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체보기

분야별
유형별
매체별
매체전체
무신사
월간사진
월간 POPSIGN
bob

디지털영상 | 리뷰

추억의 괴물 ‘헐크’,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부활하다!

2003-07-10

헐크(Hulk)는 1962년, 마블코믹스(Marvel Comics)의 스탠 리(Stan Lee)와 잭 커비(Jack Kirby)에 의해 탄생된 만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 같은 캐릭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비극적인 과거와 그로 인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괴력을 가지게 된 반영웅적 인물인데다 그 과거로 인해 원치 않는 현실을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의 희생자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헐크 이야기는 그래서 한편의 드라마다. 그러기에 TV 시리즈(CBS, 1978년)로 제작돼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실 수 있었던 것이고 갖가지 버전의 헐크 이야기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 게다. 영화 “헐크(The Hulk)”의 감독을 맡은이안(Ang Lee) 감독도 제작 의뢰를 받아들이게 된 이유를 헐크가 가진 반영웅적, 비극적, 드라마적 요소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영화 “헐크”는 동원된 스턴트맨만도 무려 50명에 달하는 액션물이며 완전 CGI 캐릭터가 주인공인 비주얼 이펙츠 영화다. 무지막지한 힘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헐크를 둘러싼 파괴적인 액션 시퀀스들은 말그대로 백문이 불여일견 감인데… 그 배경에는 이안 감독의 영화에 대한 비전 외에도 “스타워즈” 시리즈(1980,1983), “어비스(1989)”, “터미네이터 II”(1990), “쥬라기공원”(1993) 등의 비주얼이펙츠를 이루어낸 ILM(Industrial Light & Magic) 팀의 기술과 무려 8차례에 걸쳐 아카데미 비주얼 이펙츠 부문상을 수상한 데니스 뮤렌(Dannis Muren)의 리더십이 있다(그림1).

그림 1. 이안 감독(오른쪽)과 비주얼 이펙츠 수퍼바이저인 데니스 뮤렌(가운데)이 비주얼 이펙츠 상태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을 감독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안 감독은 헐크를 “새로운 나의 녹색 운명(Green Destiny)”이라고 부르며 “헐크” 제작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녹색 운명’은 “와호장룡”의 그 명검(名劍) 이름. 데니스 뮤렌은 ILM에 소속돼 무려 8차례에 걸쳐 비주얼 이펙츠 부문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비주얼이펙츠의 귀재다.

스크린 타임 37분에 달하는 “헐크”의 비주얼이펙츠 샷은 총 600개로 이 중 440개 샷은 헐크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사용되었다. 헐크와 같은 완전 CGI 캐릭터가 영화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 예는 “헐크”가 처음은 아니다. 비근한 예만 해도 “반지의 제왕”의 골룸(Gollum)과 “해리포터”의 도비(Dobby)를 들 수 있고 모두 최첨단 CGI 기술로 캐릭터들의 피부 및 표정, 움직임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 세인의 감탄을 자아냈었다.

그런데 헐크는 이러 저러하게 생긴 인간 비슷한 생물이 아니라 괴물 비슷하게 생긴 인간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조금 색다르다. 우선 팔뚝 하나만 보통 사람의 몸통만 하고 키가 5m나 되는 인간, 그것도 근육질의 녹색 인간 괴물이다. 또 이 녹색 인간은 무의식 속에 억제되어 있는 슬픈 과거때문에 사랑마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번뇌의 과학자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의 변형으로 분노의 강도가 강해짐에 따라 점점 덩치가 불어나는 특성이 있다 (그림 2).

닥치는대로 때리고 부수는 것도 헐크의 특징이다. 총알 및 미사일 세례도 움찔할 뿐 수백 km를 점프하며 사막이야 돌산이야 도시를 종횡무진 누비며 탱크건 전투기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이라면 인정사정 없이 박살을 낸다. 갖가지 장해도 헐크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부르스의 친부인 데이비드 배너(닉 놀티)가 애견을 변형시켜 만든 무시무시한 헐크 개들의 공격을 물리치며, 전투대원들이 공기와 접하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리는 스틱키 폼(Sticky Foam)으로 덮어보지만 그것도 위험한 순간이 닥치자 와장창 깨고 나온다. 심지어는 핵 무기로부터도 멀쩡하게 살아남으니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Incredible)” 무적의 괴~물이다(그림3).

그림 2. 세트에 직접 투입해 헐크의 녹색 피부가 어떻게 빛을 반사하고 흡수하는 지를 파악해 CG
헐크의 라이팅과 합성에 참조하기 위해 만드는 모형이다. 그려진 눈과 가발, 그리고 일일이 심은 눈썹들이 실리콘 몸체에 차례로 입혀지면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피부 톤과 핏줄 등을 그려내는 마무리 작업을 하게 된다.

그림 3. 발사된 스틱키 폼(Sticky Foam)에 의해 움직일 수 없게 된 헐크. 데모를 진압하기 위해 개발된 스틱키 폼은 공기와 접하는 즉시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실험 단계의 물질이라고 전한다. 직접 스프레이 폼을 사용해 연출하는 방법은 폼 자체가 액체에 가깝고 지나치게 밝은 흰색을 띄는 문제점이 있어 포기되고 컴퓨터를 이용해 연출해냈다 (왼쪽). 엿가락 휘듯이 탱크의 포구를 잡아 둘로 쪼개는 사막 액션 시퀀스의 한 장면. CGI 탱크다.

놀라운 것은 이들 액션 장면들이 모두 헐크 만큼이나 “믿을 수 없이” 완벽하게 라이브액션과 합성돼 있다는 점이다. 전혀 어색하지 않아 어디까지가 CG인지 분간하기가 무척 어렵다. 찰흙 조각과 미니어처 모형 제작,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 파이로테크닉(Pyrotechnic)과 같은 전통적인 특수효과 기술에서부터 근육의 이완 및 수축의 폭을 역동적으로 조정해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살아 있는 개를 모션캡처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이용한 결과인데… 그 수준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어디까지가 실사이고 어디까지가 CG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헐크 = CG가 분명하고, 헐크 개 = CG? 아니면 모형?, 돌 = CG?, 물 = CG일 거야, 얼음 = 당연히 CG겠지, 두꺼비인지 개구리 = CG???, 코만치(Comanche) 전투기 및 조종사 = 당연히 CG?, 헐크가 던지는 감마스피어 = CG? 아니면 모형?(그림4).

그림 4. 감마광선을 쏘인 후 헐크가 되어 걸리는 것마다 잡아 던지고 있는 브루스 배너. 주인공이 들고 있는 감마스피어역시 CG다. 하지만 이 액션 시퀀스에는 헐크가 움직이며 부서뜨리는 벽이나 마구 던져대는 물건에 의한 폭발 장면 등 정확한 타이밍에 의해 코디네이트된 특수 장치도 함께 동원됐다.

“헐크”의 액션 시퀀스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역시 헐크가 헐크 개 세마리와 달빛이 비치는 숲속에서 싸우는 장면과 전투기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며 벌이는 모래 및 바위 광야에서의 대결 장면이다. 헐크의 참담한 처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해주는 이들 시퀀스는 완전 CGI 캐릭터 및 애니메이션, 애니메트로닉스(Animatornics: 즉석에서 움직일 수 있는 컴퓨터 제어 모델), 모캡, 피지컬 이펙츠, 그리고 라이브 액션이 총체적으로 조합된 “헐크” 비주얼 이펙츠의 백미라고 할 만한 부분이다(그림 5).

그림 5. 헐크를 쫓아 나무 위에서 으르렁거리는 헐크 개들. 40 피트가 넘는 미니어처 세트 사진과
CG 캐릭터들을 합성해 만들어낸 장면. 헐크 개의 애니메이션에는 실제 개의 모션캡처 정보를 이용했으며 어둡고 으스스한 달빛 아래의 분위기를 내는 세트의 라이팅은 후에 CG 캐릭터에 그대로 참조해 적용됐다.

특히 헐크의 근육 표현은 감탄할 만하다. 여간해서는 인공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야광 빛이 나는 녹색 근육이기에 더욱 그렇다. ILM이 헐크의 근육 표현에 사용한 방법은 수백 개가 넘는 근육 형태를 일일이 조각해 그것을 토대로 디지털 캐릭터를 구축한 다음 각 근육을 애니메이트 시키는 것이었다. 각 근육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방법이지만 근육들의 움직임을 코디네이트하기가 쉽지 않고 특정 움직임의 경우 서로 겹쳐지는 단점이 있었다.

ILM의 모델링 팀은 이 난제를 아론 퍼거슨(Aaron Ferguson)이 개발한 새로운 피부 시뮬레이션 툴과 앤드류 앤더슨(Andrew Anderson)이 제작한 머슬 지글(Muscle Jiggle) 프로그램으로 해결한다. 각각 근육을 덮는 피부와 피부 밑의 근육이 이완 및 수축하는 폭을 본래 근육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헐크의 움직임에 맞게 역동적으로 조정해 주는 프로그램이다(그림6).

그림 6. 근육을 일일이 조각해 그를 토대로 모델링한 다음 애니메이트시켜 완성한 헐크의 몸체는 한마디로 여기 불퉁 저기 불퉁 Mr. 보디빌더의 모습이다. 실제로 ILM 팀은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근육 조직과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디빌더의 근육을 참조했다고 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헐크 개들의 움직임을 모션캡처를 통해 얻어냈다는 점이다. 보디가드 역할을 하기로 훈련된 50kg이 넘는 루케로(Lucero – 개 이름)와 그 아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파란 색의 모션 캡처 장비를 몸과 머리에 걸치고도 점잖게 행동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들 개는 신체의 특정 부위를 정확히 공격하도록 잘 훈련이 되어 있어 애니메틱(Animatic: 완성된 결과물을 시각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초 또는 대략적 컴퓨터 애니메이션 버전을 가리키는 말)에 쓰일 장면을 정확하게 얻어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전한다(그림7).

그림 7. 헐크와 헐크 개들의 액션 시퀀스에서의 한 장면으로 릴리(Lily)라는 이름의 헐크 푸들이 차에 탄 베티를 공격하고 있다. 진흙 모형과 여러 장의 개 사진을 참조해 모델링하고 최신 퍼 렌더링 시스템과 특수 셰이더를 사용해 털과 이글거리는 눈 등을 표현한 완전 CGI다. 하지만 차창을 깨뜨리며 베티에게 덤벼드는 장면에서는 KNB EFX Group이 제작한 애니메트로닉스를 사용했다.

헐크의 눈 또한 언급 대상이다. 완전 CG인 이 눈은 브루스 배너와 그의 또 다른 모습인 헐크, 그 둘을 엮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눈에는 과학자 브루스 배너의 비극적인 과거로 인한 슬픔, 파괴적인 헐크로서의 수치심, 그리고 애인인 베티 로스(제니퍼 코넬리)에 대한 그의 감정이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눈물에 젖은 듯 반짝이며 살아 있는 듯한 헐크의 눈은 애니메이션 수퍼바이저인 콜린 브래디(Colin Brady)가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우들을 관찰한 결과다. 그가 발견한 사실은 인간의 눈이 완벽한 구 형태가 아니고 안구의 표면도 울퉁불퉁하다는 것인데 바로 이 발견을 헐크의 눈동자에 반사 빛으로 적용하니 움직이는 듯 반짝이며 생동감 있는 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진을 이용한 모델링, 직접 그려 넣기, 각종 텍스처맵 및 퍼셰이더(Fur Shader) 기술이 사용된 헐크의 클로즈업 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곳 저곳을 흐려줌으로써 현실감을 더했다는데, 그 기술인즉, 너무 선명하다 싶은 곳 - 예를 들어 눈커풀과 눈동자가 이루는 경계 부분 – 에 디스플레이스먼트 맵을 적용해 “인터널 에지 블렌딩(Internal Edge Blending: 내부 경계선 섞기. 적용 부분의 픽셀들을 흩트리는 기술로 일반적 블러와 구분한다)”을 하는 것이다(그림8).

그림 8. 브루스 배너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헐크의 눈은 화면 전체를 메우도록 클로스업된다.
이 눈은 사람의 피부를 찍은 사진을 기초로 모양을 다듬고 세밀한 부분은 직접 그려 넣은 다음 텍스처 맵으로 만들어 그 맵을 다시 헐크의 피부에 비춘 다음 그 질감을 맵으로 저장해 만들어 내었다. 홍채는 손으로 직접 그린 결과이며 실핏줄의 입체감은 디스플레이스먼트 맵을 이용해 만들었다.

CG “헐크”에 대한 평은 찬반이 팽팽하다. “꼴불견일 정도로 만화틱한 영웅 괴물”, “색과 피부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얼굴 표정과 근육이 판타시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이다”는 혹평도 있다. 그런데 이 혹평은 헐크의 제작을 놓고 이안 감독이 접근한 방법이 “보통 스페셜 이펙츠 영화에서 관객들은 판타시 세계를 경험하며 즐기려고 한다. 판타시 또는 추상적인 세계가 물질적 현실보다는 마음에 더 와 닿기 때문에 보다 진실되다 ”에 기초하고 있음을 안다면 굉장한 호평으로 반전된다. 또 따지고 보면 헐크는 정의 자체가 “덩치가 크고 흉한 사람 또는 물건”, 다시 말해 일종의 “괴물”이 아닌가?

모든 걸 양보하더라도 CG 헐크가 자신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갖도록 관람자를 – 최소한 나를 - 유도했다는 것은 애초 이안 감독이 계획한 대로 “드라마가 있는 스페셜 이펙츠”에 성공했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드넓은 사막과 광야를 수십km씩 점프하며 도망가는 헐크를 보면서 비극적인 과거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가진 과학자 브루스 배너가 느꼈음직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는 베티에게 헐크로 변해 괴력을 가지고 닥치는대로 파괴하는 것이 솔직히 “좋다”고 고백했었다.

facebook twitter

당신을 위한 정글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