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8-28
2002년도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학생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일곱 살’(Kid)은 유년의 성장시기에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던 때의 일상으로 돌아가 아이의 입장에서 그려본 우리모두의 일곱살 자화상이기도 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박한 한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은 국제애니메이션필름협회(ASIFA)가 공인하는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하나로 2년마다 한번씩 열리며 올해는 15회로 30주년을 맞이하여 학생부문 본선에 오른 전체 55편에서 한국작품 7작품 중 하나로 본선에 진출하여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작품의 스토리작가이자 감독인 김상남은 1973년 제주 출생으로 일반학부를 졸업한 후 뒤늦게 한겨레 출판만화과정과 애니메이션 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2002년 한국 영화 아카데미 졸업 등 비정규과정을 중심으로 입문과정을 밟은 젊은 감독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졸업작품이기도 한 이 작품 외에 주요 작품활동으로는 단편애니메이션 ‘달빛 프로젝트’ 연출, ‘따라하지마’ 공동연출, ‘제주도 옛이야기’ 동화 일러스트 등이 있다.
김상남 감독은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삶의 경험 속에 녹아든 이야기를 소재로 하며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일곱 살’과 ‘달빛 프로젝트’모두 그러한 감독의 작품관에 기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곱 살’은 특히 감독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든 작품으로 작중 인물인 여자아이 유주의 일곱 살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원제가 ‘일곱 살 상남이’ 였던 것으로 직접 드러나기도 하지만 ‘일곱 살’의 시나리오 프롤로그에 “나의 어릴 적 기억을 작업으로 구상한 것이다.”라고 시작하면서 “뭔가 모를 불만과 그것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미운 일곱 살의 정서를 다루고자 한다. 과거의 기억을 객관화시켜 정리하면서,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희망한다.” 라고 작품의 제작의도를 밝히고 있다.
→ 연출의도
어린 시절 유난히 말을 안 듣고 말썽을 부리는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보통 미운 일곱 살이라는 이야길 하나보다. 혼자 남은 유주의 마음은 어떨지... 표현해 보고 싶었다.
→ 시놉시스
동생과 싸워 엄마에게 혼이 난 유주는 집 밖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엄마가 불러도 나오지 않고 고집을 피우던 유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위는 점점 어두워지고....
→ 등장인물
유주 : 7살, 여자아이. 반항적이고, 욕심이 많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원한다.
동생 : 5살, 남자아이 밝고 귀엽다. (낙서 속의 이미지로 보여짐)
엄마 : 사십대 초반, 전형적인 억센 시골아줌마. (낙서 속 이미지와 그림자/대사로만 등장)
→ 배경설정
지방 소도시(제주도)의 바닷가 근처의 마을 60~70년대 지어진 집을 개조한 단층 슬라브 주택, 마당에 나무가 심어져 있고 한쪽에 수돗가와 빨래 줄이 보이고 마당을 가로질러 화장실이 있다.
→ 작업과정노트
1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물론 매일 그 작업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다. 중간 중간 .. 과연 내가 끝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컸다. 한 장 한 장 아이의 표정을 그려가며... 아이는 더 이상 내 손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듯 느껴졌다.
35mm film으로 제작된 ‘일곱 살’은 수 작업으로써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 작품이라고 느껴졌다. 이는 전체적인 미술설정과 제작기법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평이한 제작방식 보다는 감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스타일에 맞추고자 고민한 기법적 선택이 엿보였다는 것이다. 즉, 회화적 방식의 드로잉 표현기법으로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정서적 표현이 가능하였던 것과 동화책을 들추어낸 듯 한 연출적 고려는 작품의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삽화체적 스타일을 캐릭터 동화와 배경에 적용하기 위해서 드로잉 온 셀 기법을 응용하여 반투명 셀에 동화를 스케치 한 후 밝은 바탕색을 채색하고 뒤집어서 그 위에 색연필을 이용한 드로잉 작업을 통해 컬러와 텍스츄어를 주었다. 물론 배경은 종이에 채색하거나 드로잉을 하여 하위 레벨에 놓고 촬영함으로써 별도의 합성과정 없이 직접 필름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익히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캐나다에서 활동중인 거장 ‘프레드릭 백’이 이미 사용하였던 기법으로 반투명 셀을 이용함으로써 종이와 같은 회화적 드로잉 필치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레벨을 사용하여 깊이감 있고 부드러운 톤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어 단편제작에 자주 사용되어 보편화 된 기법이지만 상대적으로 필름작업이 적은 국내에서는 그리 많이 활용하고 있지는 못하다.
‘일곱 살’의 제작프로세스 순서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① 작품기획 → ② 스토리보드 완성 → ③ 캐릭터 이미지 완성 →④ Animatic Tape 완성 → ⑤ Key Frame → ⑥ 동화 → ⑦ 라인테스트1,2차 → ⑧ 촬영1,2차 ⑨ RUSH/Tele-Cine →⑩ 1차 편집 → ⑪ 녹음(Foley, Music, Effect는 제작단계에서부터 준비) →⑫ Sound Film Develop → ⑬ Nega 편집 →⑭ 색보정 → ⑮ 프린트 및 베타버전 완성
작품의 영상연출적 측면에서 돋보이는 것은 전체 컷(Cut)의 숫자가 매우 적으며 느린 화면연출로 내면적 정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연출하고 있는데 전체 컷수가 15컷 이상을 넘지 않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화장실 장면의 원쇼트로 구성된 롱테이크에 의한 미장센(mise-en-scene)과 시간리듬은 화려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내용에 걸맞는 진지하고 담백한 화면을 통해 정서적 리듬감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