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2
지난 2월 22일부터 5월 22일까지 원로 만화가 이정문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청강문화산업대에서 열렸다.
<철인 캉타우>
와
<심술가족>
하면 한국 만화사에 길이 남을 개성 만점의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캐릭터를 탄생시킨 만화가가 바로 이정문 선생이다.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
전에서는 SF와 명랑만화 양대 장르에서 한국만화만의 매력을 듬뿍 보여준 이정문 작가의 48년간의 작품세계를 되돌아보는 전시로 진행됐다.
특별히 이번 전시에는 축하 화환 대신 쌀을 받는 이벤트를 진행하여 이천의 어려운 장애우 가족에게 전량 보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 1959년 데뷔작
<심술첨지>
부터 시작해
<설인소년 알파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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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캉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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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똘이와 심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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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통>
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과 40년 전의 원고료 등 만화 역사의 단면들을 보여줄 이번 전시의 주인공 만화가 이정문 선생을 청강문화산업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만화역사박물관에서 직접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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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그렇다. 이번 전시는 의미가 깊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부터의 모든 자료, 소소한 자료까지도 털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숨은 보석들이라 굉장한 프라이드가 느껴진다. 지금까지도 이 자료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게으름 덕일 것이다. 게을러서 버리지 않고 쌓아놓다 보니 세월이 지나 보석이 된 것이다. 또 보람을 느끼는 게 어떤 전시회에 가봐도 이렇게 입체적으로 실감 나게 전시해놓은 곳은 못 봤을 것이다. 작가인 나 역시도 보람을 느낀다. 내 소중한 작품들을 새롭고 실감 나는 전시로 꾸며준 청강대 김원형 학예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실 만화인생 50주년이 되는 2년 후에 이 전시를 개최할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이 조금 앞당겨진 것이다. 전시가 끝나는 5월 22일 이후에는 남이섬에서
<로봇찌바>
의 작가 신문수 씨와 함께 연장전을 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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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어떤 매력이 평생을 만화에만 빠져 지내도록 했나
글쎄… 만화가가 천직인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지치지 않고 재밌다. 다시 태어나도 만화가를 하고 싶을 정도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를 직업으로서 평생을 그릴 수 있었다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 만화는 내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그릴 것이다. 내가 죽으면 내 캐릭터들도 죽는다. 이런 순교자들이 어디 있나. 내 캐릭터들이 2004년도에는 만화 우표로도 나왔다. 내 만화의 주인공으로 우표가 나왔다는 게 너무 자랑스럽다.
사실 만화를 그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특히 초창기에는 더더욱 어려웠다. 2년 뒤면 결혼한 지 40년이 되는데 그동안 아내가 참 힘들었을 것이다. 비전이 없었던 만화가를 믿고 군소리 없이 살림 잘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 다시 만화계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일을 하면서 잠잘 시간도 부족했던 시간을 쪼개서 만화를 그렸을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그래서 17살 때 그때 당시 최고의 인기 작가였던 김종래 선생을 무작정 찾아가 만화를 배웠고, 18살에
<아리랑>
공모전에 당선되며 만화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제8의 예술이라고 하는 만화는 가장 어려운 예술이다.
만화캐릭터를 영화로 보자면 배우들이고, 만화를 종이에 그린다는 것은 촬영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를 그리는 작업과 촬영감독, 연출, 시나리오 작가 등을 종합한 것이 만화고, 모든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바로 만화가다.
48년 만화인생 중 가장 어려웠을 때는
매번 원고를 넘길 때마다 어려운 것 같다. 예전에 신문 연재를 하고 있을 때 한 대학생이 보낸 편지가 신문사로 왔다. 같은
<심술가족>
만화 중 비슷한 그림이 있다며 표절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만약에 의도적으로 똑같이 베껴서 그렸다면 아마 펜대를 꺾었을 것이다. 만화가가 그렇게 아이디어 밑천이 없으면 만화를 그릴 수 없다. 만화뿐 아니라 음악 등에도 요즘 도작, 위작들이 많지만 아이디어가 없으면 쉬든지 재충전을 해야지 남의 것을 베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창작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1965년도인 35년 전에, 35년 후에는 이렇게 변할 것이다 하는 <2000년의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작품을 그린 적이 있다. 지금 인터넷에서도 그 그림을 볼 수가 있는데 휴대폰, 청소로봇, 컴퓨터, 전기자동차, 태양열 등 80% 이상 예측이 적중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매일 공상에 잠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깨어 있을 때, 운동할 때나 꿈속에서도 항상 상상한다.
한 가지 계획을 더 가지고 있는데, 내가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인 2041년의 모습을 구상 중이다. 이미 5가지 테마를 구상해놓은 상태다. 한 가지 정도만 얘기하자면 의학계에 암세포를 아주 미세한 폭탄으로 없앨 수 있는 의학기술이 발달할 것이라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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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캉타우>
가 문하생의 작품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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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아니다. 부인이 먹을 칠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랬다면 “내 작품이다”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하생이 배경을 그리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캐릭터를 그리지는 않는다. 나도 그런 글을 봤는데 ‘아니다’라는 댓글을 붙이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서 못했는데 여기서 얘기 할 수 있게 돼서 속이 후련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다.
<철인 캉타우>
는 나 이정문의 작품이다.
앞으로 만화계가 어떻게 발전했으면 하는지
안타까운 얘기지만 우리 만화가 인터넷 때문에 단멸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출판만화라는 뿌리가 없는 나무는 절대 커갈 수 없다. 만화과 학생들이 뿌리를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만화과 친구들이 버틸 수 있는 저수지가 말라가고 있다. 작가는 물고기이고, 출판만화시장은 저수지다. 저수지가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다. 하루빨리 변혁되어야 한다.
앞으로 계획과 함께 당부하고 싶은 말씀
지금은 정리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심술만화로 데뷔했기 때문에 심술만화는 계속 그리고 싶다. 지금도 상상마당 사이트(www.sangsangmadang.com)에 일주일에 한 번씩
<심술통>
을 연재하고 있다. 독자들이 속 시원해질 수 있는
<심술가족>
에 전력투구할 예정이다. 만화가가 되려는 학생들에게는 어디 가서든 얘기하지만, 미친 광(狂)을 강조하고 싶다.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칠 듯 그려라. 독자들에게도 한마디 하자면, 만화를 만화로만 봐달라. 만화는 만화다. 보고 즐거운 것 외에 의미 붙이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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