하던 친구들은 이미 시작한 지 꽤 되어서, 제 경우엔 비교적 쉽게 뛰어들 수 있었죠.
친구들이 일하는 모습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시작하면서부터 ‘몇 년 후’, 어떤 일’이라는 일종의 청사진 같은.. 그런 확신이 있었어요.

방황하신다거나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겠네요.
그렇죠. 동화작업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가지요. 제 경우에는 이것저것 소문에 신경 쓰면서 불안해 하거나 의심하면서 방황하느라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그래서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일에 좀 더 몰두할 수 있었죠. 그러면서 2년이 흐르고, TV판 디즈니 애니메이션 “TOY STORY’의 버즈 편의 동화를 맡아서 그렸어요. 그 다음엔 ‘원더풀데이즈’ 원화를 그렸어요. 총 제작기간이 3년이지만, 실 제작기간은 7,8개월간이었어요. 시나리오 수정이 계속 있었으니까 막바지 스케쥴이 짧아졌죠. 작업이 힘들었지만 그만큼 애착이 남고요.

+ 동영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 Apple QuickTime 프로그램다운로드

‘그림을 잘 그린다’ 라던지 하는 입에 발린 소리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작화 한 캐릭터들을 보고 깔깔대고 웃어주는 동료가 꽤나 힘이 되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M.GAME社 MMORPG 무협게임 ‘영웅’ 홍보동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요.

M-Game社의 영웅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 아주 개성이 강하던데요.
‘영웅’은 네명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MMORPG 게임입니다.
(*MMORPG : 여러명의 사용자가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는 롤플레잉 게임. 예를들면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등)
중국에 게임을 서비스하기 전에 필요한 홍보용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구요. M-Game社측이 원하는 건, 3d로 보여주기 어려운 내러티브 전달을 위해 2d로 작화하는 거죠.

JM MEDIA에서 2d 파트를 전담하게 되었고, 총4개 에피소드중에서 첫번째로 ‘대소려’라는 게임 여주인공 에피소드를 작업한 겁니다. M-Game社측 시나리오에 제가 3분 분량 콘티와 애니메이션 디렉터를 맡아서, 5-6주간의 작업기간동안 처음 1주동안은 스토리보드와 캐릭터작업, 그 다음 2주는 회의와 컨폼. 그리고 나머지 기간동안에 작업을 마무리 해야 하는 상황이죠. 워낙 타이트한 스케쥴이라서 사실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자숙하고 있어요.

처음 애니메이션(동화)을 시작하시게 된 시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맨 처음 책상에 앉았을 때, 연필 잡았을 때 느껴졌던 그 느낌이나 에피소드, 실수 같은 경험들을요.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겁먹지 않고 시작했던 듯 해요. 대강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겠다 싶은,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고 있었어요.
워낙 힘쓰는 건 싫어하고, 움직이는 것도 싫어해서 오래도록 책상에 앉아있는 것도 남들보단 수월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워낙 잠이 많아서 잠을 참으면서 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오면 좀 난감했죠. 지금도 그런 점은 여전히 힘들어요. 하하

동화작업이 익숙해질 때 즈음. 한번은 원화를 제멋대로 고쳐서 작업을 한적이 있었어요.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자애가 깜짝 놀라서 제자리에서 ‘포올~짝’ 점프를 하는 컷 이었는데, 스커트가 너무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식으론 사실적이지 않아서 아이들이 실망할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능한 한 팬티가 많이 보이도록 스커트를 나풀거리게 원화를 수정해서 작화를 했죠. 팬티는 설정에 없는 내용이어서 물방울 무늬를 넣고 색 지정도 나름대로 해봤는데, 동화 작감님이 나중에야 컷을 확인하고 알아버렸죠. 크게 혼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재미있으셨는지. 흔쾌히 OK사인이 난 거예요. 그래서 다음 파트로 넘겨주셨고요. 그런데 며칠 뒤, 팬티가 노골적으로 보이는 건, 방송법상 불가하다고 수정을 요구하는 바람에 컷이 되돌아 와 버렸어요. ‘고리타분한 방송법은 관성의 법칙을 능가하는구나~ ‘라고 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도 종종 내 멋대로 동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이런 식으로 장난질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제대로 캐릭터를 움직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됬고, 원화Clean-up 테스트를 거쳐서 원화부로 옮기게 됐어요.

또, 한번은 동료들이랑 극장에 ‘TOY STORY’ 를 보러 갔었는데, 그 엄청나게 화려한 화면과 기술에 입이 벌어져서 영화가 끝나고 애니메이션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었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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