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2-01
축구의 종주국 영국은 제국의 지배력 약화로 그 주도권을 유럽대륙에 빼앗기게 되고, 다시 그 힘은 오늘날 국제축구연맹(FIFA)이 쥐게 되었다. 그나마 그 왕권의 추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세계적인 축구 전문브랜드 ‘엄브로(Umbro)’.
1924년 영국에서 탄생한 엄브로는 축구화, 의복, 장비 등 오직 축구에만 전념하는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데 영국을 비롯한 아일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국가대표팀 등이 애용하고 있다고 한다.
8세기경, 쳐들어 온 덴마크 군대를 템즈 강변에서 무찌른 영국 군인들이 침략에 대한 앙갚음으로 적군 장수의 머리를 발로 찬 것에서 축구가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축구는 영국에서 마을과 마을끼리의 대항전으로 펼쳐졌지만 과격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축구의 잔혹사는 그뿐만이 아니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1368년 축구 금지령을 내렸고 이를 어긴 사람들은 발을 잘랐다고 한다. 13~14세기 단검을 차고 한 유럽 선수들의 경기는 경기 도중 우발적인 유혈극을 일으키기 일쑤였다고 한다.
맨땅과 땡볕, 쏟아지는 폭우. 거기에 가세하는 훌리건(hooligan)의 난동까지. 이런 것들도 결코 축구를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축구에는 일종의 가학증(sadism)과 피학증(masochism)이 공존하는 게 아닐까?
엄브로의 축구화 광고는 ‘당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카피와 함께 축구화를 신은 여자의 가학적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피학을 즐기는 남자와 함께. 마치 영화 ‘거짓말’을 보는 것 같다. 채찍을 들은 여자. 발로 남자의 가슴을 짓밟고 있다. 그리고 수갑을 채워 묶어놓은 남자의 엉덩이를 힘껏 차기도 한다.
이윽고 남자는 개가 된다. 혀를 내밀며 여자를 등에 태운 것이다. 개 끈에 묶이듯, 팔이 묶인 채로 말이다. 등위의 여자는 의기양양하게 남자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주문하는 모양이다. 담배 한 대의 휴식도 잠깐. 드디어 남자는 완전한 개가 되어 여자의 신발을 핥는다. 긴 혀를 힘껏 내밀어. 그래도 이쯤 되면 이제 우리의 시선은 제품에 한껏 모아진 셈이다.
남을 이기고 싶은 마음, 권력을 얻고자 하는 욕구. 비록 축구장을 뛰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도 우리는 가학증 환자의 하루를 산다. 그러면서 틈틈이 직장 상사의 잔소리 역시 즐기는 걸 보면 프로이트의 지적처럼 가학증과 피학증은 다른 게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