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3
한국에서 태어나 전자공학도로 살던 박동윤은 어느 날 디자이너가 되고자 마음 먹었고, 현재는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 협업이 그 자신에게서 자유자재로 개발되고 표현된다. 디자이너가 된 프로그래머는 어쩌면 현 모바일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인재일지도 모른다. 개발만 하는 공학도보다 개발해서 디자인까지 하는 디자이너가 된 박동윤의 작업들은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하는 모바일 캔버스 위를 훨훨 날고 있다.
글 | 지콜론 에디터 이찬희
Q. 소개 부탁한다
A. 뉴욕의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이하 ‘파슨스’)의 대학원 과정인 MFA Design and
Technology를 막 마친 디자이너이자 전직 프로그래머이다. 대학교 때의 원래 전공은 전자공학이며,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일을 하다가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가지고 SADI(삼성디자인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대학원 2년간 다양한 모바일 분야의 프로젝트를 제안, 진행했고, 다니던 대학원에서 디자이너를 위한 기초 프로그래밍 수업의 강의를 하는 등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올해 초에는 직접 쓰고 디자인한 『도전! 아이폰 4 프로그래밍』이라는 아이폰 앱 개발서적을 출간하였고, 지난 6월 1일에는 그 동안 진행해온 논문 프로젝트인 ‘Typography Insight’를 앱스토어에 출시하며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Q. 전자공학도가 디자인을 다시 공부하며 창작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A. 어린 시절 Deluxe Paint나 Dr. Halo와 같은 그래픽 페인팅 툴이나 그림과 만화 그리기에 심취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다양한 회사 로고들을 낙서하거나, 오락실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에서도 캐릭터 이름의 글자 모양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려보는 등 글자와 그래픽 디자인에 유독 관심이 많았었다. 커서는 컴퓨터가 창조해 내는 멋진 그래픽의 근본이 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좀더 깊게 알고 싶어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마침 90년대 말 인터넷과 벤처기업의 붐이 일던 시절 소프트웨어 전공학회에서 다양한 웹사이트의 제작을 의뢰 받았었는데, 이때 웹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웹 디자인도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웹이라는 디지털 캔버스에 매료됐다.
Q. 디지털 캔버스 분야의 작업물이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건가.
A. 대학 졸업 후에는 삼성전자에서 모바일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UI를 담당하게 되어 디자인팀과 밀접하게 일하게 된 것이 디자인과의 인연이 되었다. 부서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GUI 프로토타입이나 시안 등을 작업하면서 디자인 분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비트맵 기반에서 플래시 등의 다이나믹한 GUI로 진화하던 시기여서 기술과 디자인이 만나 멋진 시너지를 내는 인터렉티브한 작업들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프로그래밍이 가지는 논리적인 알고리즘 등에도 재미를 느꼈지만,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지고 사용되는 시각적인 디자인의 세계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 마침 어느 날 회사의 사내방송을 통해 SADI를 알게 되었고, 디자인 공모전 등에서 입선하는 등의 일들도 동기부여가 되어서 퇴사 후 SADI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공부를 결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일을 할 때 프로그래밍의 소스코드 에디터에서도 메소드명을 Helvetica로 설정하고 파라미터를 Garamond로 설정하는 등 코드의 서체 설정에서도 이미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사가 드러났던 것 같다.
Q.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어떤 교육과 학습의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하다.
A. SADI에서는 1년의 공통적인 파운데이션 과정과 2년의 전공 과정을 공부하게 되는데 첫 1년 간의 파운데이션 과정에서는 누드 크로키나 기초적인 드로잉, 2D, 3D 등을 배웠다. 3년 과정인 만큼 상당히 빡빡한 일정과 많은 분량의 과제로 고생스러웠지만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을 한다는 행복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전공과정에서는 시각디자인의 중요 요소들인 타이포그래피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관련 수업들을 듣게 되었는데, 역시 주 관심사였던 타이포그래피 수업들이 가장 즐거웠다. 물론, 2D 그래픽 중심의 수업뿐만 아니라 인터렉션(Interaction) 디자인이나 모션그래픽 등 다양한 미디어 기반의 디자인 과정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Q. 파슨스에서 인상적이었거나 한국디자인 교육에 도입되었으면 하는 커리큘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SADI 역시 국내 다른 디자인대학과는 다른 수업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서 사실은, 국내 디자인대학 과정에서의 일반적인 수업방식이나 체계와의 비교는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파슨스 자체의 커리큘럼적인 면에서는 현지의 여러 지역기관, 단체, 학교 등과 연계하여 협업(Collaboration) 방식으로 진행하는 수업들이 인상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과의 협업 및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 등의 중요성 같은 현실에 적용 가능한 것들을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Q. 기억에 남는 수업을 소개한다면
A. ‘Data Visualization’ 수업이었는데,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
와의 협업으로 NYT의 Open API를 활용하여 뉴스 기사와 다양한 데이터들을 인터렉티브한 방법으로 시각화하는 수업이었다.
<뉴욕타임즈>
와 같은 전통적인 신문사에 최첨단 기술과 미디어에서의 뉴스 전달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하는 디자이너들과 프로그래머들이 있는 Lab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외에도 뉴욕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상 MoMA를 비롯한 다양한 미술관 등에서의 전시나 School of Visual Arts, NYU 등 인근 학교에서의 다양한 강의 및 워크숍도 빼놓을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TDC(Type Director’s Club)나 Cooper Union의 Type@Cooper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강연이나 행사에 많이 참여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타입 디자이너인 폴 쇼(Paul Shaw)와 함께 뉴욕 도심 속의 역사적인 타이포그래피들을 걸으며 탐험하는 레터링 투어(Lettering Tour)였다.
Q. 어떤 관심사에 의해(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어떤 작업을 주로 하고 있나
A. 가장 큰 관심사는 ‘디자인과 기술의 관계와 시너지이며, 어떻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들이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들을 제시할 수 있는가’이다. 현재의 주된 관심사는 타이포그래피, Data Visualization 및 인터페이스 디자인이다. 급격히 진화하는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들 역시 큰 관심사이며 그 동안 개인적으로 아이패드용 트위터 앱인 ‘Twit Knoll’ 등 다양한 실험적인 모바일 앱들을 디자인 및 개발해 왔다. 이러한 iOS기반 개발 및 디자인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초에는 『도전! 아이폰 4 프로그래밍』이라는 아이폰 프로그래밍 서적을 출간했다. 이 책은 개발자로서는 집필을, 디자이너로서는 모든 편집디자인을 인디자인으로 직접 작업한 결과물인데, 개발자가 집필과 디자인을 모두 한 최초의 개발서적이 아닌가 싶다. 정보를 시각적으로 정리하고 쉽게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기에 600페이지 정도의 분량임에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개발서적으로는 드물게 컬러를 고집하고 소스코드의 서체나 컬러 및 본문 편집에도 상당히 공을 들였는데,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고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어 집필과 디자인 과정에서의 고생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Q. 아이패드 앱으로 개발된 Typography Insight 작업의 대상은 누구이며,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기 위함인가
A. Typography Insight는 타이포그래피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디자인하였고,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들이 용어의 정의나 주요 서체들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로 Gizmodo나 The Atlantic의 기사 및 트위터에서의 반응들을 보면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가져준다. 이미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가진 전문 디자이너들이나 타이포그래피 마니아들은 서체의 미려한 아름다움을 손안에서 감상하고 음미하는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점을 둔 부분은 타이포그래피 학습 중에서도 역사적인 서체의 ‘형태(form)’에 대한 학습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용자들이 작은 크기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미려한 형태들을 다양한 크기에서 자유롭고 세세하게 관찰하며 Serif, Apex, Counter 등의 요소들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고, 서로 다른 서체들의 비교를 보다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Q. 아이패드라는 미디어가 개발과 디자인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아이패드의 다양한 제스처 기술을 처음 보았을 때 바로 들었던 생각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제스처들을 서체를 관찰하고 조작하는데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바로 ‘서체를 손가락으로 직접 만질 수 있다’는 부분인데, 이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통해 조작하고 모니터로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경험을 준다. 서체의 크기를 다양하게 조작하는 데에 기존에 많이 활용되던 숫자값 입력 필드나 슬라이더 대신, 손으로 오므리기/펴기 제스처를 이용하여 보다 직관적이면서 사용자가 서체를 만지면서 조작하는 느낌을 통해 서체와 더욱 가까운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뉴욕타임즈>
뉴욕타임즈(new>
Q. 디자인과 개발을 모두 한다는 것은, 현 모바일 시대의 인재상인 것 같다. 실제로 작업을 함에 있어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가
A. 개인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과 개발을 모두 직접 하다 보면, 디자인적인 이상이 기술적인 한계로 실현되지 못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충분히 더 많이 이루어 낼 수도 있지만, 두 가지를 모두 하는데 있어서 시간적인 제약이나 자원의 부족으로 작업을 아쉽게 마무리하게 될 때 안타까움이 크다. 디자인과 개발 두 가지 모두 재미있기 때문에 둘 모두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아직은 큰 것 같다. 물론,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지고 협업 및 분업으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는 개발보다는 디자인에 집중을 하고자 한다. 이런 경우는 개발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그들의 언어를 알기에 디자이너로서 의사소통하고 설득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Q. 모바일 미디어 사용자를 위한 인터렉티브 디자인을 작업함에 있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디자인이 형태와 그에 담기는 내용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그 둘의 조화로움을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새롭게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최근의 다양한 인터렉티브 미디어에서는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형태가 과하게 표현되어 내용을 압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기에 디자이너에게 더욱 절제와 조화라는 덕목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한 예로, 작년에 출시한 Twit Knoll이라는 아이패드용 트위터 앱은 사용성이나 기능적인 측면 보다는 코믹하고 실험적인 인터페이스와 시각적인 형태에 몰입하여 디자인한 작업인데, 역시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트위터 클라이언트로서 정보를 브라우징하는데 있어 갖추어야 할 보편적인 사용성에 대한 개선을 요청하는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즉, 흥미로서 일정 기간은 사용해 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수시로 트위터를 확인하고 빠르게
정보를 스키밍하는 트위터라는 내용과는 앱의 형태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디자인 사례로 볼 수 있다.
Q. 앱스토어의 등장으로 인한 개인 개발자/디자이너들이 가지게 된 새로운 시장과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iOS와 앱스토어의 등장은 개인의 디자인 아이디어나 메시지의 표출을 전 세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앱스토어의 등장으로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디자인하고 개발해서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사용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저에게 모바일 캔버스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실제로 저의 첫 앱인 HUE Clock이라는 간단한 컬러휠의 콘셉트를 가진 시계를 디자인하고 개발해서 스페인, 독일, 이집트 등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들과 피드백을 받았을 때의 쾌감과 감동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이렇게 개인의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직접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그를 통해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은 모든 디자이너들에게도 새롭게 열린 기회와 가능성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Q. 현재의 작업,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A. Typography Insight의 발표와 함께 Parsons MFA Design and Technology 대학원을 마친 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에서 UX Designer로서 또 다른 출발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저의 관심사인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과 시너지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미디어와 플랫폼에서의 사용자 경험에 대해서 즐겁게 탐험할 계획이다. Typography Insight는 다양한 국가의 많은 사용자들이 좋은 조언들을 해주고 있는데, 이러한 의견들을 바탕으로 조금씩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며,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교육에 자그마한 공헌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Q. 어떤 디자이너를 꿈꾸는지,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나
A. 디자인과 기술이라는 두 언어를 조화롭게 사용할 수 있는, 두 분야의 연결고리가 되고 싶다. 존 마에다(John Maeda), 디자인과 기술의 접목과 교육자적 측면에서 그의 작업들과 리더십을 존경한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디자인은 누구에게도 사랑받기 힘들다는 가장 당연한 진리를 좋아한다. 이 말은 공자의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당할 수 없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해낼 수 없다)와도 상통하는 것으로,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분야를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을 때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멋진 결과물이 창조되기 마련인 것 같다. Typography Insight의 경우 대학원 입학 전부터 대학원 지원을 위한 SOP(Statement of Purpose) 작성시에 이미 마음에 담고 있던, 대학원 진학 시 공부하고 싶었던 꿈들이 열매를 맺은 결과이다.
Q. 디자인을 이제 막 시작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어느 분야에나 해당되는 내용이겠지만, 프로그래밍을 할 때도 끊임없이 진화하는 플랫폼과 새롭게 등장하는 프레임웍 및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가 필요했듯이, 디자인 분야에서도 정말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이때, 디자인 분야에 한정된 공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인문학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합성(Synthesize)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기술과 디자인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 디자이너분들이 직업 역할을 명확히 구분 짓고 자신의 영역을 한정 짓기 보다는, 이를 넘어 다른 영역의 요소들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직업이라는 개념에서 보다 넓고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