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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비주류(?) 디자이너2

2005-05-31

원고보다 ‘짠’한 시안이 나옵니다. 첨단의 맥과 새로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일대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손을 빌어 제작하는 경우는 어느날 시나브로 거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시안은 어디까지나 시안으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시안이 합의 되었다 하더라도 그야말로 시안일 뿐입니다. 보완되고 심화발전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은 것이 시안입니다. 하지만 많은 결정권자(특히 핵심 결정권을 가진 고위층의 비전문가(?) 노땅분)들이 시안을 시안으로 보지 못하기에, 안타까운 일들이 시작됩니다.
시안을 시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완성된 원고로 봐 버리고, 그러다 보니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설명하려 들기 보다는 일단은 멋지게 보이는 맥의 합성에 의존하게 되는 겁니다. 시안용 수작업 일러스트 같은, 오히려 사진 보다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작업들은 거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제성과 빨리빨리의 논리는 디자인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제 ‘세상에 없는 비주얼(아이디어)’은 시안이 될 수 없습니다. 합성할 수 있는 ‘소스’를 구하지 못한 아이디어는 설명될 수 없고, 설명될 수 없는 아이디어는 아예 태어날 수조차 없습니다. 이것은 크리에이티브가 생명인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아이디어를 말살하는 일급살인행위입니다.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지만, 맥의 장난(?)에만 의존하지 말고 살릴 것은 살려야 합니다. 크리에이티브와 아트의 묘미를 전달하는 다양한 표현차원에서도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있는 비주얼 합성하고 다듬어 ‘예쁘고, 뽀사시하게, 뽀다구나게’ 제아무리 잘 만든다 하더라도 그 이상은 무엇으로 표현 할 것인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맥은 도구입니다. 아주 요긴한 디자이너의 도구입니다. 디자인 실무에서 맥은 시안을 만들고 원고를 만드는 모든 것입니다. 맥 운용 방법은 회사마다 다르고 사무실마다 다르지만, 대개 직접 제작을 하는 경우와 외부 인력을 사용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주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면서 맥의 효과적인 운용은 디자이너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되고 있습니다.
외부를 이용하더라도 추가 이중작업이 많고, 비용과 난이도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맡길만한 곳을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맥을 잡고 있을 수도 없는, 전략과 컨셉이며 아이디어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은 곳이라면 이런 문제는 더욱 중요한 일이 됩니다. 더군다나 맥을 직접 활용하기 어려운 운영자의 입장이나 맥을 모르는 어중간한 ‘맥맹’세대는 제작물 컨트롤이 쉽지도 않습니다.

‘맥세대’는 맥만 죽어라 붙잡고 있고, ‘맥맹세대’는 어정쩡하게 맥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은 둘 다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본인이 직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상황 - 맥 디렉팅은 바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이기 때문에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어지간한 비주얼 데이터는 스토크 에이젼시에 다 있고, 디지털 카메라도 ‘퍽’ 찍으면 만사 OK입니다. 고민 할 시간에 뒤져라! 공짜로 보는 (슬라이드를 손수 찾는 것도 아닌) 인터넷 스토크 집에 들러서 마우스 굴리고 Enter키만 두드리면 바로 데이터를 다운 받는 세상이 아닌가? 외국 가서 어떻게 비싼 돈 주고 찍어? 인물 한 번 촬영해봐! 메이크업에 코디네이터, 게다가 모델비, 소품 대여비, 장소 대여료, 촬영 비는 어떻게 하고? 간단하게 인터넷을 뒤지라구! 편하고 값싸고… 좋아 좋아…

이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있는 비주얼로만 아이디어를 만들다 보면 크리에이티브는 길을 잃습니다. 쉬운 작업에 맛들이고 ‘이지고잉’에만 익숙해진다면 개인을 위해서나, 이땅의 크리에이티브 향상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외국의 크리에이터나 우리나라의 크리에이터나 ‘블랙 북’을 본다고 합니다. 외국의 크리에이터는 내 아이디어와 비슷한 아이디어를 누군가 이미 쓰지 않았나 확인하기 위해 뒤져보고, 우리나라의 크리에이터는 어디 적당히 베낄 아이디어 없나 뒤져 본다는 우스갯소리도, 그저 우스갯소리만은 아닌듯합니다.

명심합시다. 스토크집 많다고 방심말고, 디지털 카메라 있다고 안심말자. 있는 비주얼 오용말고, 스토크집 남용말자.

벤처 사업가는 아직도 우뚝 솟아 있고, 스포츠 스타는 여전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탤런트는 언제나 저 위에 빛나고 있습니다. 욕은 먹더라도 정치인은 늘 뉴스의 선두를 장식합니다. 기업가는 돈과 명예로 빛나고…… 많은 분야의 사람들이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자기의 꿈을 위해, 노력과 실력을 앞세워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디자이너는 열심히 일 안하고 꿈도 없었을까요? 사실 온갖 잡다한 일은 다 도맡아 하는 게 디자이너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전략도 짭니다. 비주얼의 크기는? 타이포의 폰트와 색은? 인쇄 종이는? 정산은?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할 일도, 머리 빠지도록 고민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회사와 가정의 구별 없이 날밤을 새며 일합니다. 과연 돌아오는 건 얼마나 있었습니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좋아서 하는 사람 따라 갈수 없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 을 따라 갈 수 없다고들 합니다. 혹 이런 좋은 말을 이용해서 혹사(?)시켜 온 역사가 지금 이 땅의 디자이너의 역사가 아닐까요? 벤처 사업가도 스포츠 스타도 아니지만,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적절한 보상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날이 빨리 도래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디자이너는 감성이나 테크닉에 의존하는 교육, 이른바 예체능 교육에 치중한 커리큘럼에 비중을 둔 까닭에 합리적이고 논리에 약한 면이 다소 많았습니다. 다행히 그와 같은 시행착오는 학문적인 이론과 현실적인 실습을 통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쨌든, 디자이너의 영원한 숙제는 예술이냐 상업이냐 – 그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일 겁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닌 장사라고 대부분 답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까지 동의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디자이너는 ‘장사꾼’이라고 규정해 놓고, ‘예술’ 혹은 ‘작품’의 가치는 버려야만 하는 걸까요?

예술을 버리기 시작하면 장사고 디자인이고 끝입니다. 디자인과 디자이너는 고유한 영역이 있고 그 영역을 가져야 합니다. 작금에 와서 누구도 디자인이 ‘예술입네’ 하고 외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전략이며 장사가 전부인양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 예술적인 면이 없는 디자이너와 디자인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니,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란 추구할 수 있는 한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할 수 있다면 디자인보다 더한 예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디자인은 장사인 동시에 예술이어야 합니다. 예술이 빠진 디자인은 심장이 없는, 죽어있는 디자인입니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는 가장 전문적인 직종이면서, 누구나 인정하는 전문적인 가치와 자부심은 없다?
디자이너는 디자인관련 전공출신이 대부분입니다. 카피라이터나 AE, 영업, 총무, 인사 등 제너럴리스트와는 달리 일찍부터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디자인 전공을 졸업했다고 모든 사람이 진정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관련분야의 지식과 감성적인 면을 키우고, 게다가 하늘이 준 천부적인(?)인 재능마저 가져야 비로소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언제나 새롭게 중단 없는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스페셜리스트입니다. 한마디로, 길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 사람의 온전한 디자이너가 됩니다.

이처럼 아무나 대신 할 수 없는 가장 전문적이고, 확실한 직종이 디자이너입니다. 이런 자부심과
전문성의 위상을 가진 존재이지만,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이젠, 기죽지 말고 큰소리로 당당하게 외칩시다. 디자이너는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라고.

이 땅에 디자이너는 많은데 전부를 아우르는 디자이너 집단은 없습니다. 그럴듯한 이익 단체도 없습니다.
다 자기 잘난 맛에 뿔뿔이 흩어진 보석처럼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껏 어느 학교의 선후배가 고작이고, 교수와 그 맥으로 연결된 단체가 일부 있고, 심지어 어느 입시미술학원 동기동창 따지는(?) 정도입니다… 아직도 외국의 디자인 학교 물 좀 먹어야 이름석자 알아주고…

작은 집단의 이익과 나눠먹기 식이 아닌 항구적인 디자인 단체나 디자이너의 구심점이 있다면 디자인계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디자인 교육도 달라져야 합니다. 상아탑에 갇혀 연줄과 아직도 만연한 교수들의 경직되고 권위만 난무하는 디자인 교육 속에선 제대로 된 디자이너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팽팽 돌아가는 시대의 트랜드를 읽고 적용하는 실무 교육도 병행하여야 합니다. 그 많은 대학의 수많은 디자인학과의 교육도 집중과 선택도 개선해야 할 일입니다. 또 비주얼이면 비주얼 전공, 공예면 공예 전공 등 높게 높게 쌓아 놓은 담을 허물고 마음껏 교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이 좋아서 공부하고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디자이너로 살아 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스타 디자이너가 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외부의 환경이든, 개인의 실력이든 만만하지 않은 세상에 디자이너가 헤치고 가야할 일은 험난합니다. 생존의 법칙은 냉정하며, 이는 디자인 분야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도!

디자이너는 참 좋습니다. 희망도 있습니다. 어느 직종보다 만족도나 성취도가 높은 직종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느낄 수 없는 재미난 일도 많습니다. 개인적인 창조력을 발휘해서 와 닿는 뿌듯한 기분은 어느 직종의 누구도 느낄 수 없는 디자이너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진국은 디자인강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경제력을 봤을 때, 디자인으로 뜰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으로 간다는 전제하에 디자인의 미래는 밝습니다. 어쩌면 디자인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을 만들지도 모를 일이고....

기획력 부족으로 단순하청작업만 열심히 하던 애니메이션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영화며 드라마, 대중가요 등 문화의 일부가 아시아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도시의 환경이나 우리의 생활이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빼고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졌고, 경제나 문화의 성장으로 어느 정도 수준이상의 디자인이라는 개념과 기본 틀이 만들어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부각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합니다. 아직은 디자인 선진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반대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디자인 없이도 먹고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 그 이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인 명품브랜드에 마음을 빼앗기고, 디자인의 가치에 너도나도 뭉텅이 돈을 아깝지 않다고 지불 하는 한, 디자인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는 말은 웃기는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가치 있는 일입니다.
실로 경영의 시대인 20세기가 가고, 디자이너의 시대인 21세기가 도래 했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도 디자인은 있었고,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도 디자이너는 있습니다.
현실적이 어려움 속에 희망을 품고서, 지금 이 순간도 하루가 짧다 하고 바쁘게 일을 하고 있지만 5년 후, 10년 그 이후 어떤 모습일까 그려 봅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디자이너로 시작해서 디자이너로 온전하게 원하던 디자인을 하고 있을까를 포함해서…

디자이너를 둘러싼 지금의 어려운 여건들이 잠시 겪는 과정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처럼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주류 디자이너’로 있다가 선배들처럼 그저 그렇게 사라져 버릴지, 아니면 모두다 멋진 ‘주류 디자이너’로 빛나게 될지는 세월이 지난 뒤 언제쯤, 지금을 뒤 돌아 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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