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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 | 리뷰

3초의 진심

2009-11-17


똑딱. 똑딱. 똑딱. 시계 초침이 3번 움직이는 시간. 이 짧은 3초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 한 모금 마시기, 몇 단어의 문장 읽기, 혹은 구구단의 ‘이 일은 이’에서 ‘이 삼은 육’까지 외우기?
눈 깜빡 하는 사이에 지나쳐버리기 쉬운 시간, 3초. 만약 아트디렉터에게 자신의 디자인 결과물을 보여줄 시간이 단 3초 주어진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글 | 이주환 아트디렉터(TBWA KOREA)
에디터 | 정윤희(yhjung@jungle.co.kr)

얼마 전 기존 광고와는 조금 다른 형식의 1분짜리 대림e편한세상의 TV광고를 론칭했다.
이 광고는 3가지 버전으로 론칭했는데, 그 중 ‘진심의 시세’ 편은 이렇다.

대림e편한세상의 새로운 캠페인은 ‘진심이 짓는다’ 라는 컨셉트로 톱스타를 등장시켜 소비자에게 현실적이지 않은 기대감을 심어주거나 유럽의 성 그림으로 모든 것을 화려하게 포장하려는 기존의 아파트광고에 반대한다는 선언이며, 또한 그 속에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기업으로서의 진심이 담겨있는지를 묻고 있다.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은 3가지 버전으로 각각 ‘진심의 시세’, ‘1층’, ‘베이크아웃’이라는 팩트를 가지고 풀어냈다. 그리고 광고의 도입부에 공통적으로 ‘진심이 짓는다’ 캠페인의 슬로건 디자인이 베이스기타의 박자에 맞추어 형성되는 것을 포맷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초반에 언급했던 3초라는 시간은 ‘진심이 짓는다’라는 캠페인 슬로건의 디자인이 TV에 노출되는 시간이다. 3초라는 시간, 이 광고의 20분의 1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짧은 시간을 위해 광고회사의 아트디렉터들은 얼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까?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맡은 건 광고가 TV에 론칭되기 약 4개월 정도 전의 일이었다. 광고를 제대로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으로 e편한세상의 연구원, 임원, 현장의 직원들까지 모두 인터뷰했고, 모델하우스와 지방에 있는 e편한세상의 주택연구소에 견학을 다녀오기도 서울에 있는 여러 곳의 e편한세상 단지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사전작업을 통해 우리가 몰랐던 좋은 팩트들을 많이 찾아냈다. 입주 전 새집냄새를 없애주는 베이크아웃 서비스, 아파트 1층에 사는 사람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기존보다 높은 위치인 1.5층에 1층을 만들었다는 입주자를 배려한 생각, 친환경적인 건설을 위한 초절전 설계, 그리고 기타 등등. 이 건설회사는 입주자들을 위해, 친환경적인 건설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라는 확신이 들자 이 모든 e편한 세상의 좋은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광고의 소재가 되었다.

당연히 첫 회의부터 컨셉트는 ‘진심’으로 정해졌다. 50가지 좋은 팩트에 관한 50가지 진심 어린 카피가 나왔다. 캠페인 아이덴티티 디자인에도 진심이 필요했다. 처음에 제시했던 시안의 슬로건 디자인은 모눈종이 배경에 연필로 제도한 듯한 고딕체의 슬로건 주변에 건축학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직선들과 도형들을 조합하여 구성했었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해 보였다. 내가 느낀 진심들이 어떻게 하면 디자인에 더 반영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들이 들기 시작했다. 형태를 좀 더 디테일하게 발전시켜보아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집을 짓는 그들의 철학이 디자인에도 반영될까?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감각으로 디자인하지 말고 진심으로 디자인 해보자. 아이덴티티를 디자인하지 말고 아이덴티티를 건축해 보자. 위에서 내려 봤을 때 ‘진심이 짓는다’라는 모양이 되는 세상에 하나뿐인 집을 설계해보자.

우선 글자를 설계해줄 건축설계사를 수소문해 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두들 대답은 ‘노’였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 안에 그런 복잡한 구조를 가진 건축물을 설계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이유였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젠 아트디렉터가 아닌 건축설계사가 되어야 했다.

자료를 수집했다. 보통 라이브러리 사진 사이트에서 찾는 자료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서점을 며칠씩 뒤져서 자료들을 확보했다. 디자인 아니 설계를 시작했다. 디자이너로서의 마인드가 어느덧 건축설계사의 마인드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ㅣ의 경우, 양쪽 끝에 방이 있으면 가운데 부분은 복도가 되어야겠다’, ‘이응(ㅇ)은 원형의 정원으로 만들어 봐야지’ 이런 생각들이 벽돌이 쌓이듯 차곡차곡 쌓이면서 세상에 하나 뿐인 건축물의 설계는 완성 되었다. 하지만 진심이라는 단어와 컴퓨터로 그린 선들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 했다. 디테일을 더 올려보기로 했다.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선들을 부분적으로 지우기도 하고 연필로 칠한 명암을 베이스로 깔아보기도 했다. 누군가는 지나가며 ‘어차피 잠깐 동안의 노출인데 그냥 서체로 하면 되는 거 아냐?’ 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3초 동안의 짧은 시간이지만 광고의 도입부에 사용되기 때문에 강한 인상을 주고 싶었고, 글자 안에 방이 있는지 거실이 있는지 정확히 보이지는 않겠지만 느껴지기는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반복이 열흘 정도 계속 되었고, 마침내 슬로건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나의 진심이 광고를 보는 이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3초간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결과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또한 ‘광고가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가끔 우린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한다. ‘이거 어차피 보이지도 않잖아?’
하지만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최선을 다한 진심이 통한다면…. 생각해보자, 과연 당신은 작은 디테일에 대해 소홀할 수 있겠는가?

흔쾌히 인터뷰를 해주었던 e편한세상 직원들의 진심, 광고제작 전반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진심, 머리를 쥐어짜며 50개의 주옥 같은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의 진심, e편한세상이 가장 멋져 보일 때를 찾아내기 위해 같은 자리를 몇 번씩 찾아왔던 포토그래퍼의 진심, 이외 스텝들의 수많은 진심들 그리고 단 3초간의 노출을 위해 수많은 도면과 씨름했던 아트디렉터의 진심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으로 느껴지는 광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메시지 위주의 광고로 감동을 주는 일도, 비주얼 위주의 광고를 만들어 감각을 뽐내는 것도 멋진 일이다. 허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광고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의 비중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참여한 각각의 스텝들의 진심, 최선을 다한 진심들이 모여 멋진 광고가 완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광고를 만들어 온 시간 중에 몸이 고되고 마음이 고된 적도 있다. 완성도를 위한 시간과의 싸움을 늘 벌이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힘들었던 시간은 광고가 론칭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광고.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진심 어린 광고대행사의 밤은 낮보다 길고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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