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04
지난 9월 12일, 로스앤젤레스 쉬라인 오디토리엄 (Shrine Auditorium)에서 개최된 제 56회 에미상 수상식에서 이미 “CG스토리” 섹션을 통해 정글에 소개된 바 있는 (2004/04/06) HBO 드라마 “카니발 (Carnivale)”이 메인타이틀 분야 최고상을 수상했다.
수상 사실 자체가 특기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이 타이틀 비주얼이펙츠를 담당한 A52는 기발한 감각과 포토리얼 (photo-real, 사진처럼 사실적인) 비주얼이펙츠 테크닉으로 오래 전부터 각종 매체 및 방송 관련 시상 단체로부터 최고라는 평을 받아온 터기 때문이다.
살펴보면 촬영된 영상 이미지와 CGI를 합성하는 테크닉인데 그 결과물이 절묘하고 기발하고 참신하며 아름답기까지 한데다 흠 하나를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 광고 제작 과정에 어떤 비밀이라도 있는 지 늘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그래서 이번 컬럼에서는 A52의 이 포토리얼 비주얼이펙츠 테크닉을 살필 수 있는 광고를 하나 소개해 볼까 한다. 나이키를 위한 90초 짜리 광고로 “The Magnet (자석이라는 뜻이지만 의역하면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리더를 가리킨다.)”이라 명명되어 있다.
광고대행사 위덴+케네디 (Wieden+Kennedy, www.wk.com)의 의뢰로 프로덕션 제작사 RSA USA (www.rsafilms.com)의 제이크 스콧 (Jake Scott) 감독, A52 (www.a52.com)의 프로듀서 스콧 보야한 (Scott Boyajan)과 VFX 수퍼바이저 겸 인페르노 아티스트인 패트릭 머피 (Patrick Murphy) 등이 투입돼 이루어낸 작품이다. (그림 1)
이 광고는 지난 7월로 91회 째 개최된 투어드프랑스 (Le Tour de France) 자전거 경주 대회에서 암을 이겨내고 6차례 연속 우승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랜스 암스트롱 (Lance Armstrong)이 미국 산천 곳곳을 지나며 훈련하는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밤이고 낮이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누구보다 빠르게 완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시시각각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하는 외로운 훈련의 길을 가는 암스트롱의 모습이 드넓은 자연 이미지를 배경으로 잔잔한 기타소리, 피아노 선율, 그리고 그 위로 들리는 허밍과 함께 서정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줄거리는 훈련하는 그의 곁에는 늘 뭔가가 모여든다는 것. 바다에서는 돌고래, 하늘에서는 기러기, 광활한 초원에서는 버팔로, 어두운 시골길에서는 반딧불, 깜깜한 터널에서는 박쥐가 그를 따르는데 경주라도 벌이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의 훈련 길을 격려하는 차원인지 알 길이 없다. (그림 2와 3)
어쩌면 외롭고 지루하고 어려운 훈련 길을 즐거운 것으로 만드려는 암스트롱의 상상의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암스트롱은 이들을 벗 삼아 쉬지 않고 달리며 기차를 따라 잡기도 하고, 오토바이족들을 만나 함께 경주하기도 한다.
또 한 병원을 지나면서는 입원해 투병 중인 아이들의 환호 속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며 격려를 주고 받고, 도심을 지나면서는 하나 둘씩 그에게 모여드는 아마추어 사이클리스트들과 함께 도심의 복잡한 거리를 질주하기도 한다.
마지막이자 가장 매력적인 추종자는 암스트롱을 따라 잡으려는 듯 아동용 자전거 패달을 열심히 밟는 당찬 꼬마 녀석. 바퀴 둘레를 보건대 따라잡기란 불가능한 것 같은데 아슬 아슬 따라 잡을 듯 악착같이 따라 붙는다.
이어지는 샷은 이 당찬 꼬마를 뒤돌아보는 암스트롱의 모습. 짐작하건대 암스트롱은 이 당찬 꼬마에게 적당한 경쟁상대가 되도록 자신의 속도를 조절해 주는 배려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려깊은 리더가 사실은 디지털 작업의 결과다. 너무나 깜쪽같아서 배반감마저 느껴지고 가짜 암스트롱에 대해 경외심을 품은 것 같아 뭔지 속은 것 같은데… (그림 4)
암스트롱과 관련된 비밀을 미리 밝히자면, 미국 캘리포니아 산천 곳곳을 지나며 훈련하는 암스트롱은 이 광고에 존재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암스트롱과 비슷한 체격의 대역을 촬영한 플레이트에 스튜디오에서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촬영된 암스트롱 장면에서 얼굴과 어깨 부분을 떼내어 합성한 가공의 인물이다.
오토바이족들과 함께 달리는 클로즈업 장면의 경우도 각각 블루스크린을 배경으로 촬영된 암스트롱 및 오토바이족 촬영 샷을 배경 플레이트에 합성해 만들어낸 결과다.
내친 김에 다 밝히자면, 도입부의 파도는 물론 중간부의 빗속 장면역시 사이언스-디-비전 (Science-D-Visions)의 3D이퀄라이저(equalizer)를 사용해 라이브액션 푸티지를 트랙한 다음 CG 물을 합성해 강화하고 조명을 더함으로써 이루어낸 결과다.
돌고래 및 등장하는 동물 모두도 버팔로를 제외하고는 사이드 이펙츠 소프트웨어 (Side Effects Software)의 후디니 및 딥 페인트 3D (Deep Paint 3D)를 사용해 만든 CGI다. (그림 5와 6)
또 버팔로 장면의 경우도 버팔로를 촬영한 라이브액션 플레이트를 다중 레이어화해 합성한 결과이며, 하늘역시 색상 보정 및 강화를 비롯한 디지털 채색이 이루어낸 효과이고, 전 장면이 텔레시네 DI (Digital Intermediate) 처리를 받아 색 보정 및 강화가 더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한마디로 이 광고의 서정미는 모두 디지털 작업의 결과라는 이야기다. 비주얼이펙츠 수퍼바이저, 패트릭머피는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랜스 암스트롱을 사람이건, 동물이건, 곤충이건 그 어떤 것이고 “강하게 끌어당기는 자력을 가진 인물로 표현한다”였다.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촬영 스튜디오에서 암스트롱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캡처하는 것으로 시작해 스콧 감독이 암스트롱 대역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및 북부 캘리포니아 외진 곳을 돌며 촬영에 들어갔고 그를 토대로 비주얼 이펙츠 및 디지털 컬러링과 같은 후반 작업이 이루어졌다.
후반 작업만 총 4주 걸렸으며 초당 30프레임으로 TV용 및 극장용으로 제작되었다. 90초, 60초, 30초 짜리 버전이 있는데 TV용은 지난 5월 NBA 플레이오프 때 처음 소개되었으며 극장용은 영화
<스파이더맨 2>
와 함께 소개되었다.
스파이더맨>
지금까지 수많은 작업을 해왔지만 완성도 면에서 이 작품은 A52 작품 톱텐에 들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각종 3D 및 2D 엘레먼트들이 많이 들어간 이유로 CGI 제작 뿐만이 아니라 전 부서가 동원되어야 했던 작품이다.
기술적으로도 장면들을 트래킹해 각종 CG 동물 및 곤충을 모델링하고 텍스처를 더한 다음 흠없이 어울리도록 조명 및 색 보정 과정을 거쳐 애니메이트 하는 복잡한 과정이 포함돼 있었지만 결과는 좋았다.
이 광고가 처음 등장했던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각종 매체로부터 광고 제작 테크닉에 대한 질문이 쇄도하고 있으며 몇 매체로부터는 최고의 광고로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암스트롱을 따라가는 기러기떼들 장면이다. 기러기는 물론 기러기 그림자도 모두CGI인데 장면들을 트래킹한 후 3D 기러기를 모델링해 조명 및 텍스처를 입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애니메이트 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들었다. 여기에는 CGI들을 촬영 플레이트에 흠없이 합성하는 과정도 포함돼 있다. (그림 7)
2D 부서로부터 콤포지션에 대한 자문을 얻은 후 그에 맞추어 기러기들을 배치하고 조명 및 색상을 조정해 촬영 플레이트와 조화를 이루도록 세밀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는 그런 과정이었는데 인공의 느낌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은 알다시피 늘 어렵다.
박쥐와 반딧물과는 달리 밤이 아니라 낮을 배경으로 표현해야 했기에 더 조심스러웠고 땅과 하늘의 고도차 및 조명의 세세한 변화 등등도 고려해야 했던 샷이었다.
라이팅과 카메라 앵글 및 렌즈를 촬영 플레이트와 제대로 맞춰 합성하는 일이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특히 암스트롱의 얼굴과 어깨 부분을 대역에 끼워 넣는 작업이 많았기에 특히 그랬다.
제일 시간이 많이 든 과정이었으며 감독 및 촬영감독과의 긴밀한 협동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스콧 감독을 비롯해 아트디렉터 제임스 셀만 (James Selman)은 매일 진행상황을 살피며 원하는 바를 전하는 한편 기술진의 의견을 귀담아 듣는 노력을 기울여 주었다.
모든 프로젝트의 성공 비결은 테크닉이라기보다는 제작진과 기술진의 대화와 긴밀한 협조다. 기술은 그 다음이다.
요즘 비주얼이펙츠는 모든 매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어 어디까지가 눈속임이고 아닌 지에 대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좀 무의미하다. 또 그 기술도 엄청나게 발전되어 눈속임인지 아닌 지에 대해 애써 밝혀주지 않는 한 구분하는 것 자체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A52의 포토리얼 효과는 그 목표하는 바가 “사진처럼 사실적”이기에 더욱 그렇다. 처음 이 효과에 접했던 것은 아디다스 광고를 통해서다. 아디다스 운동화 두짝이 마치 사람이 달리는 듯 도심 이곳 저곳을 두둥실 떠서 달리는데 운동화를 움직이는 것은 알고보니 달팽이 두마리라는 줄거리다.
운동화만 두둥실 떠다니는 일루전이야 아무리 절묘한들 모종의 CG 테크닉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만 운동화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달팽이를 보면서 미끈 미끈한 것이 꼭 진짜 달팽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마저 CG라고 해 감탄을 했던 적이 있다.
헌데 이번에는 주인공 얼굴을 바꿔버리고 있다. 테크닉으로만 말하자면야 흔한 일이다 싶지만 그 테크닉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부분에, 그것도 클로즈업으로 감행하다니 과감하고 그 과감함은 테크닉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감탄이 나온다.
실제로 이 광고에서 “비주얼이펙츠가 들어간 부분을 짐작해 보라” 여러 사람에게 물었었는데 암스트롱이 가짜일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 완벽하게 해냈다는 사실의 반증일 거다.
헌데 좀 뜻밖인 것은 어떻게 그런 교묘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 그렇게 깜쪽같이 속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패트릭 머피의 답이다. 속임수 배경에 있는 테크닉을 알려주기를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지만 자세한 테크닉은 알려줄 수 없고 그보다 중요한 성공 비결은 “분명한 컨셉”과 “팀워크”라는 거의 동문서답에 가까운 대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분명한 컨셉과 팀워크가 성공 비결이라...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