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11
우선 카피가 예술이다. 한 줄의 가슴 절절한 카피로도 한 편의 서정시를 마음에 담아내 듯 할 수 있다. 영상은 따뜻하고 인물은 소박한 얼굴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메마른 감성을 깨우고 감동을 주는 이른바 ‘착한 광고’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착한 광고’는 강렬한 감동만을 주고 끝나지 않는다. 그 속엔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보편적인 진리가 숨어 있다.
글ㅣ이윤원(bintlove@korea-adtimes.com)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한 줄의 카피와 함께 뇌병변 1급 장애인이라는 한 남자가 소개 되며 시작된 광고. 빌리조엘의 ‘피아노 맨’을 배경음악으로 남자의 기구한 삶과 기적적인 희망들이 짧은 순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세 번째 희망을 만나기 위한 그 남자의 도전으로 광고는 끝이 난다. 15초 만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음을 절감하는 가운데.
이 광고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KT의 ‘희망 다이어리’광고 시리즈 중 하나로, 중증 장애인 김정대씨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세번째 만남’편이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해외근로자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정대씨가 얼마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하고, 그는 뇌병변 1급 판정을 받아 중증 장애인이 된다. 그의 독백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그에게 첫 번째 찾아온 운명적인 만남은 아내였고, 두 번째 운명적인 만남은 아들 준영이었다. 그리고 KT의 IT서포터즈의 도움을 받아 웹마스터로서의 세 번째 운명적인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화려한 영상도 카피도 모델도 없지만 그 어떤 광고보다 마음을 움직였던 KT 광고처럼, 요즘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는 ‘착한 광고’들이 눈에 많이 띈다. KT의 경우 ‘희망 다이어리’시리즈 이전에도 ‘Life is wonderfull’ 캠페인을 런칭해 사랑과 접목하는 등 잔잔한 광고를 선보인 바 있다. 4년 만에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고 있는 삼성도 ‘고맙습니다’ 캠페인을 전개하며 ‘어머니’ ‘아버지’ ‘선생님’ 등 3편의 멀티광고로 따뜻한 인간미를 전한다. 첫 화면은 포근하고 정겨움이 듬뿍 묻어나는 일러스트로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선생님’ 등 대상을 밝히며 추억 속 에피소드를 펼친다.
코레일 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해 온 코레일은 최근 부녀간의 정겨운 여행기를 담고 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광고 개런티의 일부를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국제아동구호기구인 ‘컴패션’ 에 기탁하기로 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 기아 오피러스 광고는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모자랍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SK텔레콤은 ‘사람을 향합니다’ 캠페인을 펼치며 최근 중국을 배경으로 한 ‘보고싶습니다’광고를 전개, 본격적인 중국진출을 앞두고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보다는 추억과 그리움의 모티브를 차용한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감성 광고들은 최근의 트렌드만은 아니다. SK텔레콤은 갓난아이를 낳은 어머니에게 ‘원더우먼’을, 지하철에 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힘을 합쳐 지하철을 밀어내는 사람들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을 부여하며 ‘영웅’편을 방송했고, 곧 그 후속편으로 ‘대한민국 공로상(賞)’편을 전개한 바 있다. 어디 그뿐인가. 비씨카드는 탤런트 이계인, 여자 프로복서 이인영, 카피라이터 최윤희씨 등을 늦깍이 성공 사례로 소개하며 ‘네 꿈을 펼치라’고 외쳤다.
실제 이야기를 다룬 광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연말 전파를 탔던 동양생명의 ‘변희철?윤선아 부부’편은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광고로 옮겼다. ‘계란껍질처럼 뼈가 부서지는 병’인 골성형 부전증으로 고생하는 윤선아씨와 비장애인인 변희철씨의 연애담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흐르며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KTF의 ‘0.3초의 진실’ 편에서도 지하철에 뛰어들어 용감하게 아이를 구한 고교생의 모습이 담긴 실제 CCTV화면을 그대로 광고에 옮겼다.
그러나 이러한 ‘착한 광고’들이 일회성 감동만 전달하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광고가 기업의 기부문화를 이끌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탤런트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기아 오피러스 광고에 출연한 이후 개런티의 일부인 3천만원을 국제아동구호기구인 ‘컴패션’에 기탁한 사실이 화제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기아자동차도 컴패션 후원 기금 전달식을 가지기도 했다. 기아차와 컴패션의 공동 행사는 한 편의 TV 광고를 인연으로 모델과 기업이 힘을 모아 기부 문화와 더불어 사는 사회 조성에 동참한 좋은 선례를 남긴 셈.
한편 농협보험 광고모델로 나선 언론인 조주희씨는 농촌 청소년을 위해 개런티 6천3백만원을 전액 기부했고, 탤런트 김지호는 토마토저축은행 광고 출연료 5천만원을 장애아동들을 돌봐주는 동방사회복지회에 전달했다. 또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배경음악인 ‘뭉게구름’의 음원 서비스 수익금을 복지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고의 공익성 강조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암투병 끝에 집에 돌아온 오빠를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오빠에게 준 어린 소녀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광고나, 매일 아침 따뜻한 스프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겠다던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스프를 끓이고 산에 올라가 악기를 연주하던 중국의 ‘츄 아저씨’의 일화를 담은 광고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광고들은 기업의 목소리는 높이지 않으면서 간결하고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그 보편적인 이야기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광고가 기업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줌과 동시에 기업은 소비자에게 보다 친근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갈 구실을 만든다.
한편 각박한 디지털시대에 살아가다 보니 사람들은 인간성 상실과 같은 역기능을 감추기 위해 어쩌면 인간미 물씬 풍기는 광고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제일기획이 지난 2005년 13세부터 24세 800명을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이들은 ‘포스트 디지털세대’라는 결론을 내렸다. 디지털기기가 생활필수품이 된 포스트디지털 세대들은 기계적인 환경에서 자랐지만 마음은 아날로그라는 것.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 이주현 박사에 따르면, 디지털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인 포스트디지털세대는 기술진보를 개인주의에 머물게 한 디지털세대와는 달리 집단의식과 인간적인 정을 중요시하며, 인간적인 사회를 지향한다. 따라서 디지털시대에 인간성 상실을 염려하고 견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착한 광고’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