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13
혹자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원(圓)’이라고 합니다. 직선으로 된 다각형처럼 모나지도 않고, 시각적으로도 부담이 적은 동그라미는 우리들의 의식 속에 안정되고 편안한 형태로 기억되어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남성 적이기 보다는 여성성에 가깝고 어른보다는 순수한 어린이에 근접합니다. ‘ㅇ’이 들어간 한글이나 알파벳 ‘O’가 포함된 영어 단어는 발음마저 부드럽습니다.
‘원만한 성격’, ‘원만한 인간관계’를 앞세우고, 인격이나 지식의 완성인 ‘원숙(圓熟)’을 원으로 이야기 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근 달에 소원을 빌었지 반달이나 손톱 달에 누가 소원을 빌었을까요.
우주나 자궁 같은 인간의 원초적인 심연(深淵), 물질의 본질, 정자나 난자는 물론이고 궁극적인 모든 것들은 대부분이 원이나 원에 근접한 완벽한 형태의 이미지로 기억되곤 합니다. 지구나 태양이 둥글고, 원자나 분자도 어쨌든 원이나 구의 이미지로 추론합니다. 그런 까닭인지 모르지만 모든 구심점은 원이 아닐까요. 엎어 치든 메치든 원이고, 원은 굴러 모든 것을 원위치로 돌려 놓습니다. 그렇지요. 옳은 것, 정답은 모두가 ‘ㅇ’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원은 아름답고, 완벽하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소원인 부자 되기의 간절함을 함축한 그 기본 단위는? 어머나, 원(圓)이네.
디자인을 결정하는 형태 중에서 원은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각도에서나 정확한 대칭에 안정적이고 중립적이기도 해서 애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원이라는 디자인 요소는 디자이너와 함께해야 할 운명입니다.
워낙 도드라지고 튀는 것을 좋아하는 파격시대에 원만한 것은 눈과 성에 차지 않을지 몰라도 원이라는 속성은 사실, 눈에 번쩍 뜨이지도 그렇다고 사그라지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직선보다는 곡선으로 근접하고 있습니다. 마치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듯, 직선이 곡선을 어찌 할 수 없을 터이고, 곡선의 최고점인 원은 언제나 어디서나 이상에 가까운 형태로 있습니다.
의미가 전혀 다르지만 이즈음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원빵’ 혹은 ‘완빵’ 이라는 원은 ‘圓’이 아닌 ‘ONE’이나 ‘ALL’의 의미이지만 그 속에 ‘ONE 빵’ 의미를 함축해 주고, 주목하게 하는 시각요소가 있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있지만 눈 여겨 보노라면 흔하지도 않은 돌출 원형 간판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도 오차 없는 원이라는 한정된 형태 속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배치하며 컬러의 선택은 무엇으로 할까 이 단순한 문제는 모름지기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원뿐 아니라 모든 디자이너의 영원한 숙제이긴 하지만 단순한 원안에 형태와 비례의 조화를 맞추기란 다른 형태보다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넘치면 둔하고 복잡해 보이고 모자라면 빈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론보다 감각의 영역에 상대적으로 강한 디자이너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주어진 원 속을 원만하게 디자인하든, 원숙하게 디자인 되든, ‘완빵’에 보여주기 위해 대부분이 직선과 각으로 채워진 거리에 원이라는 형태를 이용한 간판은 네모난 간판보다는 다른 맛으로 우리와 접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모든 자연에 직선은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건축가는 직선은 죄악, 죽음의 선이라 칭했고, 곡선은 신이 만든 선, 직선은 악마가 만든 선이라 말했을 정도입니다.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몸 어디에도 직선이나 직각은 없다고 하니 새삼 도시에서 그나마 인간적이고 친근한 형태가 원이 아닐까요.
재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종로의 ‘피맛골’이 없어지듯 도시는 인간적인 구불구불한 곡선의 거리는 하나 둘 사라지고 각지고 세련된 직선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재개발이라면 무조건 쭉쭉 뻗은 아파트 단지가 최선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련 되었건 촌스럽건 직선과 각이 난무하는 거친 도시 안에 원이라는 존재는 디자이너가 눈 여겨 보고 새롭게 부각 시켜야 할 인간적인 요소입니다.
그다지 흔치 않지만 그래도 쏠쏠하게 볼 수 있는 돌출된 동그란 간판은 재료와 크기마저 대부분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련 되었거나 아름답게 디자인 된 것 또한 흔하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완벽한 원 속에 어설픈 타이포그래피, 크기의 부조화, 원색적인 컬러, 달려만 있고 관심 없는 관리- 간판을 단 주인이나 열악한 조건에서 진행된 디자이너의 심미안 또한 이러쿵 저러쿵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 할 처지는 못 되더라도, 관심 있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디자이너 시각에서 바라다 보는 ‘안타까운 미련’ 정도로 치부해야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화적 안목과 시회 시스템 속에서 나온 결과물 중의 하나 이기에 성에 덜 차고 미덥지 않지만 지금 그대로가 어쩌면 자연스런 아름다움일 수도 있으니까요.
2008년은 원만하게 돌아 가지 못하여 이래 저래 어렵고 힘든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굴러 오는 2009년은 원숙하게 둥글둥글 돌아 가야 할 터인데 벌써부터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식은 별로 없고 썰렁한 삭풍만 불어 올려나 봅니다. 그래도 동글동글하고 훈훈한 해를 기약하면서 디자이너 여러분 끝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