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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디자이너, 책과 친구하기

2008-11-11

‘디자인’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이고 어디든 곁들이면 무소불능의 해결사 노릇을 하는, 디자인이 희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접두사나 접미사로 붙여지면 그럴 듯 해 보이고, 무엇이든 멋지게 해결 될 것 같고, 무슨 프로젝트나 어떤 조직은 물론이고 남달라 보이게 하려면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가 세계 3대 디자인상을 휩쓸어 버리고 디자인 강국을 꿈꾸듯 디자인의 존재나 가치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지요.
자고로, 너무 흔하면 무엇이든 가치가 떨어져 보이게 마련이죠. 디자인을 외치고, 남발하다 보면 지금까지의 디자인이라는 본래의 가치나 존재는 그대로 있더라도 용어 그 자체가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전략 할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란 워낙 변화무쌍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 하기에, 세계적이고 범 시대적인 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용어로 바뀌게 될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강남의 아파트에 살아 보는 게 평생 꿈인 사람이 많지만 재개발로 새롭게 태어난 반포의 ‘삼성 래미안’은 럭셔리한 고가의 브랜드로 여전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새로 입주할 주민은 ‘래미안’ 이라는 브랜드가 한 물간 촌스러운 브랜드라며 바꾸어 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고,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 끝에 ‘래미안 퍼스티지’로, 과천은 ‘래미안 슈르’라는 이름이 중간 타협안으로 채택 되었다는 이야기는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 하지만 디자인이라는 흔해빠진 이름이 어느 날 어떤 운명에 처할지 암시하는 작은 나비의 날개 짓 일 수 도 있습니다.

어쨌든 각설하고 어떻게 변해 갈지 모르는 미래의 디자인을 위해 나의 전문분야와 내 디자인이란 작은 품 안에서만 머물지 마시고 시야를 넓히고 확장시켜 좀 더 큰 테두리 안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는 습관이 절실합니다. 사촌 혹은 이복형제 정도 되는 거리에 디자인 가족은 참으로 많습니다. 알고 보면 익숙하고 친근한 이들이지만 남들처럼 보일 때도 있고, 무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요즈음 돌아가는 세태를 좀 오버해서 말한다면 오히려 디자인과는 관련이 전혀 없는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편이 디자인을 더 디자인답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격상 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는 속성상 많은 분야와 손잡고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독불장군이 아닌 이상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만큼 나의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운신 폭이 넓어 질 수 있습니다. 내 작업마저 벅차 헉헉거리고 내 전공분야의 책 보는 시간도 아까운 판국에 옆집엔 도통 관심을 둘 여유는 아예 있을 수 없고 말이죠. 그래서 접근하기 쉬운 비전문가를 위한 개론서는 물론 재미있고 큼직한 사진들이 많은 유익한 서적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책방을 기웃거려 봅시다. 기웃거리는 횟수만큼 투자하는 시간만큼 내공이 쌓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장 하는 일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더라도 남의 영역에 곁눈질은 물론 슬쩍 남의 밥그릇에 내 숟가락 하나 정도는 담가 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연과학과 인문학, 내 것 네 것 구별 없이 어우러지고 버무려 무엇인가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은 학문 안에서나 현실 속에서 많은 성과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어려운 단어가 자연스러운 일상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미대와 음대 그리고 공대가 합쳐진 ‘미디어아트공학과’라는 학과의 출현은 필요에 의한 현실의 반영일 것입니다. 그림 잘 그리고, 단편적인 테크닉이나 감성만으로 미래의 디자인을 하기에는 보다 더 치열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자이너라면 일찍부터 해오던 자연스런 일이지만 그래도 잊고 있거나 혹은 백안시(白眼視) 했다면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시길 바랍니다.
다른 분야 책 몇 권 본다고 뭔가 달라진다거나, 디자인이 인문학이나 여타의 분야와 접목하여 혁신적인 무언가가 뚝딱 내 놓을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눈에 띈 몇 권을 단세포처럼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즈음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듯한 분위기에 디자인이라고 굼떠 있을 수 없고, 구태연한 디자인 사고에 허우적거리거나 예술적인 감성 위주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히는 맛보기 정도로 생각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분야보다도 클래식(?)하고 익숙한 디자인이라면 ‘패션’이 있고, 그 다음이 ‘건축’이 아닐까 우겨봅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으리라 사려 되지만 건축에 디자인이라는 말은 자연스럽습니다. 디자인이라는 말과 동고동락 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순수회화를 할 것인지 디자인을 할 것인지의 고민이 한 때 있었던 것처럼, 건축이라는 것이 ‘아름다움과 실용’, ‘이상과 법규’ 사이에서 나의 개성만을 고집 할 수 없는 면도 유사합니다. 자본(돈)과 결과물인 건축과 뗄 수 없는 상관 관계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입니다.

건축에 관계된 공학, 물리, 재료, 역학은 물론 미학 등 세부 분야는 너무나 많아서 골치 아프기 이를 데 없고 재미마저 없습니다. 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소위 말하는 개론 정도나 결론적인 결과물인 주위의 집이나 유명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곳에 초점을 맞춰보세요. 건축이라는 큰 세계에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참으로 새롭고 멋진 집들이 눈앞에 나타나면 디자인 그 이상의 감동이 있습니다. 게다가 설계 의도나 과정 혹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면 아는 만큼 관심과 애정이 가기 마련이죠.
전문적이지 않으면서 일반인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책들이 한 두 권이 아닙니다.

이용재의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1, 2, 3시리즈> 와 <딸과 떠나는 국보건축기행> 은 자칭 인문학적인 관점을 강조하고 독특한 말투가 재미있는 건축이야기 책입니다.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는 일반인이 건축을 접하기에 감동을 안겨 줄 수 있을 빼어난 책이고, 임형남 노은주 부부의 재미있고 특이한 집에 대한 단상을 풀어 나간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 정기용의 <사람 건축 도시> , <서울 이야기> , 임석재의 <교양으로 읽는 건축> , 김봉렬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곳> 과 <한국건축 시리즈> , 인사동 길을 디자인한 김진애의 <이 집은 누구인가> , <우리 도시 예찬> 등 톡톡 튀는 재미난 책, 서울 구석구석을 누빈 책, 그리고 유명 건축가들의 다양한 시선의 건축관련 서적들이 있습니다.
이 밖에 ‘집’과 ‘건축’ 그리고 ‘도시’, ‘환경’, ‘생태’는 물론 우리의 ‘한옥’과 ‘궁궐’, ‘문화재’ 에 관련된 건축이 이라는 디자인은 한도 끝도 없이 디자인 시각을 넓혀 줄 것입니다.

모든 생각의 모티브는 음악에서 나오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MP3를 항상 귀에 고정하고, 어지간한 작가나 예술가 혹은 디자이너라면 클래식을 비롯한 음악이 언제나 찰떡같이 붙어 있으니까요.
언젠가 TV에 한 예술가가 해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녘 자기만의 공간에서 거의 신들린 듯한 표정과 손놀림으로 어떤 영감을 받아서 고요하지만 역동적인 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공간에 아니나 다를까 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온 몸을 던지듯 신들린듯한 창작활동은 참으로 인상적인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유명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기분 전환이나 마음의 안정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나 킬링타임용 음악만이 아닌 상상이나 생각의 범위를 넘나들게 하는 훌륭한 무기인 것은 여러분도 다 아실 겁니다.

음악도 세세한 분야가 무지 많습니다. 박종호의 <내가 사랑한 클래식 1, 2> 나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 , 윤미숙의 비평가처럼 수다처럼 <클래식 인생 변주곡> 등을 비롯하여 클래식의 작곡가 연주가 혹은 그들의 숨겨진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는 물론 소소한 재미마저 글로 볼 수 있습니다. 김영섭의 는 최상의 소리구현을 위한 40여 년의 길고 긴 하이엔드 오디오 탐닉의 극을 보여 줍니다.
그 책에 “오디오를 꿈꾸는 큰 산은 상상의 세계와 마음에서 만들어진다. 마음속에 뚜렷한 음의 상상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오를 산 또한 없다”라는 멋 진 말이 있습니다. 최윤육의 <아날로그의 즐거운> , 이시하라 슌의 클래식 애호가를 위한 <오디오 도락입문> 등 명기는 물론 클래식의 강도를 더하여 귀를 간지럽게 하는 하드웨어 관련 책도 여러 권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던 클래식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뒤집어 버리는 조우석의 <굿바이 클래식> 도 색다릅니다. <파격과 기발함으로 무장한 음악의 괴물 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 조윤선의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 , 이미 소개한 박종호의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도 있습니다.

관객과 연주자가 가장 가까운 거리의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집을 개방해 음악을 공유하는 박창수의 <하우스 콘서트> 가 새롭고, 이종학의 <길모퉁이 재즈카페> 의 재즈는 물론 라틴 혹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 3세계의 다양한 비주류 음악이 어느 때보다도 주목 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빽판 기트의 추억> , <오빠는 풍각쟁이야> 라는 재미있는 가요 이야기와 김광석이나 신해철의 뮤지션과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이야기도 흥미롭지요. 국내외의 작사, 작곡가, 연주가, 가수, 그룹 사운드, 그 밖에 민요나 국악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솔깃하고 관심 있으시면 책방으로 달려 가 보십시오. 음악이 사상과 감정을 담아 박자와 선율과 음색으로 표현한 예술이라고 하지만 그 이상 감동과 재미가 귀에서와 마찬가지로 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0월에 열린 서울디자인올림픽 2008 행사장을 찾은 디자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손에 으레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디카 없는 디자이너는 없을 정도로 카메라 보급률도 높습니다. 어디든 무엇이든 눌러 찍기에 모두가 포토그래퍼가 되었을 정돕니다. 어느 선배 디자이너가 ‘삼보(三步)이상 카메라 필참(必參)’ 을 외치듯, 너나 없이 문화가 바뀔 정도 입니다.
가벼운 스냅 사진에서 풍경, 인물은 물론 작가의 철학적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찍고 찍히는 사진은 기록은 물론이고, 미니홈피, 카페, 불로그 등 자신의 표현과 만족을 위해 가방이나 핸드백 속에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이미지 표현을 위해 꺼낼 수 있는 편리한 즉석 레시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위한 실용서는 물론이고 작품집과 포토 에세이, 사진과 더불어 여행서는 책방마다 가득가득 넘쳐 어떤 것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많아 졌습니다. 아름답고 재미있게 소소한 개인 취향의 사진으로 꾸며진 여행 책들은 다른 어떤 분야의 책보다 더더욱 많아 졌습니다.

포토그래퍼 조선희의 사진강좌 <네 멋대로 찍어라> 를 필두로 테크닉을 소개하는 책은 무궁무진 널려있습니다. 사진작품집은 언제나 손때 묻혀 가면서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많이들 감상하고 있는 베스트 셀러입니다. 김원섭의 <내 마음에 담은 지구별 풍경> , 350D클럽 <내가 사랑한 사진> 은 물론,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에 새롭게 사진 찍기의 근본을 바라 볼 수 있는 한정식의 <사진, 예술로 가는 길> 은 흥미롭습니다. 정한조의 <대한민국 사진 공화국> , 29명의 소설가와 시인의 빛 바랜 <이 한 장의 사진> 이야기, 이지누의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 김열규 <잃어 버린 것에 대하여> , 이병률의 <끌림> 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이철영의 답사여행기 <전라남도 기행> 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사진뿐 아니라 일반 여행기와는 다른 진보적인 정치학자의 눈에 비친 <레드 로드> ,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는 사회과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물론 무언가 다른 시각에서 여행과 사진을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사진과 더불어 여행이란 갈 곳이 무한하듯 읽을 것도 참으로 다양한 그 자체입니다. 책방마다 가장 잘 보이고 언제나 사람들이 붐비는 단골 코너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소설, 수필, 철학, 심리학, 교육, 역사, 수학, 만화, 조경, 애견, 게임, 요리, 스포츠, 우주, 곤충, 뜨개질… 너무도 많은 이들이 디자인과 친구하자고 손 흔들며 줄 서있습니다. 자, 자신에게 맞는 친구 한 명 사귀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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