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9
지난 3월 23일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는 파주타이포그래피학교(이하, 파티) 오름을 축하하기 위해 네빌 브로디(Neville Brody)의 특별 강연이 열렸다. 영국왕립미술학교(RCA)의 커뮤니케이션학과장이자,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이기도 한 그를 만나기 위해 파티의 학생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연장을 찾았다. 이날 강연은 타이포그래피가 어떻게 예술적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그의 이전 작업들과 영감을 받았던 다른 작업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에디터 | 정은주(ejjung@jungle.co.kr)
자료제공 |파주타이포그래피학교(http://www.pati.kr/)
네빌 브로디는 디자인 및 타이포그래피 작업이 대부분 디지털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강연을 시작했다. 디지털 프로세스는 과거에 비해 더욱 다양한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었지만,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보기에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은 디자인은 늘어났지만,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업은 줄어들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는 눈으로 보는 시와 같다.”고 표현함으로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가 최근에 접한 일련의 작업들은 “타이포그래피가 갖고 있는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타이포그래피의 다양성을 찾고,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네빌 브로디의 대답은 예술적인 타이포그래피였다.
우리는 좋은 예술 작품을 보면서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에너지와 영감을 느낀다. 그의 말은 타이포그래피 역시 예술적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말이었고, 그 점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주어진 작업 도구를 벗어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네빌 브로디가 다양한 타입의 시도를 선보였던 FACE는 ‘타이포그래피는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작업이다.
작업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함께 필요한 것은 작업 과정의 혁신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실마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여유와 태도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강연에서 네빌 브로디는 그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만들어준 잡지 FACE 외에도 타이포그래피 계간지 FUSE부터 일본 화장품 겐조(Kenzo)의 패키지, 타임지 리뉴얼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작업 전반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FUSE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 했던 사진, 모스 부호 등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도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작품들이 이미 20여 년 전인 1994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새로운 작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다른 사실에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언어적인 실험이 계속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와 동시에 타이포그래피와 디자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과 가능성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곳이라면 디자인은 항상 있다.”라는 말로 다양한 산업과의 협업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 해답을 디자이너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한편, 파티에서는 네빌 브로디의 강연 이외에도 앞으로 파티 학생들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pati.kr/)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