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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리뷰

<드레곤헌터> 프로젝트의 뒷이야기

2006-06-20


캐릭터 회사에서 계획적으로 기획된 프로젝트가 아닌 회사에서 근무하는 디자이너의 개인적 열정과 역량으로 틈틈이 준비한 작품(?)이 회사의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경우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여느 디자인 회사에는 디자인 전문가, 즉 다양한 개성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있듯, 캐릭터 회사 역시 개성 강한 캐릭터 디자이너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각각의 개성들을 모아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재능이 어떤 틀에 맞춰지는 상품처럼 활용되기보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담긴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너무도 당연한(?) 욕망들을 회사가 어떻게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상품으로 접목시키느냐가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이론적으로는 매우 쉽고도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실 실무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 최승준_ (주)캐릭터존 대표이사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사내에서 자신들이 참여하거나 개발한 제작물들이 본인만의 작품, 또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므로 자신만의 작은 암호나 표시를 넣기도 한다. 사실 그 정도는 작은 애교가 될 수도 있다. 회사에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까지 프로젝트 수주부터 다양한 전략과 기획, 그리고 그것을 위한 수많은 자료 서치와 담당 디자이너가 그 일을 하게 되기 전까지의, 그리고 디자인이 진행되더라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디자이너들이 제각각 개성을 살려(또는 죽이기도 한다) 부분적으로 흡수된 조합물이 될 수도 있고, 한 명의 디자이너가 제작을 한다고 해도 회사의 방향과 디렉팅을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 상품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잘된 디자인이라고 하더라도 캐릭터는 사업이 전제되어야 하는 특성 때문에 해당 타깃에 맞는 다양한 비즈니스 툴을 연계한 각각의 기획 및 홍보, 마케팅, 상품디자인, 기타 디자인과 부수적인 수많은 과정들을 놓고 봤을 때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의 파트일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디자이너 개인들의 이력사항을 보면 대부분 개인 혼자서 프로젝트 진행을 했다고 표기된 경우도 많다.

물론 본인이 혼자 기획, 디자인, 상품화를 다 준비한 유능한 친구들도 있지만 어떤 조직에서 그렇게 혼자 다 진행하는 경우는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거나, 정말 부지런한 친구이거나, 거꾸로 중요한 메인 프로젝트에 참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어떤 일을 하든 회사나 상사가 신경을 안 쓴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개개인의 디자이너들에게 틀에 박힌 오퍼레이터의 역랑보다는 다양한 콘텐츠의 발굴을 위해 회사에서 투자하는 의미로 창작 환경을 조성해주었거나 하는 식의 여러 가지의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체계적인 디자인 회사에서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필자가 운영한 캐릭터존을 되짚어볼 때 체계적인 디자인 회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필자는 회사에 직접 연락이 오거나 어떤 계기로 수주의 참여가 성사된 프로젝트 진행 외에는(마스크맨과 뮤도 그랬지만) 캐릭터존 디자이너들의 자연스러운 창작활동을 허락해주는 나름대로는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 중에서 오늘 주제가 될 드래곤헌터의 경우는 사실 사업화가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말 그대로 캐릭터존의 디자이너의 열정과 부지런함 그리고 필자의 방만한(?) 경영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작품이다.

드래곤헌터가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불리는 까닭은 상품화 프로젝트로 진행되기 직전에 멈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디자이너 혼자 나름대로 기획부터 디자인, 방향성, 기초적인 비즈니스 툴까지 염두에 둔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에 어떤 디자인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그 친구의 순수한 열정을 높이 평가하는 까닭에 필자에게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그 당시 상황과 여건이 여의치 못해 끝까지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캐릭터존에서는 처음으로 기획된 게임 캐릭터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 이름은 드래곤헌터. 마법 판타지의 롤플레잉 게임 캐릭터 프로젝트였다. 도예를 전공한 디자이너로 회사를 다니며 졸업을 했으니, 사실 캐릭터 쪽으로는 경력이 전무한 친구였지만 작품의 개성보다는 나름대로 캐릭터, 게임, 카툰 등 다양한 분야에 잡기(?)가 능했던 재미있고 성실한 친구로 기억된다.

본 칼럼을 준비하기 위해 캐릭터존의 지난 포트폴리오를 보며 오랜 만에 그 친구의 흔적을 보니 어떤 기술적인 면이나 상품적인 면을 보면 사실 세련미보다는 공모전을 준비하는 학생의 작품처럼 순박함이 묻어나지만, 뭔가를 해보고 싶어 했던 열정과 고민, 무엇보다 가능성이 많이 배어 있다. 마치 인턴 학생이 제출한 공모전 작품 같기도 하지만 조금만 지원이 가능했더라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프로젝트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기도 하다.

조직적인 디자인팀 구성이 아닌 채로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를 병행해 혼자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혼자 한 것치고는 꽤 구체적이었고, 준비가 많이 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드래곤헌터는 별다른 가공 없이도 몇몇 업체의 문의를 받기도 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내의 전체 프로젝트 스케줄과 여러 가지 여건상 성사되지는 못했고, 제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 3D 캐릭터나 게임 제작 툴에 맞춘 2차 가공이 따라줬더라면 그 당시 나름대로 괜찮은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을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다른 조건이 성사가 되지 않았기에 그냥 하나의 작은 포토폴리오로 기억에 남는 아쉬운 프로젝트가 되었다. 드래곤헌터가 캐릭터존의 프로젝트이기 전에 그 친구의 개인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생각해도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이 친구의 열정이 결국 개인과 회사에는 수익적인 면이나 어떤 업무적인 면에는 아무런 의미도 득도 안 됐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를 만들었던 그 시간에 회사에 필요한 디자인을 진행하는 것이 지나고 보면 회사에는 훨씬 도움이 되고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친구들의 열정이 좋았고, 여력만 된다면 적극 지원해주고도 싶었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디자이너로, 회사에서 진행하는 디자인이나 프로젝트가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포트폴리오 및 커리어가 되기도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가능성이나 고유 색깔을 무디게 하는 매너리즘의 주범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분명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서는 후회될 말이긴 하지만 그냥 디자이너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디자이너들이여! 우리는 창작자이자 개발자, 그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기에 가끔은 누군가가 단순히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을 위한 디자인 공식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자기만의 작업을 해보는 맘의 여유를 가져본다면 어떨까. 엄청난 용기와 각오, 더불어 자금이 필요하며 시간적인 투자를 전제한 순수 콘텐츠 프로바이더들에겐 필자의 말은 해당이 안 된다. 필자의 말이 아니어도 이미 그 힘든 길을 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저 이 말은 그 길을 가고 싶지만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디자인회사의 조직원으로, 가끔은 답답한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디자이너들에게 지금 회사의 프로젝트의 일정, 바쁜 스케줄로 인해 정신적 여유가 없겠지만, 틈틈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본인의 작품을 성의 있게 준비하여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신이 믿고 싶은 회사에 당당히 선보여 어떤 금액적인 이득을 떠나 자신의 색깔을 한번 찾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는 의미를 갖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의 디자이너들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할까?(사실 이 부분은 또 다른 용기와 직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자칫 잘못된 장사꾼을 만나면 말 그대로 자신의 열정이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 변질됨을 느낄 테니, 이것 또한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의 또 다른 슬픈 현실이기도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아무튼 디자이너는 결코 자기만족만을 추구하는 예술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에, 그래도 창작자는 지속적인 자기와의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서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있을 드래곤헌터의 아빠 K군에게 그 당시엔 격려해주지 못했지만 그 당시 그 친구의 순수한 열정에 꽤나 흐뭇해하고, 현실에 지쳐 있던 나도 잠깐이지만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던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는 말을 지금이라도 전해주고 싶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어디서든 그 순수한 미소와 열정은 잃지 말았으면 한다. 행복하게, K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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